항목 ID | GC02401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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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貳元 |
영어음역 | Gwon Yiwon |
이칭/별칭 | 권이원(權二元),우범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강윤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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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 |
성별 | 남 |
생년 | 1896년 |
몰년 | 1942년 |
본관 | 안동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우범(尤範)이다. 1896년(고종 3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에서 출생하여 1942년 사망하였다. 묘소는 와룡면 이하리 야산에 있다.
[활동사항]
권이원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면의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宋基植)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각각 준비되었다. 3월 18일 장날 낮 12시경 기독교인 30여 명이 삼산동 곡물전(지금의 신한은행과 농협 안동지부 중간 지점)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기독교인들이 만세 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 동문통에서 또 한 무리의 시위대가 들어와 합세하였다. 합세한 시위대는 송기식을 비롯한 류동붕(柳東鵬)·송장식(宋章植)·송홍식(宋弘植)·권중호(權中鎬) 등의 유림들이 이끌고 있었다. 1919년 3월 초순 이래로 서울 및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 시위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권이원은 바로 유동붕·송기식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 대열에 참여하였다.
권이원은 장터에 모인 다수의 시위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 행진을 벌이다가 출동한 일경의 무력 탄압으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권이원은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항소하였으나, 5월 2일 대구복심법원과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6개월의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