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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419
한자 土津串 牧場城
이칭/별칭 토진곶 목장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산49-1|황교리|죽청리|관당리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심상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27년 - 토진곶 목장성 폐장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31년 - 토진곶 목장성 우목장으로 다시 개장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54년 - 토진곶 목장성 폐장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1999년 - 토진곶 목장성 한국문화재재단이에서 발굴 조사
현 소재지 토진곶 목장성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산49-1번지황교리·죽청리·관당리 일원지도보기
성격 목장성
양식 석성과 토성
크기(높이,길이,둘레) 1m[통달산 부근 잔존 높이]|2m[죽청리 구간 잔존 높이]|2m[관당리 부근 잔존 높이]|11㎞[둘레]
면적 16㎢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에 있는 고려와 조선 전기 가축을 사육하던 목장성.

[개설]

토진곶 목장성(土津串 牧場城)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황교리·죽청리·관당리에 있다. 바다로 내민 육지인 곶에 설치된 목장성으로 우리나라에 몇 개 없는 목장성이다. 토진곶 목장성은 서해안을 한 면으로 하고, 나머지 삼면은 산능선을 따라 연결된 성벽으로 둘러져 있다. 성벽은 석축된 곳과 토축된 곳이 현존하며, 나무로 만든 곳도 있었는지, 목장(木場) 118보(步)라는 기록이 있다.

[건립 경위]

목장성은 조선 전기 말의 번식과 생산을 위해 설치된 목장이다. 토진곶 목장성이 언제 설치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조선 초기인 1427년에 목장성이 폐장되고, 1431년에 우목장(牛牧場)으로 다시 사용되다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가 편찬된 1454년경에 다시 폐장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치]

토진곶 목장성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의 토진곶에 있다. 토진곶 목장성의 내부는 현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독산리·황교리·죽청리·관당리 일원이다. 목장성의 성벽은 바닷가인 소황리부터 황교리·죽청리를 거쳐 관당리 해안까지 설치되어 있다.

[형태]

토진곶 목장성은 면적이 약 16㎢이고, 성벽의 둘레는 해안에는 설치되지 않았는 데도 약 11㎞에 이르는 규모이다. 토진곶 목장성의 평면 형태는 직사각형에 가까운 부정형이다. 성벽은 해안을 제외한 삼면이 산능선을 따라 석축과 토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토진곶 목장성은 말을 사육하던 내부 공간의 시설물은 남아 있지 않고, 성벽 너비가 좁은 석축과 토축된 성벽만이 일부 잔존해 있다. 잔존된 성벽을 남쪽부터 보면,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에서는 양쪽 벽을 돌로 쌓고 안은 흙으로 채운 석축 성벽이 잘 남아 있다. 통달산 부근은 석축된 성벽이 1m 정도 높이로 남아 있다. 황교리 부근은 토축 구간과 석축 구간이 남아 있다. 죽청리 구간은 대부분 토축되어 있고, 잔존된 높이는 2m가 넘는다. 관당리 부근도 토축된 성벽이 높이 2m 정도 잔존해 있다.

[의의와 평가]

토진곶 목장성은 고려~조선 시대의 말의 번식과 생산을 담당한 목장성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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