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518
한자 金仁問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629년연표보기 - 김인문 출생
활동 시기/일시 651년 - 김인문 당나라에 가서 김문왕을 대신해 숙위
특기 사항 시기/일시 656년 - 김인문 식읍 300호 사여(私與)
활동 시기/일시 668년 - 김인문 이적의 당군과 함께 평양성 함락
몰년 시기/일시 694년연표보기 - 김인문 사망
묘소|단소 김인문 묘소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1006-1
성격 왕족
성별 남성
본관 경주

[정의]

신라 문무왕의 동생으로 삼국통일에 기여한 공으로 보령시 일대를 봉토로 받은 장군이자 외교관.

[개설]

김인문(金仁問)[629~694]은 문무왕(文武王)[626~681]의 친동생으로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603~661]과 김유신(金庾信)[595~673]을 도와 삼국통일에 공을 세웠다. 일곱 차례에 걸쳐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하면서 양국의 우호관계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신라의 삼국통일을 위한 전쟁에도 참여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충청남도 보령시 일대를 봉토(封土)로 받았다. 성주사의 전신인 오합사(烏合寺)가 김인문의 원찰(願刹)이었다.

[가계]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문명왕후 문희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활동 사항]

7세기 전반 신라는 대내적으로 비담(毗曇)[?~647]과 염종(廉宗)[?~647]의 반란이 일어나고, 대외적으로는 백제·고구려가 연합하여 공세를 강화해 국가적으로 불안한 시기였고, 642년 백제의 공격으로 대야성이 함락되었다. 648년(진덕여왕 2) 김춘추(金春秋)[603~661]는 당나라에 가서 군사적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아들 김문왕(金文王)을 숙위[황제를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속국의 왕족들이 볼모로 가서 머물던 일]로 머물게 하였다.

김인문은 651년 김문왕을 대신하여 당나라에 가서 5년간 숙위하면서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외교를 담당하였다. 23세에 당나라의 관직인 좌령군위장군(左領軍衛將軍)을 받았다.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하면서 656년에 귀국하여 압독주(押督州) 군주(軍主)가 되었고, 장산성(獐山城)의 축조를 감독하였다.

658년에 다시 당나라에 들어갔으며, 660년 나당군이 백제 정벌군을 일으켰을 때 당나라 측 부사령관인 신구도행군 부대총관(神丘道行軍 副大摠管)이 되어 사령관인 소정방(蘇定方)[592~667]을 도와 수군과 육군 13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정벌하였다. 사비도성 함락 후 소정방이 의자왕 등 백제의 포로를 데리고 당나라로 돌아갈 때 김인문도 함께 동행하였다.

661년(문무왕 1) 6월에 다시 귀국하여 고구려 정벌에 대당장군(大幢將軍)으로 참여하였다. 662년 7월에 네 번째로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664년에 백제 왕자 융(隆)[615~682]과 함께 귀국하였다. 김인문은 웅진도독(熊津都督)으로 임명된 융과 웅진에서 만나 천존(天存)·유인원(劉仁願) 등과 화친의 맹약을 맺었다. 665년에 다섯 번째로 당나라에 들어갔으며, 우요위대장군이 되었다.

668년 6월에 당나라 고종의 칙지(勅旨)를 가지고 귀국하여 고구려 정벌을 추진하였으며, 김유신(金庾信)[595~673]을 대신하여 신라군 사령관이 되어 이적(李勣)의 당군과 함께 9월에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당군이 귀국할 때 함께 당나라로 갔다.

674년 신라가 대당항쟁(對唐抗爭)을 벌이자 당나라는 문무왕의 관작을 삭탈하고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삼고, 유인궤(劉仁軌)[602~685]를 보내 신라를 침략하였는데, 신라가 사죄사(謝罪使)를 보내자 전쟁을 그쳤다. 김인문도 도중에 돌아가 임해군(臨海君)으로 봉해졌다. 694년(효소왕 3) 4월 66세의 나이로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서 사망하였다. 유해는 신라로 옮겨져 왕경(王京)의 서쪽 언덕에 묻혔다.

김인문은 삼국통일에 기여한 공으로 보령시 일대를 봉토(封土)로 받았다. 백제의 호국사찰이었던 오합사는 김인문의 원찰이 되었다.

[묘소]

김인문의 묘는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656년(태종무열왕 3) 식읍(食邑)[국가에서 왕족·공신·봉작자(封爵者)에게 수조지(收租地), 수조호(收租戶)를 지급한 일정한 지역] 300호(戶)를 받았으며, 효소왕(孝昭王)[재위: 692~702] 대에 태대각간(太大角干)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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