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트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79
영어공식명칭 Aumaitre Pierre
이칭/별칭 오(吳) 베드로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유병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37년 4월 8일연표보기 - 오메트르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862년 6월 14일 - 오메트르 사제 서품
활동 시기/일시 1863년 - 오메트르 조선 입국
몰년 시기/일시 1866년 3월 30일연표보기 - 오메트르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4년 5월 6일 - 오메트르 성인품 시성
출생지 에젝(Aizecq) - 프랑스 샤랑트주
학교|수학지 앙굴렘,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 프랑스
활동지 조선교구 - 한반도 전역
성격 선교사
성별
대표 경력 신부

[정의]

1866년 충청남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의 천주교 선교사.

[개설]

오메트르(Pierre Aumaitre)[1837~1866]는 프랑스 에젝 태생의 천주교 사제로, 세례명은 베드로, 한국명은 오(吳) 베드로이다. 오메트르는 1862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1863년 조선에 입국하여 전교 활동을 벌이다가 1866년에 체포되어 다블뤼(Marie Nicolas Antoine Daveluy)[安敦伊, 1818~1866] 주교, 위앵(Martin Luc Huin)[1836~1866] 신부와 함께 충청남도 보령의 갈매못에서 순교하였다.

[활동 사항]

오메트르는 1837년 4월 8일 프랑스 샤랑트주의 시골 마을인 에젝(Aizecq)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오메트르는 신부가 되기를 희망하여 15세에 리슈몽 성모 소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앙굴렘 대신학교,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서 수학하여 1862년 6월 14일에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1862년 8월에 프랑스를 떠나 1863년 6월 조선에 입국하였다.

손골[현재 경기도 용인]에서 조선어를 배우고, 다블뤼 주교가 선교하던 충청도 내포 지방과 경기도 수원 일대에서 선교하였다. 병인박해가 일어나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자 1866년 3월 12일 위앵 신부와 함께 자수하였다. 다블뤼, 위앵, 오메트르 신부는 홍주관아를 거쳐 서울로 압송되어 군문효수형을 선고 받고, 1866년 3월 30일 처형장인 보령의 갈매못에서 29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사상과 저술]

오메트르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독실한 신앙심으로 신부가 되었고, 죽음에 임하는 순간까지 신앙을 지키며 순교하였다.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는 중에 “이 세상의 형벌은 후세의 상”이라며 신앙을 증거하였고, 선교사인 자신이 죽으면 신자들은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신자들을 위하여 자진해서 순교하였다.

[묘소]

오메트르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순교 기념관 지하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10월 6일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르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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