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 신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716
한자 平山 申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청라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문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미상 - 신정 출생
입향 시기/일시 16세기 말[추정] - 신정 입향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미상 - 신정 사망
본관 평산 - 황해도 평산군
입향지 평산 신씨 입향지 - 충청남도 보령군 오천면 오포리
세거|집성지 평산 신씨 세거지 - 충청남도 보령군 오천면 선동마을
세거|집성지 평산 신씨 세거지 -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음현리
세거|집성지 평산 신씨 세거지 -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신산리
세거|집성지 평산 신씨 세거지 - 충청남도 보령군 주교면 신대리
묘소|세장지 사간공파 입향조 신광태 묘소 - 충청남도 보령군 사가리마을
성씨 시조 신숭겸(申崇謙)
입향 시조 신정(申禎)

[정의]

신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개설]

평산 신씨(平山 申氏)는 신숭겸(申崇謙)[?~927]을 시조로 하고, 신정(申禎)[?~?]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연원]

평산 신씨는 고려 개국공신인 신숭겸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고려 후기 15세손에 이르러 크게 번성하여 19개 종파가 형성되었다. 이후 신정이 보령으로 입향하였다.

[입향 경위]

입향조 신정은 음보(蔭補)[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음]로 관직이 사헌부 감찰, 현감에 이르렀지만, 일찍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 유유자적하던 중 임진왜란을 피하여 오서산(烏棲山) 서쪽으로 들어오면서 충청남도 보령군 오천면 오포리로 입향하게 되었다.

입향 후 신정은 신선처럼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정 살던 곳을 ‘선동[仙洞 또는 蟬洞]’으로 불렀다. 신정 일가는 중시조 신하(申夏)와 6대조 신가배(申可培)의 묘가 함경도 지역에 있어서 함경도에서 이주하여 왔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신정의 당숙과 종조할아버지 묘가 부여 홍산에 있는 것을 보면 인근 부여와도 연고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정은 신붕(申鵬), 신홍(申鴻), 신봉(申鳳), 신곡(申鵠), 신한(申鷴) 5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후손들이 보령시 오천면 선동마을과 환경이 흡사한 보령시 청라면 음현리선유동, 신산리, 주교면 신대리평산 신씨 본관 지역인 평산과 같은 이름의 대천 화산동 큰골[大谷] 등에 거주하면서 자손이 매우 번성하여 지금까지 세거하고 있다.

다른 계통의 사간공파(思簡公派) 후예들도 보령 오삼전면 사가리[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황룡리]로 입향하였다. 이때 입향한 인물은 신광태(申光泰)[?~?]로 영조 대 입향하였는데, 사위 김이철(金履澈)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안동 김씨의 입향조이기 때문에 장인과 사위가 같이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신광태의 후손들은 오삼전면 사가리 일대와 장현리에 이주한 후 솔밭을 개간하여 농토를 일구어 터전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현황]

2015년 통계지리정보서비스 본관 인구 분포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평산 신씨는 2,440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관련 유적]

사간공파 입향조 신광태의 묘소와 비가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사가리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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