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문서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993
한자 鹿門書堂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내항동 녹문마을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정필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최초 설립지 녹문서당 -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 내항리
성격 초등교육기관
설립자 유호근

[정의]

근대 시기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 내항리에 있었던 서당.

[개설]

근대 교육이 자리 잡기 전에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서당이 운영되어 기초 교육을 담당하였다. 서당에서는 주로 한문 강독, 한자 연습, 시문 짓기 등의 교육을 주로 하였으며, 교재는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통감(通鑑)』, 『소학(小學)』 등이었다. 특별한 허가나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며, 훈장(訓長)과 접장(接長) 정도의 인원만 있으면 어느 곳이나 개설할 수 있었다.

서당은 운영 형태에 따라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데, 사가(四可) 유호근(柳浩根)[1853~1925]이 설립한 녹문서당(鹿門書堂)은 훈장 자영(自營) 서당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교육 활동]

초기에 유호근은 보령군 청라면 지역에서 강학하다가 대천면 내항리 녹문에서 서당을 운영하였다. 대상은 문화 류씨(文化柳氏) 후예와 일반 자제들이었다. 유준근, 최익, 김병현, 민재국, 이홍직, 이홍규 등이 녹문서당에서 수학한 학생들이다.

유호근은 최익현·김복한·백관형 등과 서로 통하였고, 임한주(林翰周)·안병찬(安炳贊) 등과도 학문적 교류가 잦았다. 녹문서당은 대천 지역을 포함하여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전역에 명성이 높았다.

[현황]

녹문서당 설립자이자 애국지사인 유호근은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보령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하였다.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여하였으며, 1919년 파리장서(巴里長書)[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보낸 장문의 서한]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하지만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으며, 출옥 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25년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5년 유호근의 공로를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보령시지』(보령시지편찬위원회, 2010)
  • 국립대전현충원(https://dn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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