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341
한자 蘿院里 金成雨 將軍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 산1-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윤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327년 - 김성우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392년 - 김성우 자결
조성 시기/일시 1392년연표보기 - 나원리 김성우 장군묘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2016년 8월 5일연표보기 - 나원리 김성우 장군묘 보령시 향문화유산 제6호 지정
현 소재지 나원리 김성우 장군묘 -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 산1-1 지도보기
성격 묘소|묘역
관련 인물 김성우|김극신
소유자 광산김씨 판도판서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보령시 향토문화유산 제6호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고려 후기 김성우 장군과 부인 진원 박씨의 묘.

[개설]

고려 후기 무신이자 전라우도(全羅右道) 도만호(都萬戶)를 지낸 김성우(金成雨)[1327~1392] 장군과 부인 진원 박씨의 묘소이다.

[김성우의 생애]

김성우는 고려 말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낸 김윤장(金允藏)의 아들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왜구들의 침략이 심하자 전라우도 도만호로서 군사를 이끌고 전투를 하여 승전하였는데, 이때의 전투로 인해 보령 지역에 군입포, 군들재, 관암, 의평리, 옥마봉 등과 같은 지명이 생겼다. 이후 고려 조정으로부터 보령 지역을 사패지(賜牌地)로 받아 정착하였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충신으로서 자결하였고 이후로 김성우의 후손들이 대대로 보령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위치]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소재지에서 소양리 방향으로 600m 가다가 청라중앙교회로 들어가는 골목으로 들어가 상중1반 마을회관 방향으로 700m를 더 직진한다. 익랑 정류소에서 좌회전하여 다리를 건너 500m를 들어가면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 산1-1번지 나원리 김성우 장군묘가 나온다.

[형태]

묘 봉분 두 개가 앞뒤로 나란히 있는데, 뒤쪽 묘가 김성우 장군과 부인인 진원 박씨를 합장한 묘이다. 앞쪽에는 장군의 현손(玄孫)이자 우정(憂亭) 김극성(金克成)[1474~1540]의 형인 김극신과 부인 전주 이씨의 합장묘가 있다.

[금석문]

김성우 장군의 묘소에는 충청남도 보령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김성우 장군 묘비가 있다.

[현황]

매년 11월 1일에 보령문화원 주최로 ‘김성우 장군 추모’ 제향을 지낸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광산 김씨 판도판서공파가 정착하게 된 시초가 되었으며, 이후 한산 이씨, 원주 원씨, 경주 이씨 등의 성씨들과 사돈 관계를 맺어 보령 지역 내 기반을 조성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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