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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119
한자 鎭里堂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승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당집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이튿날
신당/신체 당집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진리에서 마을의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진리 당제 는 음력 정월 초이튿날 당제산 중턱에 있는 당집에서 지낸다. 원당이라고 부르는 당집은 우진각지붕의 단칸 기와집으로 2006년에 개수하였다. 당집 내부의 정면 중앙에 부처, 좌측으로 산신과 삼불 제석, 우측으로 대신 할머니와 글문 대감이 있고 이 외에 옥황상제, 장군과 오방신장, 용왕, 칠성 등 11위의 당신도가 걸려 있다.

과거에는 위도에 살던 무녀가 원당에서 당굿을 행했으나 사제무가 위도에 살지 않게 되면서 무녀 대신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풍물패와 마을 부녀자들이 주도하는 형태로 변모했다. 특히 무녀가 했던 역할을 마을 부녀자들이 맡아서 하고 있다. 위도 띠뱃놀이[원당제]나 식도리 당제에서는 무녀가 쌀 점으로 배서낭을 내려 주었는데, 진리에서는 쌀 점을 쳐서 한 해 운수대통을 기원한다. ‘진리’라는 마을 이름은 수군 진영이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옛 위도의 진(鎭)에 동헌 건물이 남아 있고, 이곳에서 도청굿이 행해진다.

[연원 및 변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따르면 1682년(숙종 8) 위도에 진이 설치되고 수군첨절제사가 배치되었다. 진리의 옛 이름은 가리포(加里浦)였으나 수군 진영이 설치된 이후로 ‘진말’이라고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부터 ‘진리’라 하였다. 진리 당제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진리가 다른 마을에 비해 농업 비중이 높고, 조선 시대 관아가 있던 치소 마을이므로 당제의 연원이 깊고 당제가 큰 규모로 행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당/신체의 형태]

진리 당집은 진리에서 벌금으로 가는 길 중간 서편의 야트막한 당제산 중턱의 숲속에 있다. 당집 주위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고 돌담이 둘러쳐져 있다. 주민들은 진리 당집을 ‘원당’이라고 부른다. ‘원당’이 위도 대리 마을과 같이 소원을 빌기 위한 당이라는 뜻의 ‘원당(願堂)’인지, 관아가 있는 으뜸 마을에 있는 당이라는 뜻의 ‘원당(元堂)’인지는 알 수 없다. 당에서 모시는 서낭은 열두 서낭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11위의 당신도가 당집에 걸려 있다.

2006년에 개수한 당집은 목조 흙벽으로 내부의 정면 중앙에 부처, 좌측으로 산신과 삼불 제석, 우측으로 대신 할머니와 글문 대감이 있고 이 외에 옥황상제, 장군과 오방신장, 용왕, 칠성 등이 있다.

[절차]

1. 산신제

정월 초하룻날 자정 무렵에 제관과 마을 남자들이 마을 왼편 뒷산 능선에 있는 산제 터에 가서 산신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선정된 제관이 목욕재계하고 혼자 산제 터에 가서 메를 지어 올리며 엄숙하게 산신제를 지냈으나, 요즘에는 제관을 따로 선출하지 않고 진리에 속한 5개 반 반장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제관을 맡는다. 마을 남자들도 함께 제터에 올라간다. 제관은 메를 지어 올리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리며 절을 한다. 산신제에 함께 참석하는 마을 남자들도 번갈아가며 소지를 계속 올리고 절을 하며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

2. 당산제

정월 초이튿날 아침, 마을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러고 나서 오폭기와 영기 2개, 제관과 풍물패로 구성된 일행이 당제를 지내러 출발한다. 가는 길목에 마을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동·서·남쪽의 당산나무를 차례로 돌며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는 세 곳은 마을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지금은 당산나무가 있지만 옛날에는 장승이 있었다고 한다. 당산제는 한지에 간소한 제물을 차리고 소지, 헌작, 축원, 퇴송 순으로 간결하게 하며, 풍물패가 당산굿을 쳐주는 방식으로 지낸다.

3. 당굿

일행은 마을 회관으로 돌아와 쉬었다가 당제 준비를 하고 원당에 오른다. 당집에 도착하면 풍물패가 굿을 치며 당집을 한 바퀴 돌아 당신(堂神)에게 일행의 도착을 고한다. 위도에 무녀가 살았을 때는 무녀가 진리의 당굿을 했으나 무녀가 없는 오늘날에는 마을 부녀자들과 풍물패가 당제를 주관한다. 풍물패가 당집 마당에서 휴식을 취할 동안 부녀자 두 명은 당집에 제물을 진설하고 당제 지낼 준비를 한다.

풍물패 구성원들과 부녀자가 각각 장구, 꽹과리, 징을 잡고 악사 역할을 한다. 또 다른 부녀자는 당 서낭에게 재배 후 마을의 평안과 운수를 빈다. 그리고 당에 올라온 사람들을 차례로 당집 안으로 불러들여 재배하고 소지를 올리게 한 다음, 쌀 점으로 한 해 운수를 봐준다. 쌀 점은 산(算)쌀의 홀짝 숫자로 그해 운수를 점치는 것으로 짝수가 나오면 운수가 좋은 것으로 본다. 소지가 잘 올라가고 산쌀이 단번에 짝수가 나오는 사람은 기뻐하며 제상에 돈을 내놓기도 한다. 쌀 점을 볼 때 산쌀이 홀수가 나오면 쌀알을 버리고 짝수가 나올 때까지 산을 맞춘다.

산쌀로 한 해 운수를 점치는 쌀 점은 원래 진리의 당굿을 하던 무녀가 마을 사람들의 명과 복을 빌어주는 재수굿에서 했다고 한다. 무녀는 없지만 마을 부녀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여 산쌀의 산맞추기로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쌀 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인근 마을인 대리식도리에서는 선주들의 배서낭을 내림받을 때 산쌀로 산을 맞춘다.

4. 퇴송

쌀 점이 끝나면 제물을 모두 거두어 함지에 담아 당집 주변에 뿌린다. 이를 ‘퇴송’이라 하며, 잡귀들을 먹여 돌려보내는 의미가 있다. 퇴송을 할 때 풍물패는 계속 풍물을 쳐주고, 퇴송이 끝날 때쯤에는 당집을 돌며 마지막에 인사굿을 치고 당제를 마친다. 당에서 내려와 마을로 돌아온 풍물패는 옛 공동 우물에서 우물굿을 쳐주고, 마을 회관 앞에서 대열을 정비하여 도청굿을 준비한다.

5. 도청굿

도청굿은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무사를 기원하며 위도 관아와 그 주변에서 행한다. 도청굿 때에는 당굿에 참여하지 않았던 부녀자들도 나와서 비손을 하고 신수를 보기도 한다. 부녀자들이 위도 관아 앞에 제상 여러 개를 벌여 놓으면 풍물패가 그 앞에서 굿을 쳐준다. 이어서 관아 안에 들어가 관아 앞마당에 있는 우물에서 우물굿을 친 후, 동헌 건물을 한 바퀴 돌아 나온다. 풍물패가 굿을 치는 동안에 부녀자들은 제상 앞에서 소지를 올리며 마을과 각 가정의 평안을 기원한다. 그리고 제물을 함지에 담아 주변에 골고루 뿌리는 퇴송을 하고 나면 도청굿이 끝난다. 이후 일행은 마을 회관으로 가서 마당밟이를 준비한다.

6. 마당밟이

도청굿이 끝나면 풍물패는 이날 오후부터 며칠간 마당밟이를 한다. 풍물패가 방문한 가정에서는 쌀이나 돈을 제상 위에 내놓는다. 지금은 대부분 쌀보다 돈을 내놓는다고 하며, 이 돈은 마을 공동 자금으로 쓰인다. 예전에 칠산 바다가 조기 어장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마당밟이가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부대 행사]

마을 부녀자들은 당제 이튿날인 초사흗날이나 별도의 날을 잡아서 무녀를 불러다가 바다에서 죽은 조상들을 위로하는 ‘선창굿’을 했다. 부녀자들은 선창굿 때 수중고혼을 달래는 의미로 해변가를 따라가면서 제물을 바다에 던지는 ‘산물’을 했다. 무녀를 부르기가 여의치 않은 요즘에는 선창굿을 풍물패의 굿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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