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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014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행묵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보부상 조직의 역사와 문화 전통.

[저산팔읍 상무우사의 전통]

보부상(褓負商)은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을 통틀어 지칭한다. 전통 사회에서 보통 5일마다 열리던 사설 시장인 장시(場市)를 중심으로 지게나 봇짐으로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며 활동하였던 전문 행상인들이나 이들이 속한 단체를 말한다.

저산팔읍 상무우사(苧産八邑 商務右社)는 충청남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보부상 집단이다. ‘저산팔읍’은 모시가 많이 생산되던 부여, 홍산, 임천, 남포, 비인, 한산, 서천, 정산 등 8개 지역을 말하며 ‘저포팔읍(苧布八邑)’이라고도 하였다. 혹자는 정산 대신 부여군 은산을 넣기도 한다.

저산팔읍을 무대로 활동하였던 보부상 집단에는 저산팔읍 상무우사 외에 저산팔읍 상무좌사(苧産八邑 商務左社)도 있었다. 저산팔읍은 동일한 상권을 가리키므로 상인 집단이 다른 것이다. 보통 좌사는 등짐장수, 우사는 봇짐장수를 가리키지만 전해지는 문서를 보면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좌사는 행상을 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수이고, 우사는 장시에서 물건을 파는 장수였다. 그러므로 좌사는 행상인을, 우사는 정주 상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좌사와 우사 조직의 이러한 분화는 저산팔읍의 보부상 조직이 상당히 발달된 상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충청남도 지역의 보부상 집단은 부여 지역을 주무대로 활동하였던 저산팔읍 상무우사와 저산팔읍 상무좌사를 비롯하여 예산·덕산·면천 일대를 무대로 활동한 예덕상무사, 홍성, 광천, 보령, 청양, 대흥, 결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원홍주육군상무사 등이 있었다.

1955년 부여 지방을 답사하던 유교성 충남대학교 교수에 의하여 저산팔읍 상무우사의 소장 물품과 문서들이 정리되었고, 전국 최초로 보부상 조직으로서 부역 지역의 저산팔읍 상무우사가 소개되었다. 소장 물품과 문서에는 목록류, 규약류, 기물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980년 11월, 저산팔읍 상무우사의 자료와 유물은 중요 민속 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유물은 안전하고 전문적인 관리를 위하여 국립부여박물관에 기탁되어 있다.

전해지는 저산팔읍 상무우사의 자료는 다른 보부상 집단과는 다르게 고문서가 많다. 각종 소지류(所志類), 차첩류(差帖類), 전령류(傳令類), 통문류(通文類) 등이다. 다른 지역에서 전해지는 보부상과 관련한 자료와 비교하면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고문서의 일부는 현재 다른 지역의 박물관 도록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저산팔읍 상무우사는 다른 지역과는 몇 가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현존하는 자료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시기에 조직되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보부상 조직이 19세기 후반에 결성된 반면 저산팔읍 상무우사는 1845년에 결성되었다. 둘째, 다량의 고문서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예덕상무사의 경우 고서만 있고 고문서는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다. 셋째, 70여 년 전에 보부상 조직으로는 전국에 최초로 소개된 조직이라는 점이다.

저산팔읍 상무우사의 조직과 활동은 전해지는 고문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우선 10건에 해당하는 소지와 원정(原情)은 암행어사, 감사, 부여현감 등에게 올린 청원서들이다. 대체로 1839년부터 1850년 사이에 작성된 것이며 부여 은산의 종이 가게 상인을 상대로 하는 소송, 종이 가게에서 지나치게 징수하여 바꾸어 달라는 내용, 고란사라는 절의 승려가 분쟁에 개입하고 있다는 내용 등이다.

임명장에 해당하는 차첩도 다수 남아 있다. 보부상 조직의 임명장을 수령을 통해서 받고자 하였던 것도 매우 특이한 점이다. 특히 1845년 한 해 부여현감, 홍산현감, 한산군수, 비인현감에게서 동시에 받은 것이 특징이다. 이는 저산팔읍 상무우사가 저산팔읍에 해당하는 모든 지역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초기에 창설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산팔읍 지역에서 1845년을 기점으로 저산팔읍 상무우사가 조직된 것은 보부상들이 제출한 청원서에 잘 드러난다. 청원서에는 상인들 중에서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두목(頭目)을 임명하여 달라고 홍산현감에게 요구하는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하여 저산팔읍 상무우사가 보부상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조직이었으며 추후에 수령을 통하여 추인을 받고자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처음으로 받은 직책이 좌상(座上)이고 뒤에는 접장(接長)으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저산팔읍의 상권에 대해서는 보부상들이 올린 소지를 통해서 소상하게 알 수 있다. 창설 초기 보부상들이 담당하는 지역은 6개 군현으로 부여, 홍산, 한산, 비인, 서천, 남포였다. 그러므로 초창기에는 저산육읍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보부상들이 처음부터 순탄하게 상권을 인정받았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청원서에 대한 한산군수의 답변을 보면 폐단을 만들 우려가 없지 않다고 하여 차첩 발급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서천군수도 굳이 차첩을 발급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보부상들이 조직을 창설한 초기에는 스스로 징계 규정을 만들어서 규율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술주정하거나 횡포를 부린 자, 억지로 강매하거나 흥정을 하는 사람,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에게는 곤장을 치도록 하였다.

1872년에 이르러 1개 군현이 추가되었다. 전해지는 자료를 보면 부여, 홍산, 한산, 비인, 서천, 남포 이외에 임천이 추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저산팔읍 상무우사는 지금의 부여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보부상이 조직된 셈이다. 각 군현의 관할 지역을 통(統)이라고 부르고 통 전체를 총괄하는 보부상을 도접장(都接長)이라고 불렀다.

1903년 정산이 추가되면서 저산팔읍이 완성되었는데 이때 ‘저산팔읍’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1963년 현지 조사에 따르면 저산팔읍의 장시는 ‘윗 4골’과 ‘아랫 4골’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윗 4골은 은산이 1일장, 홍산과 정산이 2일장, 부여가 3일장, 임천이 4일장이고, 아랫 4골은 한산이 1일장, 서천이 2일장, 비인이 3일장, 남포가 4일장이라고 한다. 이를 통하여 윗 4골은 지금의 부여군 전역을 상권으로 하는 장시망(場市綱)임을 알 수 있다.

저산팔읍에서 거래되던 품목은 조선 헌종 때 서유구(徐有榘)가 펴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통하여 알 수 있다. 홍산에서는 저포, 홍시, 연초가, 부여에서는 면포, 저포, 연초, 우독, 백어, 제어, 은구어가, 임천에서는 저포, 연초, 광어, 면어, 청어, 석어가 거래되었다. 당시 부여 지역에서 거래되던 품목 중 공통적인 물목이 저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산팔읍 상무우사의 인적 구성은 임명장인 차첩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저산팔읍 상무우사의 인적 구성은 좌상, 공원, 유사, 집사의 4층으로 위계가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이 되면서 접장, 공원, 집사, 비방의 4층 구조로 변하였다. 모두 유학 혹은 한량의 직역을 가지고 있었다.

1845년부터 1854년까지 관청에서 받은 임명장 중에서 홍산현감과 부여현감에게서 받은 임명장이 가장 많다. 이를 통하여 홍산과 부여가 저산팔읍 상무우사의 중심 무대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저산팔읍 상무좌사의 전통]

저산팔읍 상무좌사는 1955년, 부여 지역을 답사하던 유원동 충남대학교 교수가 부여군 홍산면에 거주하는 보부상 후손의 유물을 검토하면서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저산팔읍 상무좌사가 남긴 자료와 유물에는 목록류, 규약류, 기물 등이 있다. 현재 유물은 국립부여박물관과 충남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산팔읍 상무좌사 조직의 인적 구성에 대한 정보는 규정과 명단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규정은 직제에 대한 내용을, 명단은 조직 운영 정보를 담고 있다. 저산팔읍 상무좌사의 경우 역대 임원의 명단 등을 기록한 『청금록(靑衿錄)』이 다수 남아 있어서 조직 구성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중에서 부여 지역과 관련된 청금록은 『임홍청금록(林鴻靑衿錄)』이다. ‘임홍’은 임천과 홍산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임홍청금록』은 임천과 홍산의 저산팔읍 상무좌사 조직의 명단을 정리한 것이다. 『임홍청금록』의 맨 앞에는 절목(節目) 성격의 내용이 들어 있으며 이외에는 모두 명단이 작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확인되는 연도는 1894년이다. 저산팔읍 상무좌사가 부상(負商) 조직으로 1894년에 처음 창설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산팔읍 상무좌사의 조직 구성원으로는 접장, 본방공원, 도공원, 별공원, 도집사, 서기 등의 직임이 확인된다. 이외에도 부여 지역과 관계된 자료로는 『서부좌사선생안(舒扶左社先生案)』을 들 수 있는데 1910년부터 해마다 작성된 명단이며 접장의 명단만 기록하여 두었다. ‘서부’는 서천과 부여를 지칭한다. 지역이 표기되어 있는 사례를 보면 비인, 남포, 홍산, 임천, 한산, 서천 등의 군현 명칭에서부터 시작하여 길산, 마산, 문산, 내산, 마장, 판교, 종천, 옥산, 논치, 동방, 세도 등의 명칭도 확인된다.

저산팔읍 상무좌사와 저산팔읍 상무우사는 해마다 음력 3월 10일경 이틀에 걸쳐 총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공문제를 지내고 의례의 뒤풀이로 보부상놀이를 하였다. 공문제 총회 일자는 각 상단별로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음력 3월 10경이었다. 저산팔읍 상무좌사는 3월 11일경, 저산팔읍 상무우사는 3월 13일경 개최하였으며 총회 장소는 현직 접장 거주지나 장터에서 열렸다. 총회 뒤의 연회는 옛 접장이 준비를 전담하고, 음식 일체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총회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원 선거, 그중에서도 접장을 뽑는 것이었다. 저산팔읍 상무사의 접장 및 임원 선출 방식은 8개 읍을 둘로 나누어 격년제로 교대로 돌아가면서 후보를 내고 선출하였다. 부여, 정산, 홍산, 임천이 한 곳이고 한산, 서천, 비인, 남포가 한 곳이 된다. 총회에서 입후보자의 명단을 돌리면 원하는 자의 성명 아래 점을 찍는 권점(圈點)의 방식으로 투표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50~1960년대가 되면서 미리 협정된 선출 결과를 총회에서 보고하는 형식으로 선거 절차가 생략되었으며 이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고 한다.

[부여 보부상놀이]

부여군 홍산과 임천 지역에서는 소중한 민속 문화인 보부상 문화를 재현·보존·발전시키고자 정기적으로 행사를 개최하며 전승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부여 보부상놀이’와 ‘보부상 공문제(公文祭)’ 등이 대표적이다.

부여 보부상놀이보부상 공문제를 복원한 놀이이다. 보부상 공문제는 조선 후기 보부상들이 총회를 열 때 공문과 인장, 접장 및 임원 명단 등을 놓고 지내던 일종의 제사이다. 접장, 임원 등의 선출뿐만 아니라 잔치와 여흥까지 아우르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였다.

보부상 총회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공사, 중점, 하체 등이 있다. 공사는 총회에서 임원 선출, 사무 인계 등 보부상단의 공무 처리를 강조하는 말이다. 중점은 보부상의 조직 임원을 가리키는 말로 임원 선출을 의미한다. 하체는 신임 접장을 선출하면 고을 수령에게 지위를 인정받는 차첩을 내려 받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신구 접장의 교체라고 볼 수 있다. 공문제는 이와 같이 세 종류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문제는 각 임소별로 집결하여 신임 접장 선출 투표를 하고 신구 접장 및 임원 간 사무 인계를 하였다. 이후 잔치와 여흥이 벌어지며 귀임 행진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잔치와 여흥에서는 보부상들뿐만 아니라 장터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연희패, 각설이 등의 각종 타령과 놀이가 벌어졌다.

부여 지역 보부상들은 1960년대 무렵부터 각종 의례와 놀이, 사건 및 일화 등을 소재로 보부상들의 전통을 보부상놀이 형태로 계승하였다. 공연극 형태로 전승된 보부상놀이는 이전에 보부상들의 축제로 불리던 공문제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1979년에는 부여 보부상 놀이로 제2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여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기도 하였다.

부여 공문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저산팔읍을 중심으로 성황리에 열렸지만 물류와 산업의 발달로 명맥만 남아 있었다. 부여군에서는 홍산면에 거주하던 영위(領位) 김재련을 중심으로 저산팔읍 상무사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마지막 저산팔읍 상무사 영위인 김재련이 보부상의 모든 유품을 박물관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뒤 명맥이 끊겼다.

부여에서는 저산팔읍 상무좌사 후예들이 홍산보부상보전연구회 활동을 통해서 그리고 저산팔읍 상무우사 후예들이 임천보부상보존회 활동을 통하여 맥이 끊겼던 보부상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2015년 창립한 홍산보부상보전연구회는 2016년 홍산을 중심으로 한 저산팔읍 상무좌사의 활동을 재현하여 사라져 가는 보부상 문화를 지역 전통 재래시장과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였다.

2022년에는 4월 30일부터 2022년 5월 1일까지 이틀간 홍산면 일원에서 ‘홍산 보부상 공문제’를 개최하였다. 홍산 보부상 공문제는 고유제, 임소 영접, 총회, 전장식[차정첩 수여]을 시작으로 공문 제례, 보부상 놀이, 신차영감행차 등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임천보부상보존회는 보부상 문화를 계승·발전시킴으로써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지역 화합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2016년 창립하였다.

임천보부상보존회는 2022년 11월 임천면 형방청 일원에서 제5회 임천 보부상 공문제를 개최하였고, 2023년 5월에는 임천면 만세장터에서 보부상 홍보 및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보부상 체험 활동을 운영하는 한편 보부상 프리마켓을 열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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