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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544
한자 扶餘 驪興閔氏 古宅
이칭/별칭 민칠식 고택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중로 87[중정리 537-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29년 - 부여 여흥민씨 고택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12월 24일연표보기 - 부여 여흥민씨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192호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1년~2004년 - 부여 여흥민씨 고택 부여군 매입 및 보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부여 여흥민씨 고택 백제관으로 운영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여 여흥민씨 고택 국가민속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부여 여흥민씨 고택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부여 여흥민씨 고택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중로 87[중정리 537-1]지도보기
성격 가옥
양식 솟을대문
정면 칸수 8칸[안채]|3칸[사랑채]
측면 칸수 2칸[안채]|1칸[사랑채]
소유자 부여군청
관리자 부여군청
문화재 지정 번호 국가민속문화유산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여흥 민씨의 가옥.

[개설]

부여 여흥민씨 고택(扶餘 驪興閔氏 古宅)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에 있는 있는 조선 후기 가옥이다. 19세기 후반의 건축 양식이 반영된 건물로 전형적인 양반 사대부의 가옥 형태를 보이면서도 경상도 가옥 양식이 나타난다. 초기에는 여흥 민씨 후손 민칠식의 이름을 붙여 ‘민칠식 고택’으로 불렀으나 현재는 ‘부여 여흥민씨 고택’이라고 한다.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9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위치]

부여 여흥민씨 고택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정리 537-1번지에 있다. 낮은 뒷산을 배경으로 하여 널찍한 터에 남향으로 있다.

[변천]

부여 여흥민씨 고택은 사랑채 내림마루 끝에 1705년인 ‘숭정 87년’이라고 적힌 명문 기와가 확인되지만, 건립 연도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건축 양식을 보면 19세기 후반의 건축물로 추정된다. 본래 용인 이씨 소유였던 것을 여흥 민씨 민용묵이 매입하였고, 민용묵의 넷째 아들 민치준이 집을 크게 보수하였다고 전한다. 1829년 상량문으로 보아 현재의 형태는 보수 이후로 보인다.

[형태]

부여 여흥민씨 고택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가 합쳐 ㅁ자 구조를 이루고 있다. 앞쪽에 사랑채가 있고 뒤쪽에 안채가 있는데, 하나의 지붕 아래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광채와 중문간채와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다. 왼쪽부터 사랑방 2칸, 마루방 1칸이 연접되어 있으며 사랑채 옆 중문은 안채로 연결된다. 안채는 정면 8칸, 측면 2칸의 일자형 평면 구조이다. 왼쪽부터 부엌 1칸, 안방 2칸, 대청 2칸, 건넌방 1칸, 안마루 2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건넌방을 없애고 5칸 대청으로 개조되었다.

안채의 좌우로는 익랑채를 덧대었고, 정면과 후면에는 1칸 규모의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좌우의 익랑채와 툇마루를 통하여 모든 방과 연결된다. 대문채는 11칸의 대규모 공간으로 중앙에는 솟을대문이 있고, 양옆으로는 행랑채가 이어져 있다.

[현황]

부여 여흥민씨 고택은 부여군에서 2001년 가옥을 매입하여 2004년까지 보수하였으며, 2009년부터는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현 백제역사문화연구원]에서 부여한옥생활체험관 백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가옥 일부가 개조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부여 여흥민씨 고택은 19세기 후반 양반 사대부의 가옥 형태를 보여 주며, 경상도의 가옥 양식이 가미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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