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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975
한자 洪淳大
영어공식명칭 Hong Sunda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8년 3월 14일연표보기 - 홍순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6년 5월 11일 - 홍순대 홍주의진 좌군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홍순대 고군도에 유배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홍순대 해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6일 - 홍순대 은산면 은산시장 만세 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62년 7월 2일연표보기 - 홍순대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홍순대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출생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거주|이주지 부여군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지도보기
활동지 예산 - 충청남도 예산군
활동지 홍주 - 충청남도 홍성군
활동지 은산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홍주의진 좌군관

[정의]

일제 강점기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홍순대(洪淳大)[1888~1962]는 1888년 3월 14일 부여에서 태어났다. 1906년 3월에 봉기한 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흩어졌던 홍주의진이 5월 9일 홍산(鴻山)[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서 재봉기할 때 홍순대는 의진에 가담하여 5월 11일 좌군관에 임명되었다. 이세영(李世永)·채광묵(蔡光默)·이용규(李容珪) 등과 함께 다시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閔宗植)은 홍주의진을 이끌고 5월 19일 홍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고, 5월 31일 성이 함락될 때까지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 내며 치열하게 항전하였다.

홍순대는 홍주성이 함락될 때 전투 중 일본군에게 사로잡혔고, 1907년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유배형을 언도받고 고군도(古群島)에 유배되었다. 1908년 해배되었지만 요시찰인으로 지목되어 항일 운동에 제약을 받게 되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홍순대는 3월 6일 은산면 은산시장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고,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 작성된 『해암홍순대사록(海菴洪淳大事錄)』에 따르면, 홍순대는 가좌면(加佐面)·방생면(方生面)[현 은산면], 규암면, 청양군 적곡면[현 청양군 장평면] 사람들과 협의하여 3월 6일 은산시장에서 군중을 모아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고 한다. 홍순대는 1962년 7월 2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홍순대의 저술로는 광복 이후에 기록한 『해암홍순대사록』이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홍순대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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