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645
한자 龍井里寺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35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홍보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9년 - 용정리사지 초석, 지대석, 연화문 막새와 기와 등 수습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7월 26일연표보기 - 용정리사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48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2년 - 용정리사지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용정리사지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소재지 용정리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35 지도보기
성격 절터
지정 면적 4,122㎡
관리자 부여군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위치]

용정리사지(龍井里寺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의 동쪽 능산리 일원의 청마산월명산, 독쟁이골에 있는 청마산성의 입구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용정리사지에서는 1979년에 밭을 경작하는 과정에서 초석, 지대석, 연화문 막새와 기와 등이 수습되었다. 이에 따라 백제 불교 문화의 규명에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어 충청남도 부여군이 부여문화재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함으로써 1992년도에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목탑지와 금당지가 확인되었다. 목탑지와 금당지 모두 유구가 심하게 파괴되어 건물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으나, 목탑지의 토층 상태, 금당지 상층 유구의 석재 배열, 와적층 등에서 건물지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었고, 출토 유물에 따라 편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출토 유물은 대부분 수막새와 무문전이며 이외에 여러 점의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형태]

목탑지는 금당지의 남쪽에 배치되었다. 대규모 목탑을 세우기 위하여 역사다리꼴로 되파기 하고, 점토와 풍화암반토를 섞어 약 40단 정도의 계단식 판축을 하였다. 목탑지의 규모는 정확하지 않으나 되파기가 시작된 최상부의 동서 길이 18.5m이고, 최하부의 동서 길이는 14.6m이다. 금당지의 규모는 동서 30.7m, 남북 20.19m이다. 금당지에서 확인된 시설은 기단과 초석, 적심부이다. 기단은 가공된 석재를 사용하여 조성하였고, 협축식이다. 적심부는 판석을 이용하여 둥근 형태로 조성하였다.

[특징]

용정리사지는 훼손이 많이 되었고, 사지 전체를 대상으로 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사찰의 규모와 가람 배치의 특징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목탑지와 금당지의 배치 관계로 볼 때, 백제 사비 시기의 일반적인 가람 배치인 1탑 1금당식으로 추정된다.

[현황]

1984년 7월 26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용정리사지의 금당지는 상하 2개 층이 확인되어 2차례에 걸쳐 금당지가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상층 금당지 기단토에서 출토된 판단첨형 와당으로 보아 초건은 백제 웅진기, 폐기는 6세기 후반으로 보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용정리사지는 백제 웅진기의 사찰이고, 백제 사비 시기에 폐찰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더욱 정확한 초창과 운영 시기를 규명하려면 추가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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