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36
한자 坡平 尹氏
영어공식명칭 Papyeong Yu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파평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입향지 규암면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지도보기
입향지 석성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석성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성씨 시조 윤신달(尹莘達)

[정의]

윤신달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연원]

파평 윤씨(坡平 尹氏)의 시조는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고려개국통합삼한익찬공신(高麗開國統合三韓翊贊功臣) 2등에 책록되고 태사(太師)를 지낸 윤신달(尹莘達)[?~?]이다. 윤신달은 경기도 파주 파평산 기슭에 있는 용연지(龍淵池)라는 연못에 떠 있던 옥함(玉函)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윤신달이 옥함에서 나올 때 겨드랑이에 81개의 비늘과 발에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고, 손바닥에는 ‘윤(尹)’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성을 윤(尹)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예종 때 윤신달의 후손 윤관(尹瓘)[?~1111]이 여진 정벌의 공을 세워 영평현(鈴平縣) 개국백(開國伯)에 책봉되었고, 영평은 파평(坡平)의 옛 이름이므로 후손들이 파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

[입향 경위]

파평 윤씨는 윤돈(尹暾)[1519~1577]이 문화 유씨 유연(柳淵)의 사위가 되어 충청도로 입향하였고, 17~18세기에 윤돈의 손자인 윤황(尹煌)[1571~1639]과 윤전(尹烇)[1575~1636]의 자손 중 일부가 부여의 규암면석성면, 외산면 등에 입향하였다. 윤황의 아들 윤문거(尹文擧)[1606~1672]는 만년에 석성에 우거하였고, 윤문거의 아들 윤박(尹搏)[1628~1675]의 묘가 초촌면에 있는 것으로 보아 초촌면까지 거주지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윤전의 후손 중에는 윤광안(尹光顏)[1757~1815]이 1800년경에 세도면 반조원리에 정착하여 삼의당(三宜堂)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어 세계를 이었다.

[현황]

1987년에 발간된 『부여군지』에 따르면 부여군의 파평 윤씨는 618호이며, 거주지는 부여읍 153호, 규암면 71호, 은산면 31호, 외산면 67호, 홍산면 34호, 남면 21호, 양화면 37호, 임천면 61호, 세도면 28호, 석성면 37호 등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부여 파평 윤씨 관련 유적으로는 세도면 반조원리에 윤광안이 건립한 반호정사(盤湖精舍)와 윤광안의 묘소가 있으며, 초촌면 응평리에는 윤박의 묘소가 있다. 1681년(숙종 7) 송시열(宋時烈)이 윤문거를 기리기 위한 서원 창건을 발의하여 석성면 봉정리에 봉호서원(蓬湖書院)이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윤광안이 세도면 반조원리에 건립한 삼의당도 1909년에 소실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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