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감갑현의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갑수(甲守). 회산감씨 시조 감규(甘揆)의 35세손이며 삼열공파(三烈公派)이다. 아버지는 감재춘(甘在春)이고, 어머니는 밀성박씨(密城朴氏)이다. 감갑현은 아버지의 병환을 6년간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백약이 효험이 없어 걱정하던 중 부인의 꿈에 신선이 나타나서 봉곡산 눈 속에...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감계리에 있는 청송심씨 문중 재실. 감의재는 본관이 청송(靑松)인 심선(沈鐥)과 심원지(沈沅之)를 봉향하는 추모당이다. 심선은 통정사복사정(通政司僕寺正)에, 심원지는 통정이참의(通政吏參議)에 추증되었다. 창원시 북면의 지방도 1045호선 굴현에서 3.2㎞ 정도 가면 나오는 화천교에서 감계리 방면으로 분기된 도로를 따라 약 2㎞...
-
조선 말기 창원 출신의 효자. 감화식(甘華植)의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형관(亨寬), 호는 국포(菊圃). 회산감씨 시조 감규(甘揆)의 36세손이며 돈암공파(遯庵公派)이다. 아버지는 감태백(甘泰伯)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이다. 감화식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뒤 정성을 다하여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환이 나면 온갖 약을 지어 올리는 등 그...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 도태마을에 있는 밀양박씨 문중 재실. 경모재는 선조들을 향사하는 문중 재실로서 밀양박씨 창원 입향조인 박근진(朴根鎭)을 비롯한 선조들을 추모하는 곳이다. 경모재 기문에는 밀양박씨 조상들의 내력을 길게 기술하고 있으며, 입향조와 그의 세 아들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창원시 북면과 칠북면 경계선 부근에서 북쪽 도...
-
고려 후기 회원군에 봉해진 창원공씨의 시조. 공소는 공자(孔子)의 54세손이다. 아버지는 공완(孔浣), 아들은 고려 후기 집현전 태학사로 평장사와 지응양군천우위대장(知鷹揚軍千牛衛大將) 등을 지낸 공여(孔帤)이고, 손자는 공부(孔俯)이다. 본명은 공소(孔昭)였으나 고려 4대 광종의 이름을 피하여 공소(孔紹)로 고쳤다. 공소는 원(元) 순제(順帝) 때 한림학사를...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구명신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현보(顯甫)이다. 부사공파(府使公派) 창원·용정 문중으로서 구설(具雪)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구세봉(具世鳳)이다. 구명신은 묘소가 창원시 동읍에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창원부(昌原府) 동면 일원(또는 대산면 일원)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지극한 효심으로 간호하던 중,...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귀의 사당. 구봉사(九峰祠)는 김해김씨 창원입향조 금산공(琴山公) 김귀(金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김귀는 세종 대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춘추관편수관 및 경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이극돈에 의해 무고되어 용인에서 창원으로 이거하였다. 1485년 향년 60세에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동읍 금산리에...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구석린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성래(聖䚅), 호는 정람(情嵐). 승지공파(承旨公派) 전북(全北) 문중으로, 구설(具雪)로부터 14세 손이며, 봉암(鳳岩) 구정려(具廷呂)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구한웅(具漢熊)이다. 구석린은 당시 창원부 일원에 살았을 것으로 여겨지나 분명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특히 부친이 세...
-
조선 말기 창원 출신의 효자. 구우서의 본관은 능주(綾州), 자는 치견(致見). 능주구씨의 시조 구존유(具存裕)의 25세손이다. 구우서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온갖 지성으로 섬겼다. 모친이 병을 얻어 자리에 몸져누운 때는 한시도 모친의 병석을 떠나지 아니하고 정성껏 간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성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병은 더욱 위중해 사경에 이르...
-
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자. 구정기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우일(宇一). 전라병마절도사를 역임한 구복한(具復漢)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금송(琴松) 구재창(具在昶)이다. 구정기는 천성이 온건하고 평소 행동거지가 반듯하였다고 한다. 항상 『시전(詩傳)』의 「육아장(蓼莪章, 부모의 공을 노래한 대목)」을 읽었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 지체(志體)로 봉양하기에 힘썼...
-
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창원(昌原). 부사공파(府使公派) 동래 문중으로 구설(具雪)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구득룡(具得龍)이다. 구주성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병을 얻어 일어나지 못하자 손가락을 잘라 관혈하여 소생케 하였다. 효행이 향리에 널리 알려져 조정에서 정려를 내려 효의 귀감으로 삼았다. 이러한 내용이『창원시사』에 기록되어 있다. 묘소는...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권을의 자는 차갑(次甲). 아버지는 권준영(權俊英)이다. 이름은 을미년(1595)에 태어났기 때문에 ‘권을(權乙)’이라고 불렀던 것이 굳어진 것이라 한다. 『미수기언(眉叟記言)』에는 창원군 상남면[현 상남동] 바닷가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세거지, 문중, 후손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권을은 조선 선조 대에 창원도호부 서쪽 회원(...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무동리에 있는 선산김씨 취수공파 문중 재실. 귀후재는 본관이 선산(善山)인 김가행(金可行)과 아들 김상기(金尙琦)를 봉향위로 하는 후손들의 추모 제당이다. 김가행은 호가 계림(鷄林)으로 동래현령을 지냈고, 김상기는 진금현령·대사간을 지냈다. 김가행은 좌대언(左代言) 김군정(金君鼎)의 2남이고 지밀직사사 화의군 김달상(金達祥)의 손자이며,...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해김씨 판서공 불비파 종중 재실. 금호재는 판서공 불비파 후손들이 1924년에 파시조인 김불비(金不比)와 그 아들 환성헌(喚惺軒) 김수광(金秀光), 손자 김석공(金錫貢)·김석근(金錫根), 증손 김맹손(金孟孫) 등의 묘소 근처에 건립한 재실이다. 여말선초의 문신인 신묵재(愼默齋) 김불비는 창원시 동읍 산남리에서 출...
-
경상남도 창원시에 묘소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희범(希範), 호는 정성헌(靖醒軒). 초명은 관(館)으로 왕이 직접 내린 이름이다. 아버지는 사인(舍人) 김용직(金容直)이다. 김관[1250~1345]은 1266년에 명경과에 급제한 뒤 교서부를 거쳐 직한림원이 되어 안향(安珦)과 학문을 논하며 남다른 교분을 나누었다. 1270년 삼별...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만경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중약(仲若), 호는 괴희자(愧喜子). 사정공파(司正公派)의 15세손으로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시진(金時振)이다. 직계 후손의 거처는 알 수 없으며, 방계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 등에 거주하고 있다. 김만경은 현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에 살면서...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우진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겸(聖謙).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현파(三賢派)의 5세손인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치영(金致永)이며, 아들은 효자로 이름난 김창용(金昌瑢)이다. 후손들이 창원시 일원과 타지에 거주하고 있다. 김우진은 창원군 상남면 지귀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에서 살았는데,...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이창의 이름에 ‘창(昌)’이라는 항렬자가 있는것으로 보아 김해김씨(金海金氏)이고, 1700년대 인물로 추측될 뿐이다. 김이창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가 병중에 있을 때 약을 구하여 오다가 동구에서 폭우를 만나 개천을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이에 김이창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통곡을 하...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창용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내언(乃彦).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현파(三賢派)의 5세손인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역시 효자로 이름난 김우진(金禹振)이다. 김창용은 창원군 상남면 지귀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에서 살았다. 아버지의 효행을 이었으므로 향리에서 ‘대를 이은 효자’가 났다고 칭송을...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필서는 영조·정조 대에 창원대도호부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지나 분명하지는 않다. 부모를 지극하게 봉양하였으며, 돌아간 후에도 생전과 같이 예를 다하였다. 특히 자신이 늙어서까지 풍우한서(風雨寒暑)에도 부모 묘소를 살피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후에 효행이 널리 알려져 공조참의에 추증되었다....
-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현구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치성(致聲), 호는 회은(檜隱). 김해김씨(金海金氏) 경파(京派) 70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주식(金周植), 동생은 김현세(金顯世)·김현영(金顯永)이다. 김현구의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상천리 일원과 타지에서 살고 있다. 김현구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침저녁 부모에게 문안을 잊지...
-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현세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익성(益聲). 김해김씨(金海金氏) 경파(京派) 70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주식(金周植), 형은 김현구(金顯昫), 아우는 김현영(金顯永)이다. 김현세의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상천리 일원과 타지에서 살고 있다. 김현세의 효행과 관련된 기록과 구전은 ‘효행이 특이하였다’ 정도이다. 형 김현구의...
-
일제 강점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현영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진성(振聲), 호는 욱암(勖菴). 김해김씨(金海金氏) 경파(京派) 70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주식(金周植), 형은 김현구(金顯昫)·김현세(金顯世)이다. 김현영의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상천리 일원과 타지에서 살고 있다. 김현영의 효행과 관련된 기록과 구전은 ‘효행이 특이하였다’ 정도이다....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외감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자이자 사당. 달천정(達川亭)은 1931년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을 추모하기 위해 달천회에서 허목의 유지 근처에 건립한 정자이자 사당이다. 허목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로,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다. 달천회는 허목을 기리기 위해 창원을 중심으로 인근의 유림들이 결성한 모임이며, 현재는 달천...
-
달천정 은 1931년 달천계에서 창원시 북면 외감리 866번지에 미수 허목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원래 이 건물은 창원시 상남동의 양반집을 옮겨 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정면 4칸, 측면 1.5칸의 우진각 팔작지붕이다. 정면에는 방해문(放海門)이라는 3칸 규모의 대문(평삼문)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주변에 담장을 둘렀다. 관리하는 고직사(관리사...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처사 김석우를 향사하는 재실. 덕양재는 처음부터 김석우의 제향을 위한 문중 재실로 출발하였다. 이는 제향 인물의 유래와도 관계가 있다. 김석우(金碩佑)는 김일손의 후손으로 학문과 행실이 돈독하였는데, 부모를 여읜 후 선세의 무오사화 및 기묘사화 때 김일손과 일가가 입은 참화를 생각하고, 덕계산 속에 은거하여 독서로...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에 있는 김귀의 유덕을 기리는 김해김씨 문중 서원. 도남서원은 현대에 세워진 문중 서원으로서, 향사나 강학보다 후손의 돈목을 더 큰 목적으로 삼으면서 그 구심점을 선조에게서 찾았다. 김귀는 단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었으나, 당시 세력가인 이극돈의 무고에 의해 어려움을 당하다가 창원으로 낙향한 인물이다. 제사는 후손들에 의해...
-
도봉서원 은 석산마을의 중앙부에 있는 독립구릉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다. 이 구릉에는 육중한 와가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데, 배치 또한 구릉을 따라 좌우, 상하로 넓게 포진하고 있어 더욱 웅장하게 보인다. 멀리서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마을임을 암시하고 있다. 입지상으로 보면 마치 경주 양동마을에 들어온 느낌이라 할까. 도봉서원은 동산(東山) 김명윤(金命...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밀양박씨 재실. 모본재는 약 400년 전 입향조인 돈수(遯叟) 박세충(朴世忠)이 송촌마을에 입주한 이래 밀양박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생활해 오면서, 종족간의 학문과 예절을 가르치고 배우는 기능을 하였던 곳이다. 재실의 뒤뜰에는 1978년에 밀성박씨 박맹번(朴孟蕃), 박계은(朴繼誾), 박무성(朴戊成), 박승휴(朴承休)...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 신기마을에 있는 압해정씨의 문중 재실. 모원재는 압해정씨(押海丁氏)의 시조 대양군(大陽君) 정덕성(丁德盛)의 6세손인 신라 문하시중 휘 광현공(光顯公)과 부인 진주강씨(晉州姜氏), 아들인 고려조 이부전서(吏部典書) 휘 우공(祐公)과 부인 거창유씨(居昌劉氏)를 제향하는 곳이다. 제향조의 묘소는 천주산 자락 경태룡(庚兌龍) 곤좌(坤座)...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 월산마을에 있는 순창설씨 참의공파(參議公派) 문중 재실. 모육재는 본관이 순창(淳昌)인 설마려(薛磨礪)를 배향하는 추모당이다. 설마려의 자는 방언(邦彦), 호는 모육재(慕育齋)이고, 연일현감을 지냈다. 설마려가 월백리에 입향한 이후 현재 그의 12대 이후 후손들이 문중을 이루고 있다. 창원시 북면의 국도 79호선 굴현에서...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무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밀양손씨 문중 재실. 무산재는 선조를 향사하고 후손들이 강학의 장소로 삼은 사립 교육기관이다. 기문에 의하면 손기복(孫基馥)이 6대조인 참봉 손계남(孫桂南)을 위하여 지었다고 한다. 또한 밀양손씨의 역대 선조들을 열거할 때 특정인만 언급한 게 아니어서 집안의 선대를 위한 재실임을 알 수 있다. 역대 조상을 대상으로...
-
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박시명은 1400년대 후반 창원도호부 사화(沙火)[현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살았는데, 당시 참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여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마음을 받들어 효를 다하였다. 27세에 무과에 응시하여 출사하려 하였으나, 때마침 어머니가 병을 얻어 출사의 뜻을 접고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93세에 죽자 매우 애통...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벽계정은 성재(省齋) 김학두(金鶴斗)를 향사하고 후손들을 강학하는 사립 교육기관이다. 문중 재실로서 김해김씨 집성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담을 사이로 원모재·상현사 등 문중의 또 다른 재실과 한 영역을 이룬다. 김학두는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고 문집을 남긴 선비였는데, 그의 사후 둘째 아들인 김용도(金容道)가...
-
사람은 누구나 생활의 편리를 위해 특정 지역에 자리 잡아 모듬살이(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과 그 주위에는 이름이 붙게 마련이다. 우리가 만나는 석산리라는 명칭도 누군가가 지은 이름인 것이다. 지명은 땅의 모양, 지표상의 특징적인 사물 등에 의해 붙여진다. 석산리의 이곳저곳에 붙여진 지명을 수수께끼 풀듯 살펴보자. 먼저 마을 이름인 석산(石山)은...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하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녕김씨 문중 재실. 삼사재는 김형대(金炯大)의 공적을 기리고 문중의 향사와 후손들의 돈목을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 김형대는 구한말에서 근대까지 생존한 인물로서, 관직 생활도 하였지만 그보다 효행과 돈목으로 집안과 지역민에게 많은 공을 끼쳤다. 재실에서 1㎞쯤 떨어진 도로변에 지역민들이 세운 영세불망비가 있는데,...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유학 교육과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 서원은 조선 시대에 발달한 사립 고등 교육 기관이다. 창원 지역은 15세기 초에 이미 도호부로 편제되어 중부 경남의 행정과 학문 거점 기능을 하였다. 지역 특성상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유학자와, 조선 후기 정계 진출로가 막힌 향촌 사림 학자들의 덕행을 기리는 서원이 많다. 창원 지역에...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곡리에 있는 여양진씨의 문중 재실. 성경재는 여양진씨(驪陽陳氏) 종인들이 모이고 후손들에게 강학을 하는 사립 교육 기관이다. 원래 문중에 진양강씨 열행비와 연일정씨 효행비가 있었는데, 비각이 퇴락하자 다시 지었다. 동시에 중조(中祖)인 진사 진충건(陳忠健)의 제각(祭閣)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주남저수지와 맞붙은 동판저수지...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비 김상정의 사당. 창원시 동읍의 읍사무소에서 지방도 30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2㎞ 정도 가면 왼쪽 편에 화양리 비석군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곡천(谷川) 김상정(金尙鼎)[1668~1729]의 고향인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 입구이다. 곡목마을 입구에서 약 200m 정도 들어가면 마을회관이 있고, 마을회관...
-
고려 후기 창원의 문신. 손수경[?~?]은 1326년(충숙왕 13) 중랑장을 거쳐 1332년 대호군이 되었다. 충혜왕이 원나라에 불려갈 때 시종한 공로로 판종부 사사로 1등 공신에 책록되고, 토지 100결과 노비 10구 등 많은 은전을 받았다. 1342년과 1343년에 한종유(韓宗愈)와 함께 판밀직사사로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첨의참리...
-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명갑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순흥 안씨의 시조는 안자미(安子美)인데, 고려 신종 때 홍위위 보승 별장을 지내고 신호위 상장군에 추증된 사람이다. 세 아들 안영유(安永儒)[一派]·안영린(安永麟)[二派]·안영화(安永和)[三派]는 순흥 안씨 3파의 파조가 된다. 안씨의 역사상 대표적 인물이며 주자학(朱子學)의 태두인 문성공(文成公...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안세인은 1700년대 현 경상남도 마산시 내서읍 안성리에서 살았다. 효행이 돈독하여 아버지가 죽은 후 애도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어 하늘에다 부르짖어 애통함을 달랬다. 그 연유로 향리 사람들이 호천재(呼天齋)라고 불렀다 한다. 경상도에서 조세와 요역을 면제하였다....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 도태마을에 있는 창원구씨 문중 재실. 영모재는 전라병마사를 지낸 구복한(具復漢)을 향사하고 후손들에게 강학을 한 교육기관이다. 문중 재실로서 규모는 작은 편으로, 구복한 묘에서 30m 떨어진 남서쪽 언덕 위에 세웠다. 창원구씨(昌原具氏)의 조상은 원래 구씨(仇氏)로서, 창원의 옛 지명인 구사군(仇史郡)과 관계가 있다. 구복한은 조선...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오이원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감발(甘發), 호는 이수(以秀). 충정공(忠貞公) 오윤겸(吳允謙)의 8세손이자 병조판서 서파공(西波公) 오도일(吳道一)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오태성(吳泰聖)이다. 현재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 일원에 살고 있다. 오이원은 7세 때에 모상(母喪)을 당하였다. 이 후 어머니에 대한 예...
-
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옥석견의 본관은 의령(宜寧). 의령옥씨(宜寧玉氏)의 14세손이며 감사공파(監司公派)이다. 아버지는 옥수(玉壽)이다.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 지역 일원과 타지에서 살고 있다. 옥석견은 창원도호부 불천(佛川)[현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잠리 인근]에 살았다. 어릴 때 아버지가 죽어 가난하였으나 별미가 생기면 가슴에 품고 와서 어머니를...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에 있는 김병린이 건립한 서당. 눌재(訥齋) 김병린(金柄璘)은 1891년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에서 염산(廉山) 김찬원(金璨元)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의 문인이 되었다. 용계서당은 조선 말기 영남을 대표하는 선비로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김병린이 만년인 1935년 강학과 수양을 목적으로 건립한...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 중리마을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원모재는 선현을 향사하고 후손들을 가르치는 사립 교육기관으로, 사당인 상현사(尙賢祠)에 김해김씨 입향 선조인 김억남(金億南)과 그 5세손인 김현이(金顯以) 처사를 제향한다. 기문에 의하면 김억남은 기묘사화 후에 가솔을 거느리고 이곳에 와서 은거하였으며, 그 후로 일문이 여기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하였다...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성산이씨 한은공파(閒隱公派) 문중 재실. 자는 운서(雲瑞), 호는 정곡(定谷)인 성산이씨(星山李氏) 창원 입향조인 이응룡(李應龍)과 그의 아들 및 손을 추모하는 제당이다. 이응룡의 묘소는 남백마을 백월산 자락에 있다. 이 후 선조의 묘사도 이곳에서 함께 지낸다. 북면의 국도 79호선 굴현에서 5㎞ 정도에서 분기되어...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유광익(柳光益)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국서(國瑞). 문화유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의 29세손으로 좌상공파(左相公波)이다. 아버지는 유정문(柳正文)이며, 어머니는 해주오씨(海州吳氏)이다. 유광익은 농부에 불과했지만 효행이 극진하여 친상 중에 죽으로 연명하면서 여막살이를 하였다.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가월리 화산(花山)...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전개된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유교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철학, 사상, 윤리로서 정치, 문화, 교육 등 개인적·사회적 활동의 원리로 존재해 왔다. 유교는 한국 역사상 삼국 시대 전기에 도입된 이래 학교 교육과 사회 제도를 통해 발전하면서 개인과 가족의 윤리에서부터 국가의 정치사상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삶 전체를 유지하는 규...
-
창원 출신의 효자. 이득희는 『창원군지』 등에 효행 내용이 전승되고 있는 것을 보아 창원시와 연고가 있는 인물로 추정된다. 17세 때 어머니가 괴질을 얻어 눕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음식을 자유로이 먹지 못하자 한시도 옆을 떠나지 않고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또한 부인 박씨도 지아비와 같이 효성이 지극하여 30년을 하루같이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향리에서 효자·효...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이석년의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이성문(李聖門), 아버지는 이순적(李順迪)이다. 이석년은 정려비의 비문에 비추어 볼 때 1700년대 인물로 여겨진다. 당시 창원부 상남면 신덕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토월동]에 살면서 손수 농사를 지어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죽자 지극 정성으로 상을 치렀다. 아버지가 병이 나서 자리에...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임성립의 본관은 나주(羅州). 나주임씨(羅州林氏) 시조 임비(林庇)의 24세손이며 장수공파(長水公派)이다. 아들은 임빈(林彬), 손자는 임윤국(林潤國)이다.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 일원에 살았으나 지금은 타지로 이주해 살고 있다. 임성립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나 효성이 지극하였다. 14세때 어머...
-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유등리에 있는 김해 김씨 문중 서원. 저산 서원은 현대에 건립된 서원으로서, 고려 후기 문신인 김관(金菅)을 주향으로 하여, 김문숙(金文淑)·김항(金伉)·김서(金湑) 등을 배향하고 있다. 김관은 안향과 도의로 사귀어, 함께 충선왕을 호종하여 원의 수도에 머물면서 주자학을 연구하고 고려에 도입하였다. 충혜왕과 충목왕 때도 외교와 정치에 공...
-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효자. 주정원의 본관은 신안(新安)이고, 자는 재삼(在三), 호는 국정(菊井)이다. 신안주씨(新安朱氏)의 시조 주희(朱熹)의 30세손이며 웅천파(熊川派)이다. 아버지는 주봉갑(朱鳳甲), 부인은 문씨(文氏)이다. 후손들은 경상남도 진해시 일원에 거주하며 기제를 지내고 있다. 주정원은 당시의 창원부 진해면[현 경상남도 진해시 석동 일원]에...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대장동에 있는 효자비(孝子碑). 주정원비(朱鋌源碑)는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진해에 거주하였던 효행이 뛰어난 주정원(朱鋌源)의 행실을 칭송하기 위하여 1942년에 후손들이 대장동 마을 앞에 건립한 효자비(孝子碑)이다. 효자비(孝子碑)의 비명(碑名)은 ‘효자 국정 주공 정원 지비(孝子菊井朱公鋌源之碑)’이다. 비문(碑文)은 남평(南平)...
-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에 있는 조선 전기 지방 교육기관. 창원 향교는 지방의 교육기관이지만 중앙의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제사를 드리는 문묘(文廟), 강학 공간인 명륜당(明倫堂) 및 중국과 조선의 선철(先哲)·선현(先賢)을 제사하는 동무(東廡), 서무(西廡)와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다. 향교는 각 지방 관청의 관할 하에 두어 부(府), 대도호부(大都護府)...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에 있는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 문중 재실. 첨모재는 김해김씨(金海金氏) 창원 입향조인 김현루(金顯僂)를 배향하는 후손들의 추모당이다. 김현루는 통정군자감(通政軍資監)으로 추증된 인물이다. 북면의 국도 79호선 굴현에서 5㎞ 정도 가다가 동읍 화양리 방면으로 분기하여 도로를 따라 1.5㎞ 이르면 백월산 남쪽의 월백리 월산...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 대한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창녕조씨 승지공파(承旨公派) 문중 재실. 추감당은 본관이 창녕(昌寧)인 조치우(曺致虞)를 배향하는 문중 추모당이다. 조치우는 조선 성종 때 문신으로, 1494년(성종 25) 별사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성균관전적이 되어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예천군수를 지내면서 선정으로 이름이...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신촌리에 있는 조선 말기 창원황씨 문중 재실. 추모재는 선조를 향사하고 후손들의 강학 장소로 쓰였던 사립 교육기관이다. 첨정을 지낸 황룡발(黃龍潑), 통정(通政)에 오른 황세발(黃世潑)을 향사하고 있다. 황룡발은 창원황씨 논산 입향조로서 학문에 힘쓴 사람이며, 그 후손들이 이 마을에서 번성하였다. 향사일은 3월 25일이다. 기문에 의하면...
-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효자. 팽붕석(彭鵬錫)의 본관은 절강(浙江). 자는 우칠(禹七), 호는 효우당(孝友堂). 절강팽씨 시조 팽우덕(彭友德)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팽화일(彭華日)이고, 어머니는 분성배씨(盆城裵氏)이다. 『절강팽씨세보(浙江彭氏世譜)』에 의하면, 족명은 관석(寬錫)이고 속명은 봉석(鳳錫)이다. 팽붕석은 효행이 극진하였으며, 효행으로 이적이 있었...
-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에 있는 조선 전기 창원향교의 정문 누각.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의 양반 자제를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전국에 걸쳐 행적구역을 단위로 설립되어 있었다.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서재·풍화루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풍화루는 유학생들이 풍류(風流)를 즐기며 시를 짓고 사색도 하며 여가를 보내던 곳이다. 풍화루는 창원시 의창동에 속한 북동과 중동...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에 있는 비석군. 비석이 세워져 있는 곡목마을은 김해김씨 집성촌이다. 화양리 비석군은 40여 년 전 김해김씨 문중에서 세운 것으로 화목김씨세거비를 포함해 총 5기가 있다. 마을 어귀에서 보아 오른쪽 화목김씨세거비 뒤쪽으로 눌재김선생유허비(訥齋金先生遺墟碑)와 괴희자포효비(愧喜子褒孝碑), 왼편으로 화목김씨주종사세기행비(花木金氏冑宗四世紀行碑)와 용강...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아버지는 황석기(黃石奇)이고, 아들은 황윤서(黃允瑞)이다. 황상은 충혜왕 때 호군이 되었으며, 공민왕 초에 밀직부사에 제수되고 추충익찬공신(推忠翊贊功臣)에 봉해졌다. 1354년(공민왕 3) 유탁(柳濯)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장사성(張士誠)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돌아와서 지추밀원사가 되었다. 1356년 적신 기철(奇轍) 일...
-
고려 후기의 문신. 황석기(黃石奇)의 본관은 창원(昌原). 창원황씨 공희공파(恭僖公派) 파조(派祖)이며, 아들은 황상(黃裳)이다. 황석기는 충혜왕비인 원나라의 덕녕공주(德寧公主)를 따라와서 충혜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겼다. 1342년 밀직사지신사로 조적(曺頔)의 무리를 제거하고 왕을 시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다.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갱일시...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황하룡은 조선 성종·연산군 대에 창원도호부 서쪽 물리동에 살았다. 형 황한룡(黃漢龍)과 함께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여막살이로 효행을 다하였다. 경상도에서 계를 올려 조정에서 조세와 요역을 면제하였다....
-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황한룡은 조선 성종·연산군 때에 창원도호부 서쪽 물리동에 살았다. 동생 황하룡(黃夏龍)과 함께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여막살이로 효행을 다하였다. 경상도에서 계를 올려 조정으로부터 요역을 면제 받았다.....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잠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려각. 효원각은 조선 전기 효자 옥석견(玉石堅)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의령 옥씨(宜寧玉氏) 문중에서 세운 정려각이다. 효자 옥석견은 조선 전기 창원도호부 불천(佛川)[현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잠리 인근] 사람으로서 아버지는 옥수(玉壽)이다. 생몰연대는 족보를 통해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경상도관찰사 강혼이 효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