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청송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91
한자 靑松會
영어음역 Cheongsonghoe
영어의미역 Cheongsonghoe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단체
설립연도/일시 1990년 11월 20일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95년 12월 1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남도 창원 마산 지역에 있는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미가입 노동조합 대표자 단체.

[설립목적]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립과 함께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과 공식적·비공식적 교류와 정보 교환을 해온 마산과 창원 지역의 많은 노동조합들은 일상생활까지 탄압을 받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청송회는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의 예봉을 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조와 조직적 확대 강화를 지속하며, 현장 조직력을 강화하여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기틀을 마련하여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에 가입함으로써 노동운동의 투쟁력을 높이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립과 함께 집중 강화된 탄압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에 가입하기가 어려웠던 몇몇 미가입 노동조합에서는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및 전국노동조합협의회와 유대와 결속을 지속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1990년 11월 20일 노동조합 대표자 13명이 모여 청송회라는 대표자 모임을 결성하였다.

청송회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참관 노동조합들의 조직으로서 의무금 납부 등 부담을 떠맡지 않는 점이 다를 뿐 가입 노동조합과 똑같이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의 사업방침을 따르고 행사에 참여하는 독특한 형태의 조직이었다. 따라서 청송회는 자체 조직과 사업을 별도로 진행하면서도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운영위원회의 사업계획과 방침을 주요 안건으로 공유하였다.

비록 의결권은 없었지만 대표자들은 운영위원회의에도 참가하여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의 주요 사업 방침과 사업 내용에 대한 활발한 자유의사를 개진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청송회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은 함께 사업 방침과 사업 내용을 공유하고 활동하는 하나의 조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청송회는 1995년 해산될 때까지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건설에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활동을 펴나갔다. 4년간의 사업과 투쟁의 성과를 금속연맹 건설과 민주노총 강화로 계승할 것을 결의한 청송회는 1995년 12월 1일 마산가톨릭여성회관 2층 교육실에서 13개 노동조합 간부 및 조합원 80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산식을 거행하였다.

[활동사항]

1991년~1992년 임금단체협상투쟁에서 삼우산기, 루카스, 대한광학 등의 노동조합은 강한 파업 투쟁과 적극적인 지원 연대 투쟁을 전개하여 회장인 이태경 대한광학 노동조합 위원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또한 중소 노동조합 간부 및 조합원을 대상으로 등반대회, 수련회, 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며 민주노조운동을 확대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삼우산기, 대한광학, 루카스, 화천기계 노동조합 등이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에 가입함으로써 청송회의 목표인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가입 사업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송회는 중소 단위의 조직이라는 점, 노동조합의 지도 집행력의 취약성, 정권과 자본 측의 집요한 이념적 물리적 탄압, 그리고 청송회 자체가 조직적 지도나 집행력을 갖춘 조직이 아니라 대표자 회의체 수준이라는 점 등에서 당면한 민주노조 운동의 임무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간의 사업과 투쟁 속에서 대표자 회의체라는 조직 수준 이상을 뛰어넘는 투쟁을 실천함으로써 마산·창원 지역 민주노조운동에 공헌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