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0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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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弓裔-山 |
영어공식명칭 | Gungye and Gonamsa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8년 6월 30일 - 「궁예와 곤암산」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지포리에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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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궁예와 곤암산」 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지』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5년 - 「궁예와 곤암산」 강원도·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0년 - 「궁예와 곤암산」 철원문화원에서 발행한 『철원향토지』 4권에 수록 |
관련 지명 | 고남산 -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초과리 |
채록지 | 지포리 노인정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지포리 |
성격 | 풍수 설화 |
모티프 유형 | 풍수 |
[정의]
강원도 철원군에 전하여 내려오는 고남산에 얽힌 궁예에 대한 이야기.
[개설]
「궁예와 곤암산」은 강원도 철원군에 전하여 내려오는 고남산(古南山)[곤암산, 643m]에 대한 이야기이다. 궁예(弓裔)[?~918]가 태봉국(泰封國)을 세우고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곤암산을 주산(主山)으로 정하자 금학산(金鶴山)[947m]의 나무가 잎과 꽃을 피우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궁예와 곤암산」은 1988년 7월 1일 철원군 갈말읍 지포리에서 채록하였다. 「궁예와 곤암산」은 1992년 철원군이 발행한 『철원군지』와 1995년 강원도·철원군이 발행한 『철원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등에 수록되었으며, 또한 철원문화원에서 2000년에 발행한 『철원향토지』 4권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철원군 관인면[지금은 포천시에 속함]에 곤암산이 있다. 곤암산은 현재 포천시 관인면이 철원군에 속하여 있을 때 철원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산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곧 ‘옛날의 남산’이라고 하여 ‘고남산(古南山)’이 되었다고 한다.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고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동송읍에 있는 금학산을 주산으로 먼저 정하였다. 그러나 금학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금학산이 악산(惡山)이기에 “못 쓰겠다.”라고 하면서 금학산 아래에 반절도 되지 않는 곤암산을 주산으로 정하였다. 한편, 주산이 되지 못한 서러움에 금학산에 있는 나무에서는 3년 동안 잎과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금학산이 곤암산으로 산머리를 향하고 있었는데, 곤암산이 보기 싫어서 스스로 산머리를 돌려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궁예와 곤암산」은 ‘풍수’를 기본 모티프로 하고 있다. 「궁예와 곤암산」에는 궁예가 철원군에 도읍지를 마련하는 과정이 담겨 있으며, 풍수지리학적으로 잘못된 주산(主山)의 선정으로 태봉국이 일찍 멸망하였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