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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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弓裔婦人-王建-私通 |
영어공식명칭 | The Affair Between Gungye's Wife and Wangge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태봉,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8년 7월 1일 - 「궁예 부인과 왕건의 사통」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2리에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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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궁예 부인과 왕건의 사통」 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지』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5년 - 「궁예 부인과 왕건의 사통」 강원도·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0년 - 「궁예 부인과 왕건의 사통」 철원문화원에서 발행한 『철원향토지』 4권에 수록 |
관련 지명 | 철원군 - 강원도 철원군 |
채록지 | 화지2리 경로당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2리 노인정 |
성격 | 인물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궁예|왕건|왕후 |
모티프 유형 | 사통(私通) |
[정의]
강원도 철원군에서 태봉국의 멸망과 궁예의 죽음에 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궁예 부인과 왕건의 사통」은 강원도 철원군에 전해 내려오는 태봉국(泰封國) 의 멸망과 궁예(弓裔)[?~918]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사통(私通)을 기본 모티프로 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궁예 부인과 왕건의 사통」은 1988년 7월 1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2리 경로당에서 채록하였다. 「궁예 부인과 왕건의 사통」은 1992년 철원군이 발행한 『철원군지』와 1995년 강원도·철원군이 발행한 『철원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등에 수록되었고, 또한 철원문화원에서 2000년에 발행한 『철원향토지』 4권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철원군에 도읍지가 있었던 태봉국이 멸망하여 갈 무렵의 일이다. 궁예는 왕후와 동침을 하지 않았다. 또한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들이 많이 있어서 궁궐 안에 있기보다는 몇 해를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궁궐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왕건(王建)[877~?]을 주도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왕건이 모든 권력을 잡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궁궐 안에서 왕건과 궁예의 왕후가 눈이 맞아 동침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궁예는 이 사실을 모르고 궁궐 밖으로만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순행(巡行)을 나갔다가 갑자기 궁궐로 돌아온 궁예에게 왕건과 왕후가 동침하는 것을 들켰다. 궁예는 몹시 화가 났지만 왕건의 세력이 너무 커져 있었기 때문에 왕건을 마음대로 처벌하지 못하였다.
궁예는 궁궐 안에 남아 있던 자신의 군사들을 풀어서 왕건과 싸움을 하였다. 그러나 궁예의 부하들도 하나둘씩 왕건에게 넘어가고, 나중에는 모든 부하들이 왕건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궁예는 자신의 편 없이 혼자 남게 되었고, 급기야는 궁궐에서 쫓겨나기에 이르렀다. 궁궐에서 쫓겨난 궁예는 담터를 지나 큰골에 진을 쳤다. 큰골은 산이 둘러싸인 험악한 곳이다. 궁예는 큰골에 석성을 쌓고 머물렀다. 그래서 사람들은 석성을 궁예가 피난 나와서 쌓은 성이라고 하였다. 큰골에서의 생활은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 궁예는 석성에서 나와 울음산을 지나 평강군 삼방골짜기에 도착하였다. 갈 수 있는 길이 막힌 궁예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기가 어디냐?”라고 물어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삼뱅입니다.”라고 하였다. 궁예는 궁궐에서 멀리 오지 못하였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도망자 신세로 멀리 강원도로 돌아서 왔을 뿐 실제로는 철원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한편, 궁예가 길을 물어본 사람은 궁예를 알아보았다. 백성들 사이에서 폭군으로 이미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도 궁예를 좋아하지 않았다. 궁예가 삼방골짜기에 있다는 소문이 나자 백성들은 궁예를 잡아야 한다며 삼방골짜기로 몰려들었다. 백성들은 궁예를 발견하고는 “때려잡자! 때려잡자!”라고 하며 골짜기를 마주한 산 정상에 올라가 골짜기 아래를 향해 돌을 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궁예는 삼방골짜기에서 백성들이 굴린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궁예 부인과 왕건의 사통」은 사통(私通)을 기본 모티프로 하고 있다. 「궁예 부인과 왕건의 사통」에는 궁예의 실정(失政)과 왕건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궁예 부인과 왕건의 사통 또한 왕건이 정권을 장악하였음을 암시한다. 또한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궁예의 모습을 통하여서 백성들의 신망을 잃은 태봉국의 왕 궁예의 모습을 비극적으로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