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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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化-堂 |
영어공식명칭 | The Great Shrine of Kimhwa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74년 - 「김화의 큰 서낭당」 강원일보사에서 발행한 『태백의 설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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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77년 - 「김화의 큰 서낭당」 문화재보호협회 철원군지부에서 발행한 『향토지-철원, 김화, 평강』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1년 - 「김화의 큰 서낭당」 철원군에서 발행한 『태봉의 향기』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김화의 큰 서낭당」 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지』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5년 - 「김화의 큰 서낭당」 강원도·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0년 - 「김화의 큰 서낭당」 철원문화원에서 발행한 『철원향토지』에 수록 |
관련 지명 | 성재산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 |
성격 | 설화|전설|당신화 |
주요 등장 인물 | 관노 |
모티프 유형 | 현몽(現夢)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성재산에 있던 큰 서낭당에 얽힌 이야기.
[개설]
「김화의 큰 서낭당」은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성재산에 있던 큰 서낭당을 지은 이유와 당신(堂神)의 좌정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김화의 큰 서낭당」은 1974년에 강원일보사에서 발행한 『태백의 설화』에 수록되어 있으며, 1977년에 문화재보호협회 철원군지부에서 발행한 『향토지-철원, 김화, 평강』, 1992년에 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지』, 1995년에 강원도·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2000년에 철원문화원에서 발행한 『철원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김화 관아에 한 관노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나 관노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관노는 노비의 신분이라 망설였지만, 여인은 “뒷산에 올라가 내가 비를 피할 수 있는 사당을 지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관노는 꿈이 이상하여서 뒷산으로 올라가 사당을 지어 주려고 터를 닦았다. 그랬더니 꿈에 다시 여인이 나타나 “사당을 지어 주려고 한 뜻은 고마우나, 지금 그 자리가 아니고 조금 더 올라가면 사당 지을 자리가 있으니 그곳에 지어 주십시오.”라며 다시 부탁하였다. 관노는 어차피 사당을 지어 주려고 하였기에 여인이 지어 달라는 곳에 다시 지어 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관노는 다시 산에 올랐다. 원래 터를 닦아 놓았던 자리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상량목(上梁木)이 놓여 있고, 상량목 아래에 무쇠로 만든 여상(女像)이 한 개 있었다. 관노는 여상이 있는 자리가 사당 지을 자리일 것이라 여기고 사당을 세웠다. 그랬더니 그다음부터 꿈에 여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김화현감이 새로 부임하여 사당에 치성을 드리는 것을 금지시켰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현감의 아들을 잡아가 버렸다. 그래서 다음 현감 때부터 다시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김화의 큰 서낭당」은 ‘현몽(現夢)’을 기본 모티프로 하고 있다. 현재는 소실된 김화 큰 서낭당을 건립한 이유가 여신(女神)의 현몽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다. 여신 스스로 자신이 좌정할 곳을 지정하고, 제의를 중단한 현감의 아들을 호랑이가 잡아갔다고 한다. 「김화의 큰 서낭당」은 김화 큰 서낭당에서 모시는 여신의 신성성(神聖性)을 강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