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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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命耉-忠烈祠由來 |
영어공식명칭 | Hong-Myeonggu, And the Origin of Chungnyeolsa Shrin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현숙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1년 4월 2일 - 「홍명구와 충렬사 유래」 박재연[남, 87세]에게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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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6년 - 「홍명구와 충렬사 유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 2-14 강원도 철원군 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철원충렬사지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길 603[읍내리 630] |
채록지 | 학사5리 마을회관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김화로 640-1[학사리 288-13] |
성격 | 설화|인물 전설|인문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홍명구|인조|청나라군 |
모티프 유형 | 충의(忠義)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에서 홍명구의 행적에 관하여 전하여지는 이야기.
[개설]
「홍명구와 충렬사 유래」는 조선 후기의 문신 홍명구(洪命耉)[1596~1637]가 인조(仁祖)[1595~1649]를 구하러 가다가 강원도 철원군 김화에서 청나라군과 크게 싸우다가 전사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홍명구와 충렬사 유래」는 2011년 4월 2일에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에서 박재연[남, 87세]에게서 채록하였다. 「홍명구와 충렬사 유래」는 2016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 2-14 강원도 철원군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병자호란(丙子胡亂)[1636] 때 인조가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대피하게 되었다. 평안도 감사(監司)로 있던 홍명구는 인조를 구하러 가는 길에 쫓아온 청나라군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전투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훗날 인조가 홍명구의 죽음을 기리며 홍명구에게 충렬공(忠烈公) 시호를 내리고 충렬사(忠烈祠)를 지었다.
[모티프 분석]
「홍명구와 충렬사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충의(忠義)’이다. 평안도 감사로 있던 홍명구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구하기 위하여 한달음에 전쟁터로 달려 나갔다. 전세가 불리한 가운데에서도 홍명구는 격렬히 싸웠고 ‘충의(忠義)’를 불태우다가 전사를 하였다. 인조가 홍명구에게 충렬공 시호를 내리고 충렬사를 지어 제향을 받도록 한 것은 홍명구의 ‘충의(忠義)’를 기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