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1210
한자 弓裔-
영어공식명칭 Story of Gungy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태봉,현대/현대
집필자 박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3년 10월 5일 - 「궁예 이야기」 김영배[남, 76세]에게서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5년 - 「궁예 이야기」 강원도에서 발행한 『강원의 설화』에 수록
관련 지명 갑천 - 강원도 평강군 평강읍
관련 지명 명성산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지도보기
채록지 이길리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인물 전설
모티프 유형 궁예에 대한 혹평(酷評)과 찬평(贊評)

[정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에서 궁예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궁예(弓裔)[?~918]는 강원도 철원에 태봉(泰封)의 도읍을 정하고 세력을 키웠으며, 신분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그러나 지방 호족들이 왕건(王建)[877~?]을 중심으로 모반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냈고, 태봉의 짧은 18년 역사는 궁예의 죽음과 함께 멸망하고 말았다. 「궁예 이야기」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궁예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궁예 이야기」는 2003년 10월 5일에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에서 김영배[남, 76세]에게서 채록하였다. 「궁예 이야기」는 2005년 강원도에서 발행한 『강원의 설화』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강원도 평강군(平康郡) 평강읍(平康邑)에 있는 갑천(甲川)은 궁예가 갑천에서 갑옷을 벗고 자결하였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다. 그런데 제보자 김영배궁예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궁예명성산(鳴聲山)[921.7m]에서 고함산까지 가서 왕재 등을 넘어가 자신이 세운 나라의 개울 옆에서 갑옷을 벗고 자결하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궁예가 평강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갑천에서 자결한 궁예의 무덤에 평강 사람들이 돌을 던져 돌무덤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보자가 궁예의 비참한 죽음이나 혹평과 관련하여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 근거는 1930년부터 문묘(文廟)들과 백성들이 고려 후기의 재상 최영(崔瑩)[1316~1388] 장군과 함께 궁예의 영특한 영험함과 안녕을 추모하는 행사를 100년 넘도록 이어 왔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궁예태봉국 백성들의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인재로 등용하였고, 신라 골품제(骨品制)에 불만을 품은 지방 세력들과 각지에서 모여든 1,500여 명의 인재를 등용한 뒤 나라의 기틀을 잡고 통치를 하였으며, 이때 기득권 세력으로 변모한 지방 호족들이 왕건을 중심으로 모반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낸 뒤 궁예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추측한다.

[모티프 분석]

제보자는 궁예에 대한 찬평보다 혹평이 많으며, 이러한 경향은 궁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궁예금학산(金鶴山)[947m]에 도읍을 정하지 않아서 300년 존속될 국가를 18년밖에 못 가게 하였다는 설화, 궁예가 까마귀 머리가 희어지고 돌이 좀먹어야 왕위를 내놓겠다고 하였던 설화, 신하 왕건과 왕비의 사통을 알고 왕비를 잔혹하게 죽이고 두 아들도 무참히 죽였다는 설화, 폭정으로 인하여 왕건에게 쫓겨나 도망가다가 너무 배고파서 보리 이삭을 주워 먹다가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어 돌무덤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또 신라의 제47대 왕 헌안왕(憲安王)[?~861]이나 제48대 경문왕(景文王)[?~875]의 서자라는 설, 애꾸눈을 강조하는 설화, 관심법(觀心法)으로 불교 교리를 망쳤다는 설, 무고한 백성과 관료를 함부로 죽였다는 설, 성을 증축하려고 백성을 동원하여 혹사시켰다는 설, 궁예가 사치스럽고 정사를 돌보지 않아 국가를 도탄에 빠뜨렸다는 설 등도 있다. 긍정적인 인식이 반영된 설화는 「궁예와 장수나드리의 지명 유래」, 「궁예 왕 훈련장 터의 소나무」 등에 불과하다. 이러한 궁예 관련 설화의 전승 양상은 앞으로 역사적, 구비문학적 관점에서 궁예에 관한 새로운 자료 발굴과 다양한 해석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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