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1295 |
---|---|
영어공식명칭 | A Porter's Story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현준 |
[정의]
강원도 철원 출신 소설가 유재용이 1979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개설]
「짐꾼 이야기」는 1979년 『뿌리 깊은 나무』 1월호에 발표된 유재용(柳在用)[1936~2009]의 단편소설이다. 광복 이후 삼팔선을 넘나들던 사람들과 짐꾼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이 발현되던 혼돈의 공간인 철원을 그려내고 있다.
[구성]
「짐꾼 이야기」의 발단에서 ‘나’는 북해도 광산으로 징용을 당하고, 고향 창도에서의 양주장 일을 그리워한다. 전개에서 ‘나’는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직업이 없어 잡일을 전전하다가 삼팔선을 넘는 이들을 돕는 짐꾼이 된다. 위기에서 ‘나’는 짐꾼을 하다가 문 부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부자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절정은 은인이었던 양주장 주인네를 월남시키면서도 나쁜 일을 계획하지만 황 곰보의 등장으로 실패하고 황 곰보를 죽이게 된다. 결말에서 ‘나’는 전쟁 후 지게꾼으로 근근이 살아가다 양주장 주인을 만나 다시 삶을 영위하다가 과거의 일을 반성하며 고백한다.
[내용]
강원도 창성에서 살던 ‘나’는 북해도 광산으로 징용을 당한다. ‘나’는 창성에서 일하였던 양주장이 그리웠다. 주인이 너그러워 월급도 넉넉하게 주었고, 술 한두 잔 훔쳐 먹어도 못 본 체 넘어가 주고는 하였다. 다시 고향에 돌아가면 양주장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양주장 주인에게 안부 편지도 보내고, 고급 연필을 사서 양주장집 아이들에게 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양주장은 문을 닫은 후였다. ‘나’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왜정 때 금융조합 이사를 지내었던 박 이사가 ‘나’를 불렀다. 얘기인즉슨, 빨갱이 세상이 되어서 왜정 때 일본 사람 돈을 타 먹고 산 신세라 마을을 도망치듯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갈 곳이라고는 삼팔선 넘어 충청도에 있는 처가뿐이라며, 믿음직한 일꾼 서넛만 모아 달라 부탁을 한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삼팔선 짐꾼’이 되었다.
이때만 해도 삼팔선을 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대놓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서, ‘나’는 몰래 양주장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을 서넛 불러 모아 준비를 한다. 철원까지 짐을 옮긴 후 길잡이를 수소문하여 무사히 박 이사네를 동두천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과정이 힘들어 다시는 못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지만, 한 번 넘어갔다 오면 수고비로 서너 달치 양식을 살 수 있어 그만둘 수가 없었다.
삼팔선을 두 번째 다녀오니, 삼팔선 넘다가 잡히는 일이 안 잡히는 일보다 더 힘들다는 걸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이런저런 정보로 네 번째 넘어갈 때는 길잡이가 필요 없을 정도가 되었다. 더구나 삼팔선을 넘어 서울에 가면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던 ‘다이아찡’을 사 와 북쪽에 팔아 이득까지 보고는 하였다. 그러다 ‘나’는 문 부자네 짐을 옮기다 된통 당하게 된다. 짐을 동두천까지 가져다주었는데, 물건이 없어졌다며 마저 받기로 하였던 짐삯도 못 받고 도망치듯 다시 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일로 ‘나’와 짐꾼들은 부자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다 의사인 공 주부네 짐을 지고 삼팔선을 넘을 일이 생겼다. ‘나’는 꾀를 내어 공 주부네 가족은 먼저 연천 쪽을 통해 삼팔선을 넘어가라 말하고, 짐은 자신들이 철원 쪽으로 해서 가져간다 말하였다. 그러고는 삼팔선을 넘다가 짐을 다 빼앗겼다 말하고는 짐을 밥집 주인 등과 다 나눠 가진다. 부자에 대한 복수는 그만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오히려 점점 대범해졌다. 자신들이 하인이 아니라, 부자들의 은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나’는 점점 대범해져 이제는 부잣집 젊은 과부댁에까지 눈독을 들였다. 삼팔선을 넘던 중 길을 잃은 척하고 과부를 깔아뭉개고는 철원 한구석에 방을 얻어 첩살림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났을 무렵 다시 철원에 갔을 때 과부댁은 사라지고 없었고 화가 난 ‘나’는 어디 분풀이할 데가 없나 생각하였다.
양주장 주인집이 쫓겨가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옛날 신세를 진 어른이기는 하나 이제 짐꾼들에게는 다른 부자들과 똑같은 존재였다. 짐꾼들끼리 모여 짐을 빼돌릴까, 양주장 과년한 딸을 빼돌릴까 궁리를 하였다. 하지만 소문난 불한당 황 곰보가 자신도 짐꾼에 넣어 달라고 떼를 쓰면서 일이 꼬였다. 결국 계획한 일은 수포로 돌아가고, 양주장 주인네를 얌전히 동두천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짐꾼끼리 공모를 해서 황 곰보를 돌로 쳐서 죽여 버린다.
그렇게 짐꾼 생활을 하다 6·25전쟁이 터지고 ‘나’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지게꾼 노릇이나 하며 살게 된다. 그러던 중 내막도 모르고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였던 양주장 주인을 우연히 다시 만나 도움을 받고 입에 풀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잊지 못해 교회 목사에게 이실직고를 하고 경찰에 자수하려 하였지만 30년이 지난 일이라 벌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죄책감에 시달렸던 ‘나’는 스스로를 벌준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고 밝히며 소설은 끝난다.
[특징]
「짐꾼 이야기」는 주인공인 ‘나’가 30여 년 전의 일을 고백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고백체 형태의 소설이지만 서간체 형식도 아니고, 사소설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하지만 평소 가족주의 소설을 써 왔던 유재용 소설의 특징을 보았을 때, 「짐꾼 이야기」는 개인적 경험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삼팔선 이북 지역인 김화가 고향인 작가의 가족 역시 짐꾼들의 도움으로 월남하였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나이는 차이가 나지만 박 이사의 아들인 15세가량의 남학생이 등장하는 장면은, 당시 어린 시절 유재용, 혹은 유재용의 형의 모습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박 이사가 금융조합 이사로 등장하는 것과 유재용 아버지의 직업과의 유사성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의의와 평가]
광복 이후 철원은 이념과 이익에 따라 각 계층의 욕망이 충돌하는 혼란상과 비극성이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체제에 대한 희망으로 꿈틀대던 공간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 준 것이 바로 「짐꾼 이야기」와 같은 유재용의 소설들이다. 계급과 계층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짐꾼들은 한때 주인이라 생각하였던 사람들의 재산을 탐하고, 여인들을 욕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부도덕한 행위는 삼팔선 접경 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더해져 죄의식 없이 행하여진다. 유재용의 가족사적 소설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는 바로 이러한 인간사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