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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214
한자 武陵里
영어음역 Mureu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무릉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수몰마을
면적 수몰 당시: 539,946㎡
총인구(남, 여) 수몰 당시: 657명[남 329명, 여 328명]
가구수 수몰 당시: 135가구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였던 법정리.

[개설]

무릉리는 전통적으로 살미면의 중심 지역이었다. 충주댐의 완공과 함께 1985년 수몰되어 지금은 충주호 속에 잠겨 있다. 이문안에서 신구실을 거쳐 신당진(新塘津)까지 마을이 연결되어 있고, 신구실과 신당진을 중심으로 장이 서기도 했다.

[명칭유래]

무릉리라는 이름은 능골에서 유래했다. 능골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 공이 큰 김시민 장군의 무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경상감사를 지낸 김철(金撤)의 무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살미면의 리와 호구 변화를 살펴보면 그 기록이 1759년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까지 이른다. 이곳에 무릉(武陵)이 나오는데 무릉리를 말한다. 무릉이라는 이름은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 『충주목지도』,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에서도 확인된다. 1907년에 발표된 『한국 호구표』에도 무릉리가 나온다.

1911년 4월 살미면 소재지가 내사리에 설치되었다가 10월에 다시 무릉리로 이전하면서 살미면 중심 마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문안, 능골, 신구실, 신당진, 뜨시골, 아랫말, 용골 등이 무릉리가 되었다.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마을 전체가 수몰되어 주민들이 모두 떠나게 되었다. 수몰 당시 무릉리에는 135가구 657명(남 329, 여자 328)이 살았다.

[자연환경]

서쪽으로는 문천(汶川)을 따라 이어진 골짜기를 따라 내사리와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문화리를 통해 남한강 하류로 이어진다. 동남쪽으로는 신당리가 있고 남한강 건너에는 한수면 역리가 있다. 문천을 따라 논이 많은 편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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