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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868
한자 權躽
영어음역 Gwon Eon
이칭/별칭 양정(襄靖),복성군(福城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일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충청북도 충주시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467년 11월 30일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중추원부사|공조참의|충청도처치사

[정의]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洞). 증조부는 의정부 찬성사 권근(權近)이며, 조부는 우군동지총제 권천(權踐)이다. 아버지는 영춘현감 권첨(權瞻)이며, 어머니는 강릉유씨이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무예에 능하여 ‘무동(武童)’이란 별칭을 얻었으며 1453년(단종 1) 4월에 단종이 모화관에서 베푼 무과 시험에서 약관의 나이로 장원 급제하였다. 같은 해 10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자신의 집권에 장애가 되는 김종서(金宗瑞) 등을 제거하는 계유정난을 일으켰을 때 권경, 한서구, 한명진 등과 함께 수양대군을 도와 공을 세워 추충정난공신(推忠靖難功臣) 3등에 녹훈되고 복성군(福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봉정대부행사복시정이 되어 전지 백결, 노비 7구, 백은 10량을 하사받았다.

1455년 단종 복위 운동인 사육신사건이 일어나자 그 당여들 검거에 앞장선 공으로 세종의 아들인 영풍군(永豊君) 이전(瑔)의 저택과 하위지(河緯地)의 처 귀금(貴金)과 여식 목금(木今)을 노비로 하사받았다. 1456년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1459년 공조참의, 1460년 충청도처치사가 되었다. 1463년(세조 9) 명나라 황태후가 죽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서 호조참판 정자제와 함께 진위겸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7년(세조 13) 11월 30일 별세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주시 금가면 유송리에 있으며, 충주시 금릉동 능바우에는 부조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졸기에 “복성군(福城君) 권언이 졸하였는데, 무략(武略)이 있었고, 말이 적으면서 웃는 자였다. 무과에 제1등으로 합격하였고, 이름이 정난공신에 올랐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으로 졸하니, 조회를 1일 동안 정지하였다. 시호를 양정(襄靖)이라 하였는데, 일로 인하여 공(功)이 있는 것을 ‘양(襄)’이라 하고, 자기를 공경히 하여 말이 적은 것을 ‘정(靖)’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호는 양정(襄靖)이며, 추충정난공신(推忠靖難功臣) 3등에 녹훈되고 복성군에 봉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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