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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사 내창지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273
한자 衡平社內倉支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문영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설립연도/일시 1929년 6월 20일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37년연표보기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형평사의 지부.

[개설]

형평사는 1920~1930년대에 걸쳐 백정들의 실질적 해방을 목적으로 활동한 전국적 조직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백정이라는 신분적 차별이 법률적으로 철폐되었으나 이후에도 실생활에서는 차별이 여전했다. 1922년 일본 간사이[關西]지방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수평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3년 4월 25일 진주의 이학찬(李學贊)·강상호(姜相鎬)·신현수(申鉉壽)·천석구(千錫九)·장지필(張志弼) 등을 간부로 하여 조선형평사가 창립되었다.

창립 목적을 계급의 타파, 공평한 사회의 건설, 모욕적 칭호의 폐지, 교육의 균등과 지위의 향상, 사회참여 의의 앙양, 동지의 화목·협력·상조 등에 두고 백정이라는 기록을 호적에서 삭제할 것을 조선총독부에 요구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형평사는 전국에 지사(支社) 11개소, 분사(分社) 67개소, 회원 40만 명의 대규모 운동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설립목적]

충주 지역 백정 계급의 사회적 평등과 인권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9년 6월 20일 충주군 엄정면 내창리 이상진(李相鎭)의 집에서 길막동(吉漠童)의 사회로 형평사 내창지부 설립 총회가 개최되었다. 설립 총회는 길막동의 설립 연혁 보고와 간부 선임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선임된 간부는 지부장 이상진, 서무부 이춘근(李春根), 운동부 이상진, 조사부 김봉학(金奉學)·김영백(金榮伯)·정위부(正衛部)·이옥룡(李玉龍) 등이었다. 1930년대 들어서는 형평사의 신파와 구파 간 내부 갈등으로 활동이 침체되었으며, 일제의 압력으로 1937년 5월 1일 형평사 본부가 해체됨으로써 비슷한 시기에 형평사 내창지부도 해체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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