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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279
한자 現代
영어의미역 Modern History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일성

[정의]

1945년 8월 15일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해방~1950년대]

1945년 8·15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환희와 함께 혼란과 고통도 가져다주었다. 충주도 해방 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노정되면서 많은 대립과 갈등이 야기되었다. 좌익과 우익의 갈등 결과, 남북이 분단되었으며,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켜 500만 동족을 사상하였다. 충주는 우리나라 중심부에서 경상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6·25전쟁 때에도 다른 지역보다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그때 전사한 1,568명의 영령들이 탄금대의 충혼탑에 모셔져 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되어 14개동을 두었으며, 충주군중원군으로 개칭하여 12개면을 두었다. 1956년 10월 22일 충주비료공장이 충주시 목행리 495,870㎡ 부지에 1,200만$(1,900만$로 추가)로 기공되었다. 충주비료공장 건설은 충주시에 일대 변화를 가져와 산업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으며,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첫 번째 화학비료공장으로서 한국인이 중화학공업 분야에 자신감을 갖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충주비료공장이 건설된 후부터 공장 건설이 이어지면서 많은 학생들이 이공계를 지망하기 시작하였다. 충주비료공장 건설은 산업 건설에 국민들의 눈을 돌리게 한 한국 산업발전사의 한 획을 긋는 시점이 되었다. 충주비료공장은 순수 우리 기술로 건설한 괴산발전소, 1957년 준공된 문경의 시멘트공장과 연계된 산업시찰 코스로 지정됨에 따라 매일 수백 명의 산업시찰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이로써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우리나라 대표 산업체로 자리매김하였다.

1958년 5월 15일 기존에 조치원에서 충주까지 연결된 충북선의 노선이 봉양까지 연장됨에 따라 충북선은 경부선과 중앙선을 잇는 동서 노선 철도가 되었다. 1950년대 충주는 충주시 승격, 충주비료공장 건설, 충북선 연장으로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는 땅이 되었다.

[1960~1970년대]

1961년 연산 85,000t 규모의 요소비료공장이 준공되었다. 1962년 6월 5일 충주공업초급대학이 충주사범학교 시설을 인수하여 개교하였다. 충주공업초급대학은 기계과·전기과·토목과·화공과가 개설된 충주에 처음 생긴 대학으로 고급 인력을 배출하여 충주 발전에 기여하였다.

1963년 1월 1일 괴산군 상모면(현 수안보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다. 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가 착공되어 1970년 7월 7일 전구간이 왕복 4차선 도로로 준공되었다. 이에 따라 서울~부산 간 교통의 축이 청주를 경유하면서 충주는 상대적으로 교통이 낙후되어 오지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에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충주에는 기업체가 유치되지 못하였다.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남에 따라 충주의 발전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1983년 충주제1비료공장과 충주암모니아센터(제6비료공장)가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 문을 닫았다. 이에 충주 지역의 경제는 침체에 빠졌으며, 충주비료공장의 직원들이 울산이나 여수 등의 화학공장으로 옮겨감에 따라 시세(市勢)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1979년 말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충주시 목행·금릉·용탄동 일원에 1,286,056㎡의 제1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체 유치에 나섰다.

[1980년대~현재]

1980년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가 설립되어 충주 발전의 활력이 되기도 하였다. 1978년 착공된 충주댐은 1986년 10월에 완공되어 국내 최대의 다목적댐이 되었으나, 충주시 2개 동 3개 면 11개 리의 961호가 수몰되고 6,159명의 수몰민이 발생하였다. 이들이 모두 충주를 떠난 것은 아니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충주댐의 충주 발전 기여도는 연구 대상이나, 충주댐 건설로 충주호가 생기고 충주호 관광선이 생기면서 관광객이 찾아와 관광 충주의 형성에 일조했을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주덕농공단지·가주농공단지·용탄농공단지·가금농공단지·제2농공단지가 조성되어 기업체가 입주하였다. 한편 1995년 1월 1일 충주시와 중원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의 새로운 충주시가 되었다.

2002년 12월 20일 중부내륙고속도로(여주~충주)가 개통되었으며, 2004년 12월 14일에는 여주에서 김천까지 개통됨으로써 영동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되었다. 평택~삼척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충주는 서해안과 동해안 교통의 연결점이 된다. 특히, 서울~충주~문경으로 이어지는 중부내륙철도가 완성되면, 충주가 낙후된 주요 원인 가운데 첫째와 둘째 원인이 해결된다. 또한 2009년에 충주첨단산업단지(면적 2,009,008㎡)가 완료되고, 2011년 1단계와 2020년 2단계에 걸쳐 충주첨단기업도시(면적 7,012,760㎡)가 완성되면, 대단위 공업단지와 생산시설의 유치에 더욱 용이해질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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