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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2002
한자 忠州淨土寺址法鏡大師塔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Priest Beopgyeong in Jeongto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1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서동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보물 제1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보물 재지정
성격 금석각류|탑비
건립시기/일시 943년연표보기
관련인물 법경대사
재질 대리석
높이 500㎝
너비 150㎝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1 지도보기
소유자 국유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고려 전기 고승 법경대사의 부도탑비.

[개설]

법경대사는 879년(헌강왕 5)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법을 배웠고, 20세에 불가에 입문하였다. 906년에는 당나라에 들어가 도건대사에게 가르침을 받다 924년(태조 7)에 귀국하였다. 경애왕이 국사로 대우하며 정토사 주지로 임명하였다.

[건립경위]

941년(태조 24) 63세로 입적하자 태조가 시호를 ‘법경’, 탑 이름을 ‘자등’이라 내리어 943년(태조 26) 법경대사의 공덕을 칭송하는 탑비를 세웠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 최언위가 지었으며, 유명한 서예가였던 구족달(仇足達)이 글씨를 썼다.

[위치]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는 1983년 충주댐이 완공되어 원래 위치가 수몰 대상 지역이 되면서 원래 위치 북동쪽의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형태]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는 거북받침돌 비신 및 이수형의 덮개돌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은 귀부형으로 앞뒤의 길이가 297㎝이며, 너비가 245㎝이나 거북 머리가 37㎝ 정도 몸체 앞으로 나와 있다. 귀부형 받침돌은 거북등까지의 높이가 75㎝이며, 거북머리는 이보다 55㎝가 높아 머리를 들고 앞을 향하여 달리고 싶은 거북의 마음을 나타낸 듯하다.

거북등에 비공 받침을 만들어 옆면과 윗면에 연꽃 무늬를 새겼다. 나머지 부분에는 귀갑 무늬를 새겼으며, 거북의 네 발과 발가락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였고, 여의주를 물고 있는 입은 반쯤 벌리고 있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좌우상하로 선을 긋고 글자를 새겼다. 비 앞면에 3,200여 자를 새기고 뒷면에 비 음기 300여 자가 있으나 마모가 심하다.

비문은 왕명에 따라 해서체로 썼다. 덮개돌인 이수는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너비 230㎝, 두께 78㎝, 높이 110㎝의 크기이며, 밑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였고, 네 귀퉁이에 각각 용을 조각하였다. 이수의 앞면 중심은 ‘전(田)’자 모양으로 만들었고, 법경대사라 음각했으며, 이를 향하여 두 마리의 용을 대칭형으로 조각했다. 이수의 꼭대기에 용 두 마리가 가운데를 향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등 이수에는 모두 8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전반적인 비의 형식은 귀두가 용머리 모양이고, 이수가 퇴화한 점으로 보아 신라 말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이수의 조각 수법은 장엄한 취향을 보이며, 귀두와 비좌 등의 표현 기법은 이채로운 조형 경향을 보인다. 1,000여 년이 넘은 비로 보존 상태는 양호하나 6·25전쟁 때 생긴 탄흔 40여 곳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17 항목명 수정 정토사 법경대사 자등탑비->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로 수정(201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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