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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2564
한자 慶州李氏
영어의미역 Gyeongju Y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집필자 최일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주시 일원
입향년도 1519년(중종 14)연표보기
성씨시조 알평
입향시조 이자심

[정의]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자심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연원]

경주이씨는 신라 초기의 6촌(6부) 중 알천 양산촌을 다스리던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한다. 통일신라 말기 이알평의 36세손으로 진골 출신인 소판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해서 고려 말기 이거명의 16세손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모든 이씨 중 평창이씨 등 7개 이씨가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있어 이씨의 대종으로 자처하고 있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기에 크게 세력을 떨쳐 이제현(李齊賢) 등을 배출하였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많은 학자, 명신을 배출한 삼한갑족(三韓甲族)이다. 조선시대에는 재상 8명, 대제학 3명, 공신 10여 명, 문과 급제자 178명을 배출했다.

충주에 입향한 경주이씨 중 대표적 인물로는 형조판서를 지낸 이수일(李守一), 훈련원판관을 지낸 이유일(李惟一), 성주목사를 지낸 이탁(李濯), 사헌부지평을 지낸 이익(李瀷), 총융사를 지낸 이인하(李仁夏), 남병사를 지낸 이중익(李重翊), 효자 이건영(李健榮) 등이 있다. 특히 형조판서 이수일선조 대에 진무공신에 오르고 계림부원군에 봉해짐으로써 충주의 경주이씨를 크게 빛낸 인물이다.

[입향경위]

고려 후기 문화시랑을 지낸 국당공 이천(李蒨)의 5세손 이자심(李自深)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1519년(중종 14) 충주 서촌 시곡(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 은거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0년 현재 충주시에 거주하는 경주이씨는 3,047가구, 9,505명으로 조사되었다.

[관련유적]

충청북도 기념물 제21호 충주 이수일 묘소, 이수일을 배향한 충훈사, 충주 이수일 신도비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 202-1번지[석교길 19]에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8호 「이수일 진무공신 녹권」 및 영정이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47-5번지[중앙탑길 112-28]의 충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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