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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C020401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호

입향조 이덕량의 자는 하경(厦卿)이고 처음이름은 덕명(德明)이라 했으며, 어려서는 현덕(玄德)이라 불렀다가 다시 덕량으로 바꾸었다. 그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장남인 진안대군 이방우(李芳雨)의 9세손이다. 만년에 벼슬하여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 이르렀으며 통정대부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묘소는 풍덕의 동북쪽 사락리 산 60의 엄동 황금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다. 장남인 이정지(李廷芝)[1606~1691]는 자가 성서(聖瑞)이다. 천품이 충성스럽고 효행이 있었으며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인의를 베풀었다. 가선대부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충부부총관에 증직되었다. 묘는 풍덕의 비석동산에 있다. 1730년 이세환이 찬한 묘비가 묘소 입구에 있으며, 비각을 세웠으므로 이곳을 비석동산이라 한다. 첫째인 이정지의 후손들을 벼슬이름을 따서 참판공파 또는 방호 1파라 부른다.

둘째 아들인 이정명(李廷蓂)[1609~?]은 자가 성유(聖有)이다. 묘소는 화곡리산 건천 지겁지에 있다가 2001년 황금산 도기룡으로 이장하였다. 자손이 없어 형인 정지의 둘째아들 이진발(李震發)을 양자로 삼았다. 나중에 통덕랑을 추증 받았으므로 통덕랑파 또는 방호 2파라고 부른다.

셋째 아들 이정협(李廷莢)[1612~1664]은 자가 성관(聖觀)이다. 4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그 중 둘째인 이진항(李震恒)이 무과에 급제하여 산산진 병마첨절제사를 지냈다. 아들로 인해 종사랑을 증직받았으며 묘는 황금산에 있다. 그의 후손들을 종사랑파 또는 방호 3파라 부른다.

3형제는 출가하여 장남 이정지는 성동(聖洞)에, 차남 이정명은 대촌(大村)[큰말]에, 막내인 이정협은 아버지와 함께 풍덕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이로써 삼형제가 서로 이웃하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풍덕과 성동·대촌마을 일대를 개척하였고 확고한 생활기반을 닦았다. 3인의 방호파 자손들이 일구어 놓은 마을이 오늘날 방죽안 즉 제내리이며 진안대군파의 세거지가 바로 이곳이다. 이 후손들은 많은 분파를 이루어 제내리에 13개 종회가 있으며, 6개의 봉사계(奉祀契)가 있다.

다음은 이덕량의 세계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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