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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D020202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어경선

목계마을의 줄다리기는 마을 자체에서 연례적으로 행했던 ‘애기줄’, ‘청년줄’ 형태의 줄다리기와 외부 집단의 참여와 더불어 3년마다 행했던 ‘귀줄’ 형태의 줄다리기가 1946년까지 공존해왔다. 목계마을충북선 철도가 가설된 1930년대 이전까지는 남한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역사, 지리적 환경으로 인하여 ‘귀줄’ 형태의 줄다리기가 전승할 수 있었다.

목계마을에서는 3년을 주기로 2월 말경에서 3월 초순 사이에 귀줄다리기를 4~5일 동안 행하였다. 이때에는 인근의 각 동리뿐만 아니라 충주, 원주, 장호원 등지에서 농악기를 앞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충주의 최고 축제 행사인 우륵문화제 때 부대행사로 열리는 목계 별신제와 함께 줄다리기가 행해진다.

1) 줄의 마련

예전에는 정월 농한기를 이용하여 짚으로 줄을 꼬았으나, 지금은 우륵문화제가 열리기 전에 준비를 한다. 마을 도랑을 중심으로 동편(동계와 내계)는 평산에서, 서편(서계)은 샘터산에서 10여 일 동안 줄을 꼬았다. 줄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짚의 양은 약 800토매가 들어가고 그 짚을 마련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여 일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2) 줄의 형태

목계 줄다리기에 사용되는 줄(용신)은 한쪽의 길이가 대략 70~80m쯤 되는 쌍줄이었으며, 표면에는 상중속회를 붙였다. 상속에서 중속회(매기수염)를 한 가닥씩 뽑게 되므로 뒤로 갈수록 상속회가 가늘어진다. 용머리의 길이는 2.1m쯤 되고 용목의 굵기는 30~45㎝나 되었으며, 곁줄의 굵기는 5㎝쯤 되었다.

3) 줄다리기 장소

목계마을에서는 남한강변의 고수부지를 연행 공간으로 삼았다. 이곳을 흔히 줄터라고 불렀는데, 예전에는 밭이었다가 1936년 이곳을 휩쓴 장마로 인해 모래밭이 되었다.

4) 편 구성

목계마을에서는 편을 동과 서로 나누는데, 동편은 동계와 내계를 합하여 구성하였으며 서계는 단독으로 하였다. 각 편에서 2~3명의 편장을 선출하였고 이들 중에서 도편장을 선출하였다. 원주, 장호원, 충주, 제천 등에서도 청병하였지만 편장은 반드시 목계 주민 중에서 선출하였다.

5) 복장

복장은 각 편에서 마련하는데 10여 일 이상 걸렸다. 특히 복장의 색상이나 형태를 다양하게 꾸밈으로써 기선을 제압하려고 하였다.

○ 중앙 깃대 : 꿩의 꽁지깃으로 장식

○ 동편 깃대 : 노란색 기에 빨간 끝동(5~6개)-남성을 상징

○ 서편 깃대 : 하늘색 기에 흰색 끝동(5~6개)-여성을 상징

○ 대장 복장 : 모자-앞은 공작꼬리/뒤는 색실(남색, 빨강)/끈은 구슬

중단-사또 복장과 동일/ 소매는 노랑, 빨강, 파랑

띠-노랑

○ 별감 : 모자-앞은 초록/옆은 공작꼬리

중단-빨강

띠-없음

○ 토인 : 모자-갓의 형태와 유사

중단-흰 두루마기. 복근(조끼 형태)

띠-노랑

○ 책질입 : 모자-대장 모자의 형태와 동일

중단-흰 두루마기. 복근(조끼 형태)

띠-노랑

○ 여장복 : 모자-남바위(족두리 형태)

중단-치마저고리(특정 색상 없음)

○ 중복 : 모자-고깔

중단-흰색 두루마기(소매의 길이가 김)

띠-빨강(어깨에 엇갈려 맴)

6) 당고사

본격적인 줄다리기에 앞서 이장과 마을 원로가 간단하게 당고사를 올렸다. 정기 당고사와 달리 마을의 축하할 일을 마을의 수호신에게 알리는 성격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7) 용두 걸기

줄꾼들이 도편장의 지휘에 따라 일정 지점까지 이동하여 양편이 마주 서게 되면 본격적으로 용두걸기에 들어간다. 양편의 줄꾼들이 어느 정도 다가섰을 때 한쪽의 도편장이 ‘술렁수’를 띄우면 상대편에서 “꼴레꼴레” 하며 욕설을 퍼붓는다. 그리고 “끼워라! 당겨라! 여자가 먼저 와라! 아니다, 남자가 먼저 와라!” 등등 밀고 당기는 시비를 한참 동안 해가며 팽팽한 실랑이를 벌인다. 암줄과 숫줄이 처음으로 맞닿게 되면 양편의 줄꾼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이런 과정을 세 번 거친 후에야 “줄을 걸자” 라는 도편장의 구호가 떨어지면 이어 “눕혀”, “당겨” 하는 등의 지시에 따라 용두를 걸게 된다.

8) 줄다리기

징소리와 동시에 줄을 당기기 시작하면 남성을 상징하는 동편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줄꾼들은 온 힘을 다해 줄을 당겼다. 더욱이 승부욕이 강해서 동편은 “서편은 동편의 똥물 먹고 죽어라!” 라 하면 서편은 “동편은 서편의 똥물 먹고 죽어라!” 하면서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다. 여성들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치마폭에 자갈을 싸안고 악착같이 줄을 당길 정도였다. 줄의 움직임에 따라 도편장이 휴전을 제안하기도 하였고, 불리한 쪽에서는 외부 지역에 청병하기도 하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였고, 또 외부인의 참여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지역 최고의 놀이로서 귀줄다리기가 오랫동안 성황을 누릴 수 있었다.

9) 줄처리

목계 줄다리기는 소비형 중 송액형(送厄形)에 해당한다. 줄다리기가 시연되는 장소에 길게 늘어뜨려 놓으면, 여름철 장마 때 줄이 떠내려가면서 마치 두 마리 용이 헤엄치면서 사이좋게 내려가는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예외적으로 1946년에는 과수원 퇴비용으로 팔아 마을 기금으로 충당하였다고 한다. 2008년에는 작년에 줄다리기한 줄을 가져다 정월 보름날 원추형으로 달집을 쌓아놓고, 한지에 한해의 액운을 몰아내고 무사 안녕과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소원지를 써서 줄 주위에 걸은 후 월출과 함께 달집태우기를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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