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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일본이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 지역에 설치한 병참기지. 불법적으로 경복궁을 강점한 일본이 이후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청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가흥에 설치한 병참기지이다.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자 자국민 보호를 빌미로 대대적인 군대를 파견한 일본군은 1894년 6월 21일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이어 청국(淸國)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6월 23일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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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던 조창.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9곳의 조창(漕倉: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을 두었는데, 가흥창은 그 중의 하나이다. 충주는 남한강이 흘러 수륙교통이 편리하여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남도 수군에 12창을 설치할 때 덕흥창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덕흥창에는 판관을 두고 충주 부근의 조세를 수납하여 경창으로 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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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부곡·향(鄕)·소(所)·처(處)·장(莊) 등의 지방 특별행정구역은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충주목에 설치된 감물내미부곡의 기원은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부곡은 대체로 신라 말 고려 초에 후삼국 통합전쟁 중에 저항한 호족세력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편성하면서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후삼국 통합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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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부곡·향(鄕)·소(所)·처(處)·장(莊) 등의 지방 특별행정구역은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충주목에 설치된 광반석부곡의 기원은 고려시대로 추청된다. 고려시대 부곡은 대체로 신라 말 고려 초에 후삼국 통합전쟁 중에 저항한 호족세력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편성하면서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후삼국 통합 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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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설치된 행정구역. 6세기 중엽 신라의 진흥왕은 활발하게 영역을 확장하며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였다. 그 결과 동북쪽으로는 함경도의 마운령과 황초령, 서북쪽으로는 한강 하류지역까지 차지하였다. 557년(진흥왕 18)에는 고구려가 장악했던 국원, 즉 충주 지역에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이듬해 귀족 자제와 왕경(王京) 6부(部)의 부유한 백성을 국원소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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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조 때 양역제(良役制)의 개선을 위해 충주 지역에서 실시했던 재정제도. 조선은 천인을 제외한 신분, 즉 양반을 비롯한 모든 양인에게 양역이라는 일종의 역역(力役)을 부과하였고, 이는 주로 군역(軍役)이었다. 그런데 점차 직접 군역을 지는 대신 포(布)를 바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양반이 군역에서 제외되었고, 또 각종 군영이 창설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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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철 및 관련 수공업품을 생산하였던 특수행정구역. 다인철소가 언제 어떠한 경위로 설치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의 기록에 몽고군을 격퇴한 공으로 다인철소가 현으로 승격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다인철소는 규모와 생산량, 철 가공 기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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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부곡·향(鄕)·소(所)·처(處)·장(莊) 등의 지방 특별행정구역은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월부곡 역시 고려시대에 이미 단월역으로 개편되고 있으므로, 기원은 그 이전시기로 소급된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삼국시대에 부곡의 선행형태를 찾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부곡은 대체로 신라 말 고려 초에 후삼국 통합전쟁 중에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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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공납제(貢納制)를 폐지하고 대신해서 제정·실시한 재정제도. 대동법은 조선 전기 조세제도 중 호역(戶役)으로 부담하였던 세납(稅納)을 토지세로 전환하는 제도이다. 즉 조선 전기 지방의 특산물을 현물로 납부하는 형태로 운영되던 공납제는 방납(防納)의 성행, 지주제의 확산, 공납제 부담의 불균형 등으로 인해 큰 폐단을 야기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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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향(鄕)·부곡(部曲)·소(所)·처(處)·장(莊) 등의 지방 특별행정구역은 그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덕산향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비록 초선초기의 기록에 처음 나타나지만 그 연원은 고려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초창기 연구에서는 이들 지역의 거주자들을 일반 군현민과는 차별되는 천민집단으로 파악하였으나, 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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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부곡·향(鄕)·소(所)·처(處)·장(莊) 등의 지방 특별행정구역은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부곡은 대체로 신라 말 고려 초에 후삼국 통합전쟁 중에 저항한 호족세력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편성하면서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후삼국 통합 후 고려는 이 지역들을 법제적으로 부곡제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성, 군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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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지방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지방의 주와 군, 현을 잘 다스리기 위해 제정하였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광도조에, “양광도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 땅이다. 성종 14년에 전국을 10도로 나누고, 양주(楊州)·광주(廣州) 소속 주·현은 관내도에, 충주·청주 소속 주·현은 충청도에, 공주·운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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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지방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지방의 주와 군과 현을 잘 다스리기 위해 설치하였다. 『고려사(高麗史)』 권 56, 지(志) 제10 양광도조에 “양광도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 땅이다. 성종 14년에 전국을 10도로 나누고 양주(楊州)·광주(廣州) 소속 주·현은 관내도에, 충주·청주 소속 주·현은 충청도에, 공주·운주 소속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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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북문 안에 두었던 진휼미 보관 창고. 충주를 독진(獨鎭)으로 삼으려고 그 창고를 충주 양진 동편에 새롭게 만들고 양진창이라고 하였다. 1669년(현종 10) 가흥에 의창(義倉)을 설치하고 충주의 환곡(還糓) 수천 석을 비축해두었다. 이후 1683년(숙종 9) 충주의 치소에서 6~7리 떨어져 있는 양진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1686년(숙종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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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고려시대 부곡은 대체로 신라 말기와 고려 전기 후삼국 통합전쟁 중 저항한 호족세력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편성하면서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후삼국 통합 후 고려는 이 지역들을 법제적으로 부곡제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성, 군현제의 하부기구로 예속시키고 군현제를 통해 간접 지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12세기 이후 고려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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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종 대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고려의 지방 행정제도는 군현 밑에 촌(村)이 있어 토착인인 촌장의 자치제로 운영되었다. 이들 촌에는 양인 신분의 촌민이 거주했고, 이들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었다. 이와는 별도로 천민의 집단 거주지로서 향(鄕)·소(所)·부곡(部曲) 등의 특별 행정구역이 있었다. 그중에서 소(所)는 국가에서 필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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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6세기경 신라는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던 충주 지역을 빼앗은 뒤 그곳에 국원소경을 설치하였다. 7세기에 접어들어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3국과 중국의 당, 일본까지 관련된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신라는 백제를 통합하고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을 장악했으며, 고구려는 당에 의해 멸망되고 그 땅에서 발해가 건국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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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년(성종 14)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는 전국을 통일된 국가체제로 다잡기 위하여 지방 행정구역에 대한 일대 개편을 단행하지만 중앙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목민관을 파견하지는 못하였다. 이 후 983년(성종 2) 12목이 설치되어 목사가 파견된 데 이어, 995년 7월에 중앙정부에 의한 실질적인 지방통치를 시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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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 충주유씨 등 호족이 충주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설치한 관부(官府). 도속이관(道俗二官)의 기록은 보물 제17호로 지정된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의 음기에 나타난다.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의 주인공인 법경대사는 당나라에 가서 구봉산(九峯山) 도건대사(道乾大師)에게 심요(心要)를 받고 10년 동안 각지를 두루 편력하다 924년(태조 7) 46세로 귀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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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조선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을 기하여 부·군의 구역을 개편하고, 군의 수를 대폭 감축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1910년 당시 12개 부, 317개 군은 크게 감축되어 220개 군으로 줄어들어 들었고 109개 군이 폐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충청북도에서도 청풍·청안·문의·회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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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현재 충청북도 충주 지역은 신라의 중원경에서 고려 940년(태조 23년) 충주(忠州)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충주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983년(성종 2년)에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하면서 처음으로 이곳에 목(牧)이 설치되었다. 이후 고려의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부분적으로 행정 단위의 명칭이 변경되기도 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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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6월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1895년 4월 내부대신 박영효의 주도 아래 추진된 제2차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종래의 의정부 관제 대신 일본식 내각제를, 비대한 궁내부 관제도 대폭 간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앙관제 개편이 이루어졌다. 중앙관제 개편에 이어, 6월에는 행정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종래의 8도제 대신 소지역주의를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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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왕실의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였던 창고. 충주는 역사상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관방(關防)으로서 중요한 요충지이고 한강의 수운(水運)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였다. 이 때문에 외적의 방어에 용이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내륙 깊숙이 위치한 도시인 점이 고려되어 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 사고 관리는 충청도관찰사와 충주목사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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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시행된 지방 군제. 조선 전기의 지방군은 육수군(陸守軍)과 기선군(騎船軍)으로 대별되고, 육수군 안에는 일반 농민들이 군역으로 번상숙위(番上宿衛)하는 시위패(侍衛牌)와 영진군(營鎭軍), 수성군(守城軍) 등이 있었다. 영진군은 마병으로, 수성군은 주로 보병으로 편제되어 있었으며, 그 대우도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이외에도 능이나 특수 지역을 방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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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부곡·향(鄕)·소(所)·처(處)·장(莊) 등의 지방 특별행정구역은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부곡은 대체로 신라 말 고려 초에 후삼국 통합전쟁 중에 저항한 호족세력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편성하면서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후삼국 통합 후 고려는 이 지역들을 법제적으로 부곡제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성, 군현제의 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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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미군정이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실시한 미곡 수집 정책. 미군정 당국은 1945년 10월 5일에 일반고시 제1호 「미곡의 자유시장」을 공포해 일제가 1942년 이후 본격적으로 실시해오던 식량통제 정책을 해제했다. 하지만 미곡(米穀)의 자유시장 정책은 미가(米價)의 폭등만 야기하며 사실상 실패하게 되었다. 미군정 당국은 1945년 11월 19일에 일반고시 제6호 「미곡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