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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학무위원이던 강재룡의 공덕을 기리는 비. 강재룡의 자선불망비로, 옛 비석 앞에 새롭게 비를 건립하여 같은 내용의 비석 두 개가 함께 있다. 구비에는 건립자의 명단이 없으나, 신비에는 설립자 우광정(禹光政)·김원식(金元植)의 이름이 음기되어 있다. 국도 3호선 옆 대소원초등학교 입구에서 오른쪽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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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향장 강재정의 불망비. 강재정은 1901년(고종 38)에 연풍군 임시 우체주사에 임명되었다. 또한 1905년(고종 42) 경리원 문서에 의하면 “충북 연풍군거 강재정의 안보·신풍 양역 사음의 의례 수행 청원에 대해 잉구거행(仍舊擧行)하라는 지령”이 내려진 것으로 미루어 장토(庄土) 관리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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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음동마을에 있는 조선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의 묘. 경녕군(敬寧君)은 조선 태종과 효빈 김씨 소생으로, 이름은 이비(李示+非), 자는 정숙(正淑)이고, 부인은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학문에 밝아 양녕대군·효령대군·세종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의 5조에 걸쳐 왕실과 국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충성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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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광산김씨 종중에서 세운 유허비. 조선 전기의 문신 광산김씨 김성원(金性源)의 여덟 아들이 모두 생원, 진사에 합격하고, 그중 네 명은 대과에 합격하여 청관현직(淸官顯職)으로 출세한 것을 ‘팔문(八文)’이라 하고 이를 기려 세운 비석이다. 충주시 엄정면 율종리는 ‘팔문(八文)’이 태어난 곳이다. 광산김씨 문경공(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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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상단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평택임씨 임호현의 처 광주안씨 효행을 기리는 비. 단월동 상단마을 입구의 임형업 정려각 옆에 자리 잡은 효행비로, 감정공(監正公) 임성업(林成業)의 8대손 임호현의 처 광주안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국도 3호선을 따라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를 지나 수안보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단월동 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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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하마비.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궁가, 문묘 등의 앞에 세워놓은 표석으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게 하였다. 충주 지역에는 충주향교 앞의 하마비와 충주 경종 태실 앞의 하마비가 있다. 충주 경종 태실 앞에 1689년(숙종 15)에 세운 원자아기씨 태실비와 1726년(영조 2)에 세운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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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손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순공(文純公) 권상하의 묘. 조선 후기의 학자인 권상하(權尙夏)는 안동권씨 후예로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또는 한수재(寒水齋)라 하였고,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송시열의 제자로 ‘예송논쟁’에 휘말려 유배되었고, 숙종 때에는 우의정·좌의정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기호학파를 계승하였고 ‘기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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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인 권엽과 부인의 합장묘. 권엽은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1574년(선조 7) 정월 14일 출생하여 1650년(인조 18) 6월 20일에 졸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알성급제하여 등과한 이후 1624년(인조 2) 동지성절사(冬至聖節使)로 명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636년(인조 14) 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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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권오석의 공덕을 기리는 비. 문충공 권근(權近)의 19대손인 권오석(權五錫)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산림법」이 제정되어 등기 없는 산지를 국유화시키려 하자, 개인 사재로 막대한 측량비, 등기료를 부담하여 검단리의 선산을 등기 보존하였다. 권오석의 손자인 권순철(權純徹) 역시 유지를 받들어 임야 소유권을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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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 검단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권혁과 부인의 합장묘. 권혁은 안동권씨 제간공파로 양촌 권근의 후손이다. 음관(蔭官)으로 출세하여 정선군수, 익산군수, 신천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추증되었다. 대소원면 검단리 상검단마을 뒷산 권오석 송덕비가 있는 공터에서 왼쪽의 낮은 동산으로 약 20m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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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산리 문곡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자선사업가 김광배의 공덕을 기리는 비. 김광배는 김해김씨로, 조부가 참봉으로 낙향하여 인근 토지를 거의 장악한 대지주로 성장하자 부친 김현명, 사촌동생 김규배와 나란히 빈민 구제에 힘썼다. 이에 동민들이 특히 인근의 어려운 동민들을 구휼하는 데 앞장선 김광배의 자선비를 세우고 싶어도 여력이 없어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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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 김규배는 선친에게 물려받은 토지로 농사를 지으면서 재산을 늘렸다. 1943년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지역의 주민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게 되자,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자신의 재산으로 금가면민의 세금을 전부 대납해 주었다. 해방 이후에는 정치에 투신하여 1952년 4월 25일 실시된 초대 시·읍·면의회선거에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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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교육자. 김규회는 1935년 11월 지역민의 교화와 지역 문화의 발전에 대한 뜻을 품고 초가집을 빌려 야학을 시작하였다. 1937년 4월에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사재를 들여 개량 서당을 건립하였다. 1940년 3월 19일 엄정공립심상소학교 부설 추평간이학교가 설립될 때 가산과 서당 재산을 희사하여 지역 교육의 기반을 갖추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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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능골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극형의 신도비. 김극형은 생전에는 창릉참봉(昌陵參奉), 동몽교관(童蒙敎官), 익위사부솔(翊衛司副率), 위솔(衛率), 공조정랑(工曹正郞), 화순현감(和順縣監) 등을 역임하였고, 학식이 높아 송시열과 성선체용설(性善體用說)을 변론하기 위해 편지로 의견을 수없이 교환하였다. 만년에 자기 주장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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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에 조성된 사업가 김금산의 묘.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 88-1번지 금산농원의 능선에 위치한 묘로, 금산건설과 현대주택의 회장을 역임한 김금산의 묘이다. 김금산은 김해김씨 후인으로 1919년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사업에 매진하여 큰 기업을 일구어낸 인물이다. 1985년 가락종친회 경인지구 종친회장(駕洛宗親會京仁地區宗親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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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문성1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관리 김석배의 공덕을 기리는 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토지 수탈이 이루어졌을 때 김석배의 노력으로 마을 주민들이 토지를 지킬 수 있게 되자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노은면에서 지방도 520호선을 따라 감곡 방향으로 가다 보면 문성리 문성교 부근 앞산 밑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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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조돈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시희의 선정비. 자세한 건립경위는 알 수 없지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에서 ‘인천부사 김시희’의 선치(善治)에 대한 내용과 영천군수 재직 때의 선치로 당상관이 되어 마땅하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충원현감 때의 선치로 인해 선정비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동량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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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에 있는, 앙성면장을 역임한 김채수의 공덕을 기리는 비. 1946년 면 서기로 출발하여 1985년 11월 9일 앙성면장 퇴임 때까지 헌신 봉사한, 김해김씨 안경공파(安敬公派) 참판공(參判公)의 후손인 김채수(金採洙)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전 중원군 교육감 박재륜이 찬하여 앙성면민의 이름으로 비를 건립하였다. 비좌개석의 형태로 받침돌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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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자선사업가 김현명의 공덕을 기리는 비. 참봉 김현명(金顯明)은 동량면 탄동에서 용산골로 이주한 이후 인근 동민들이 극빈한 처지에 있는 것을 보고 남모르게 이들을 도와주어 동민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동민들이 빈한한 까닭에 이를 기릴 만한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안 김해김씨 문중에서 필요한 자금을 대고 동민들이 노력 봉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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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김현문은 부인과 사별한 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가난하여 충북선 철로를 개설할 때 현장에서 날품일을 하였는데, 점심때가 되면 집에 와서 어머니의 점심을 차려드리고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중풍으로 5년간 병석에 있어 출입이 어려워지자 업고 다니면서 봉양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매일 성묘하였다. 생애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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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의 면장 김희현의 청백비. 대한제국 시기에 면장을 역임한 김희현은 본관이 광산이며, 지방의 중소 지주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복성면장직을 맡은 김희현은 청렴하게 면장직을 수행함은 물론 곤경에 처한 면민이 있으면 자선을 베풀어 말년에는 재산을 거의 탕진하였다고 전한다. 때문에 김희현의 자손은 나무 장사를 하면서 생활을 해야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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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백경(伯敬), 호는 우당(寓堂). 아버지는 나주목사를 지낸 남병선(南秉善)이다. 1859년(철종 10)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873년(고종 10) 대사성, 1876년(고종 13) 이조참의·성균관대사성을 거쳐, 1878년(고종 15) 예방승지가 되었다. 1879년(고종 16)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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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 노철우는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내사2리 이장을 지냈으며, 1960년에는 제3대 살미면의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아버지 노병덕이 꿈에 신선을 만나 얘기를 듣고 지었다는 내사리의 몽선암을 관리하였다. 1983년 살미국민학교가 충주댐 수몰로 인하여 내사리로 옮길 때 자신의 소유하고 있던 토지 9,900m²을 학교 부지로 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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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리에 있는 대소원면 출신 독립유공자들을 기리는 비. 대소원면 출신 독립운동가 유자명·서정기·이일신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나라 사랑 정신을 고취시키고자 2002년 이류지역발전협의회에서 이류면[현 대소원면] 독립유공자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의결하고, 당시 충주시장 이시종에게 건의, 내락을 받고, 학계의 연구와 검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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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대화리에 있는 6·25전쟁 당시 국군 최초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군은 7월 5일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까지 점령한 후 동락초등학교 교정에 북한군 15사단 84연대를 포진시켰다. 이를 파악한 국군 6사단 7연대 1·2대대가 불시에 공격하여 큰 공적을 세웠다. 이를 기념하여 충청북도가 주관하고 제3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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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무신. 본관은 여흥.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민보명(閔寶命), 할아버지는 판서에 추증된 민함(閔涵)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를 지낸 민응건(閔應騫)이고 어머니는 선공감(繕工監)을 지낸 이극달(李克達)의 딸 전주이씨이다. 1666년(현종 7) 별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비변장이 되었다. 이후 도총부도사, 훈련원첨정, 훈련원정, 내금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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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송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민응건의 신도비. 민응건[1608~1671]의 본관은 여흥으로, 1632년(인조 10)에 호방(虎榜) 3등으로 급제하여 선전겸비랑내자(宣傳兼備郞內子)를 제수받았고, 백령첨사, 조방장, 청북방어사, 전라우수사, 경상좌병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지중추부사를 제수받았다. 충주에서 원주 방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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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정치인. 민창기는 품성이 온화하고 덕망이 높았으며, 조상을 모시는 일과 종중의 일에 성의를 다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봉양이 극진하였고, 돌아가신 후에는 죽을 때까지 애통함이 간절하여 효자로 널리 칭송받았다. 일찍이 일본인에게 빼앗길 뻔했던 종중 재산을 회수·복원하였으며, 재실의 건축을 주도하여 종중 모임의 장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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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자선사업가. 박원채의 본관은 무안(務安)이다. 1912년 극심한 흉년이 들자 백미 40석을 면에 기탁하여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과 상모면 주민들의 생계를 도왔다.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재산도 집안 식구들에 나누어 주어 말년에는 식량마저 곤궁했다고 한다. 박원채의 구휼활동의 수혜민들에 의해 1929년 자선진휼비(慈善賑恤碑)가 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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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전 중원 농지개량조합장 박준하의 공덕을 기리는 비. 박준하(朴準夏)는 1961년 충주 호암지 호안(護岸) 및 노후 시설물 보수를 비롯하여, 1964년 용교 양수장 시설 준공, 1966년 풍동지구·금릉지구 양수장 설치 및 경지정리사업 시행 준공을 하였다. 1967년에는 봉방지구 경지정리사업 시행 준공을 하였고, 1968년에는 단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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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 조동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박팽년의 부인 천안전씨의 묘. 박팽년 부인 전씨 묘는 주덕읍 덕련리 조동마을 뒷산의 과수원 옆길로 도랑을 건너 10m 정도 가면 있다. 토광묘의 형태로, 묘의 상태로 미루어 근년에 장방형 화강암 둘레돌을 두른 것으로 추정된다. 장방형 봉토분의 형태로 근년에 두른 듯한 둘레돌은 177×246×42㎝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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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자선사업가. 박해성은 밀양박씨 간의공 24세손으로 1862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박치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사서삼경을 통달하였고, 자상한 인품과 온후한 심성으로 마을과 지역주민을 위한 일에 항상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04년 당시 엄정면 목계나루터에서 선착장을 가려면 샛강을 건너야 했는데,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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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노변공원에 있는 박해성의 공덕을 기리는 비. 박해성(朴海成)은 목계 나루터에서 선착장으로 가려면 샛강을 건너야 했는데, 다리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고 사재를 털어 돌다리를 가설하였고, 이에 1940년에 박해성가설석교비(朴海成架設石橋碑)가 세워졌다. 그러다 나루터가 제 구실을 못하면서 제방 밑에 비가 방치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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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박형우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에 순종하고 거역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 있을 때 대소변을 받아냈고, 어머니가 낙상하여 대퇴부 골절상으로 거동이 불편하자 업어서 산천구경을 시켜드리는 등 효행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6년 동안 성묘를 거르지 않았다. 박형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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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상가흥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박회원의 영세불망비. 학생 박회원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성해응[1760~1839]의 저서인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박회원을 금일 만났다(今見朴會源)”라고 언급한 구절이 있어 19세기 초의 실학에 관심을 가진 은사가 아닐까 추정된다. 기록상으로 알려진 바는 없으나 비문의 음기로 미루어 동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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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육영사업가. 배연도는 1947년 달천초등학교가 개교할 때 자신 소유의 땅 188,100㎡을 희사하였으며, 초대 기성회장을 맡아서 학교발전에 기여하였다. 또한 경로당과 같은 노인시설에 기부를 하고, 불우 이웃 돕기에 힘썼다. 충주남산초등학교의 강당을 건립할 때에도 많은 기부를 하였다. 1972년 5월에 충청북도 충주시 용두동의 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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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호는 화원(花園). 할아버지는 홍양부원군(洪陽府院君)에 추봉된 석양선(石良善)이고, 할머니는 조선 태조(太祖)의 이모인 최씨(崔氏)이며, 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한 석천을(石天乙)이다. 형은 조선 건국 후 한성판윤을 지낸 석수명(石壽明)이다. 형은 홍주(洪州)로 분관(分貫)하였다. 석여명은 고려 후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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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선정을 베푼 지방 수령이나 관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본래의 의미는 지방의 수령이나 관리가 백성을 아끼고 지역 발전에 공이 지대하였을 때 이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공적과 인품을 새겨 기린 비석을 선정비(善政碑)라 한다. 선정은 정치를 잘했다는 것으로 불망비(不忘碑), 애민비(愛民碑), 청덕비(淸德碑), 청백비(淸白碑), 송덕비(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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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손석흔의 공덕을 기리는 비. 물운(勿雲) 손석흔은 동지(同志)인 김은배, 단경옥, 손승억, 윤무영, 윤주영, 이강렴, 이강호, 이희갑과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3·1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북만주로 망명하여 투쟁을 계속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향리에 학원을 설립하여 교육에 힘썼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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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충주시의 남동단에 위치한 수안보면은 고구려식의 상모(上芼)라는 지역 명을 쓰다가 2005년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수안보라는 명칭으로 개편하였다. 수안보온천으로 유명한 고장이며, 월악산국립공원과 사조스키장, 충주호와 중원 문화를 살필 수 있는 문화재 등이 주변에 산재한 천혜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형적으로 소백산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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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에 있는 비. 천주교가 전래된 후 조선에서는 이후 크고 작은 박해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으며, 그때마다 순교자나 희생자가 속출하였다. 박해의 원인과 배경은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사회 문화적 요인으로, 당시 조선은 유교를 문화적 지주로 삼고 있었기에 자연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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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에 있는 1919년의 만세운동 유적비. 1919년 4월 1일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을 후세에 전함과 동시에 시위 주동 인물 8명(단경옥, 이희갑, 이강렴, 손승억, 윤주영, 윤무영, 이강호, 김은배)의 공훈과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충주시에서 1984년 신니면 용원초등학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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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종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인물의 무덤 남동쪽 큰길가에 세운 석비. 신도비(神道碑)는 왕 또는 고관의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을 말한다. 신도(神道)라는 말은 사자(死者)의 묘로(墓路) 즉 신령(神靈)의 길을 의미한다. 신도비는 중국 한대(漢代)부터 종2품(從二品) 이상의 관직에 있었던 이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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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석기의 영세불망비. 신석기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정조 연간에 잠깐 보이고 있어 정조 때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으나, 건립 경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다년간 수리(首吏)로 민정을 자상하게 시찰하였다는 데서 공덕을 짐작할 수 있다. 충주시 단월동 건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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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악성 우륵의 공적을 추모하는 비. 우륵(于勒)은 원래 가야국(伽倻國) 사람으로, 가실왕(嘉悉王)이 성열현(省熱縣)의 악사 우륵에게 가야금 곡조 12곡을 짓게 하였다. 후에 우륵이 신라로 귀화함에 진흥왕이 국원성에서 살게 하였다. 이후 진흥왕은 우륵의 연주를 듣고 감동하여 대나마(大奈麻) 계고(階古), 법지(法知), 대사(大舍)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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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 목행초등학교 내에 있는 일제강점기 안승언의 공덕을 기리는 비. 비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안승언은 목행초등학교를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향촌 교육에 공헌한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935년 8월 18일 건립하였다. 충주시 목행동 577-1번지[목행초길 16] 목행초등학교 내 본관 건물 왼쪽 뒤편의 향토유물원에 건립되어 있다. 목행초등학교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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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693년(숙종 19) 충주목사겸충주진관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같은 해 전임 충주목사 이국헌(李國憲)이 갑자기 죽음을 당하자,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訴狀)을 올려서 의심스러운 여섯 사람을 가두었다. 그런데 이국헌의 후임으로 온 충주목사 엄찬까지도 꾸짖고 욕보이자, 엄찬이 이국헌의 아들을 곤장으로 때리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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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 오순영은 1874년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수안보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할 때 자신이 갖고 있던 수안보면 온천리 299번지의 토지 12,157㎡를 기부하였다. 오순영이 기부한 토지를 바탕으로 1921년 5월에 2개 학급으로 수안보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였다. 오순영의 지역 교육 발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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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에 있는 조선 후기 임경업의 처 완산이씨의 정렬을 기린 비. 20세에 임경업의 처가 된 진안대군 7세손인 완산이씨는 시부모에 효를 다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미덕을 보였다. 1637년(인조 15)에 임경업은 의주부윤에서 평안도의 병권을 장악하자 대의를 떨쳐 명나라와 소통을 하였고, 이를 알게 된 청나라에서는 임경업을 잡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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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언확(彦確). 증조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우경지(禹敬之)이며, 할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우효종(禹孝從)이다. 아버지는 수군절도사를 지낸 우인손(禹仁孫)이며, 어머니는 진사 송찬(宋瓚)의 딸 진천송씨이다. 1507년(중종 2) 충주에서 태어난 우상(禹鏛)은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급제하고, 1540년 식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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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할아버지는 지도평의사사(知都評議使司) 우경절(禹慶節)이며, 할아버지는 문하시중 우중대(禹仲大)이다. 아버지는 문하시중 우천석(禹天錫)이며, 부인은 군부인(郡夫人) 청풍김씨 감문위대호군 김현창(金鉉昌)의 딸이다. 장자는 우수생(禹壽生)이며, 둘째는 호군 우덕생(禹德生)이고, 셋째는 판밀직사사상호군 우복생(禹福生)이며, 넷째는 우소생(禹小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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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조선 전기 사헌부감찰을 지낸 유용량과 부인 안동권씨 합장묘. 유용량은 문화유씨 하정공파로, 자는 순부(純夫), 호는 백곡(栢谷) 이다. 조부는 고양군수 증이조참판(高揚郡守贈吏曹參判) 유순행이며, 부친은 부제학 공조참판을 역임한 유희저(柳希渚), 모친은 정부인 죽산안씨이다. 유용량은 1495년(연산 1) 9월 23일에 출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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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유장혁의 영세불망비. 원래 충주시 단월동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정문 옆의 야산 자락에 위치하였으나, 2008년 단월동 488-1번지[충원대로 242]에 충주 엽연초생산조합 건물이 신축되면서 현 위치로 옮겨놓았다. 비좌원수의 형태로 비신은 53×16×122㎝ 크기의 대리석 비이다. 받침돌은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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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신니면장 윤우영의 공덕을 기리는 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불망비의 음기를 통하여 면에 부임하면서부터 주민이 원하는 바를 수행하고, 공정한 업무와 함께 적은 봉급에도 주민들의 구휼에 힘을 기울이고, 어른들에게 예를 갖추어 봉양한 공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도 3호선 구 도로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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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자선사업가. 윤해영은 파평윤씨 소정공(昭靖公)의 31세손으로 1906년 충청북도 충주군 엄정면 목계리에서 아버지 윤진국(尹鎭國)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가정에서 한문을 공부한 후 인천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목계금융조합에 근무하다가 부친의 사업을 계승하여 근대적 정부 도정공장을 운영하면서 지역의 각종 사회활동에 참여하였다. 성품이 과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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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 노변공원에 있는 반공 투사 이강영의 추모비. 앙성면 영죽리에 거주하였던 당시 24세의 이강영(李姜榮)이 1954년 10월 19일 음성군 감곡면 오갑산 고개에서 공비 두 명을 만나 적수공권으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자, 그의 애국심과 반공 정신을 기리고자 충청북도 경찰국장 장영복이 비제를 쓰고 충주경찰서장 차일혁이 찬한 추모비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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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원장(元章). 문정공(文正公) 이재(李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제달(李濟達)이며, 아버지는 이목(李木)이고 생부는 이화(李禾)이다. 이광헌은 1795년(정조 19) 사마시에 합격한 뒤 1808년(순조 8) 순창군수를 역임하였으며 1814년(순조 14) 충주목사로 재직하였다. 같은 해 정시 문과에 급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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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구장 이교성의 위령비. 미륵리 병자(丙子) 수해 당시 미륵리 구장이었던 이교성(李敎性)이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자 그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미륵리 주민들이 세웠다고 전한다. 다만 병자년(丙子年)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여 1876년(고종 13) 설과 1936년 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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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신니면장 이돈화의 공덕을 기리는 비.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때 신니면장을 역임한 이돈화(李敦和)의 청렴결백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도 3호선 구 도로를 이용하여 신니면사무소를 지나 용원저수지 입구에서 우회전하면 매점이 나오는데, 매점 뒤 배수구 입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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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연풍군수 이민제를 기리는 비. 이민제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내장원 「훈령조회존안(訓令照會存案)」에 의하면 우변포도대장종사관, 훈련원첨정, 경상우후, 연풍군수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내장원에서 도조세를 독촉하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미루어 그동안 연풍군수로서 안부역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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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범춘의 공덕을 기리는 비. 대화리 구장(區長)으로 10여 년 활동한 이범춘(李範春)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942년 11월 구민들이 세웠다.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 동락초등학교에서 구 국도 3호선을 따라 300m 가면 북쪽 화치마을 입구에 이범춘 영송비가 세워져 있다. 본래는 대화리에 건립되었으나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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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검묵당(儉默堂). 아버지는 조선 정종 이방과(李芳果)이며, 어머니는 대사헌 윤방언(尹邦彦)의 딸 숙의(淑儀) 해평윤씨(海平尹氏)이며, 부인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연지(金連枝)의 딸 학성군부인(鶴城郡夫人) 원주김씨(原州金氏)이며, 형은 수도군(守道君) 이덕생(李德生)·임언군(林堰君) 이녹생(李祿生)이며, 동생은 장천군(長川君) 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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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성주(星州). 증조할아버지는 고려시대 낭장을 지낸 이만년(李萬年)이고, 할아버지는 정랑(正郞)을 지낸 이의인(李宜仁)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이덕봉(李德逢), 아들은 이춘영(李春英)이다. 1419년(세종 1) 개성유후로 있을 때 본명인 이도분(李都芬)의 이름 중 도(都) 자가 세종의 이름과 음이 같아서 이사분으로 고쳤다. 다섯 번 수령에 임명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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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지도(志道). 아버지 이계열(李繼悅)은 일찍 타계하여 출사하지 못하였고, 어머니 연안김씨(延安金氏)는 참봉 김규사(金逵思)의 딸이다. 1572년(선조 5) 중사마(中司馬)를 지내고, 1590년(선조 23) 청단찰방(靑丹察訪)이 되었다. 1597년(선조 30) 상의직장(尙衣直長)으로 옮겼으며, 이듬해 전성주부에 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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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에 있는 풍덕마을 방풍림계를 창설한 이석호의 공덕을 기리는 비.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 입구의 허함을 막기 위하여 1906년 호당(戶當) 보리 1말씩을 추렴하여 계를 만들어 방풍림을 창설한 참봉 이석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풍덕마을 주민들이 1955년 3월 창설 50주년 비를 건립하였다. 주덕 오거리에서 노은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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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유등면장 이순교의 송덕을 기리는 비. 1914년 충주군의 유등면과 이안면이 통합되어 이류면[현 대소원면]이 되기 직전인 1913년 유등면장을 역임하면서 면민을 편안케 하고 구휼한 이순교(李淳敎)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장승백이 삼거리에 건립하였다가 1992년 7월에 매산경로당이 건립되면서 송덕비를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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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경(子敬)이며 호는 영옥헌(永玉軒). 증조할아버지는 벽상삼한삼중대광영경운전사전성부원군(壁上三韓三重大匡領景雲殿事全城府院君) 이사안(李思安)이고, 할아버지는 철원대부의부사로 추증된 이작(李作)이며, 아버지는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한 이의흡(李宜洽)이며, 어머니는 총제(摠制) 문계종(文繼宗)의 딸 남평문씨(南平文氏)로서 정부인(貞夫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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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아버지는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의 입향조인 이덕량(李德樑)이다. 이정지는 어려서부터 밖에 나가 놀다 돌아와도 부모님께 절을 올렸으며, 어머니의 병환에 밤낮으로 의대를 풀지 않고 간병하였다. 돌아가시자 상례를 어긋남이 없이 하였다. 아버지가 병환 중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가뭄에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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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계량(季良), 호는 화천(華泉). 할아버지는 좌참찬 이재(李縡)이다. 이채는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 휘령전참봉(徽寧殿參奉)이 되고 이어 사헌부와 호조와 형조의 여러 벼슬을 거쳐 돈녕부주부·음죽현감(陰竹縣監)을 지내다가 무고를 받고 파직되었다. 1790년(정조 14) 홍릉령(弘陵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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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족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문경공 이채 부부 합장묘. 이채(李采)[1745~1820]의 본관은 우봉(牛峰)으로, 자는 계량(季良), 호는 화천(華泉),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744년(영조 20)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휘령전(徽寧殿) 참봉, 사헌부, 호조, 형조의 관직을 거쳐 돈령부주부를 지냈다. 음죽현감(陰竹縣監) 재직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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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달천동 달천대교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이채를 기리는 영세불망비. 충주목사 이채(李采)는 우봉이씨로 자는 계량(季良)이고, 호는 화천(華泉)이다. 1774년(영조 50)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75년 휘령전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사헌부, 호조, 형조의 관직을 거쳐 돈령부주부를 역임하였다. 음죽현감 때 무고로 관직을 떠나 귀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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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사미리 사미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구장을 역임한 이철훈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일제강점기 때 사미리의 구장을 역임한 이철훈(李喆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사미리 주민들이 1942년 8월에 건립하였다. 영덕삼거리에서 장호원으로 가는 국도 38호선을 이용하여 앙성면 용포리 방향으로 진입하여 주유소를 지나 우회전하면 사미리로 들어간다. 사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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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락리 동락초등학교에 있는 이태호의 공로를 기리는 비. 이태호는 독학으로 공부한 후 사립학교를 건립하여 30여 년 동안 향민(鄕民) 교육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신니면 의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태호가 건립한 사립학교가 동락국민학교로 흡수된 뒤 학교 부지를 희사한 이태호(李台鎬)를 위하여 1968년 8월 16일 동락초등학교에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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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행정가이자 정치인. 이효승은 전주이씨 경명군파 12대손으로 1928년 엄정초등학교를 10회로 졸업하였고, 충주교현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1941년 엄정면장을 역임하였고, 1952년에 초대 충청북도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도정에 참여하였다. 1958년 최초의 직선제로 엄정면장에 당선되는 등 4회에 걸쳐 13년간을 엄정면장으로 봉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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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초명은 광정(光正), 자는 경복(景服), 호는 방야(方野),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역임한 이재(李縡)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이채(李采)이다. 후사가 없던 목사 이화(李禾)에게 입양되었다. 1780년(정조 4)에 태어난 이휘정(李輝正)은 1813년(순조 13) 동몽교관으로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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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 신덕로에 있는 일제강점기 덕면의 면장을 역임한 이희명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이희명(李羲命)은 주덕읍이 통합되기 전 덕면의 면장을 1908~1910년, 1911~1914년 두 차례에 걸쳐 역임하였는데, 이 때의 선정을 기려 덕면 사람들이 세운 불망비이다. 본래는 1914년 4월 주덕읍 제내리 성동마을 입구 지방도 599호선 변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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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 있는 충주향교 직원 이희창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이희창은 충주향교의 유계(孺契)를 홍몽화 등과 창설하여 홍영은, 권병억의 뒤를 이어 3대 계장에 피선되어 30여 년간 계장으로 활동하면서 향교 제례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하는 등의 공적을 세웠다. 이에 충주 문묘 유림들이 1963년 4월 이희창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충주시 교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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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풍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인 임성업의 신도비. 임성업(林成業)은 무과에 등과하여 이괄의 난에 출전하였는데, 아우인 임승업(林承業),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 임준업(林俊業)과 함께 참여하여 안현전투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 그 뒤 병자호란 때에도 종횡으로 분치(奔馳)하여 전력을 다하였으나 권간(權奸)들의 방자한 횡포에 뜻을 이룰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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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상단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남변면장 임직현의 청덕비. 임직현(林稷鉉)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다만 1914년에 충주군 남변면과 북변면이 통합되어 충주군 읍내면으로 개편되었는데, 임직현 청덕비가 1908년 건립된 것으로 미루어 1896~1908년 사이에 면장을 역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호흥학회보』 제7호의 회중 기사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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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장계원의 영세불망비. 장계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시종원 시종, 충청남도 사검위원(忠淸南道査檢委員)을 역임하였고, 1901년 11월 23일 충청북도 봉세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계원은 1901년 흉년으로 인하여 농민들이 파종할 씨앗마저 없게 되자 관찰부를 통해 역둔토의 세조(稅租)를 균등히 나누어주어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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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반공투사 여섯 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6·25전쟁 중 목숨을 바쳐 싸운 이선규(李善圭), 권중대(權重大), 홍선식(洪善植), 김용기(金容琪), 변용출(卞龍出), 박삼수(朴三壽) 등의 넋을 위로하고 이들의 반공 정신과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6월 25일 대한노인회 목계노인회 회장 우태원 등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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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능말마을 입구에 있는 김성배 처 전주이씨의 효열비. 김성배 처 전주이씨는 1897년(고종 34) 괴산에서 전주군수 이삼응(李參應)의 4녀로 태어나 14세 때 김성배와 결혼하여 시부모를 모시고 9년간 딸 셋을 낳고 살았다. 그러다 남편이 병에 걸리자 3년간 정성껏 간호를 하였고, 시아버지 상을 당하자 제사를 정성껏 치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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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석포마을에 있는 전희철의 공적을 기리는 비. 전희철(全熙喆)은 천안전씨(天安全氏) 곡산공파(谷山公派) 문중의 일에 열과 성을 다하여 족보 발간, 사당 건축, 신도비 건립 등의 공적이 있고 산수국민학교를 세울 당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열의를 보였다. 또한 성품이 온화하고 양순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검소하므로 천안전씨 곡산공파 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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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정경순은 조선 후기 영조 대부터 정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문장과 덕망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기개를 지닌 선비였다고 전한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시회(時晦), 호는 수정옹(修井翁).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유생 정석경(鄭錫慶)이다. 형은 정원순(鄭元淳), 동생은 정지순(鄭持淳)이다. 정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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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여(善餘). 증조할아버지는 송강 정철(鄭澈), 할아버지는 강릉부사를 지낸 정명(鄭溟),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정직(鄭溭), 어머니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박준(朴峻)의 딸 비안박씨이다. 슬하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정주(鄭澍), 통덕랑에 오른 정린(鄭潾), 상의원정을 지낸 정필(鄭泌), 정섭(鄭涉), 영의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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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구장을 역임한 정인덕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 1937년 신니면 용원2구 주민들이 20여 년간 구장직을 역임하며 마을 일을 열심히 수행한 정인덕(鄭寅德)의 공적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세웠다. 구 국도 3호선 변에 위치한 용원저수지 배수구 입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비좌규수의 형태이며, 상단이 하단에 비하여 약간 넓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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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면장 정하현의 불망비. 정하현의 출생 및 성장에 관하여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대한제국 시대의 단편적인 기록을 보면, 1902년(고종 39) ‘정하현임내부주사서판임관육등임충청북도관찰부주사서판임관육등(鄭夏鉉任內部主事敍判任官六等任忠淸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六等)’이라는 기록이 『의정부총무국관보』 제2299호에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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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성서(聖瑞), 호는 취석당(醉石堂). 송강 정철(鄭澈)의 6세손으로 영의정을 지낸 문경공 정호(鄭澔)와 강릉최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681년(숙종 7) 충주에서 태어난 정희하(鄭羲河)는 1715년(숙종 41) 한성부판관이 된 이후 외직으로 나아가 평안도사, 연풍현감 등을 지냈다. 1747년(영조 2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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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충주수리조합장을 역임한 조명규의 공덕을 기리는 비. 구체적인 공덕 사항은 알 수 없으나 충주수리조합원 일동 명의로 조합장이던 조명규의 공덕을 기려 1959년 4월 현 위치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충주시 호암동에 위치한 호암지의 서쪽 언덕, 위령 묘역 내에 박준하 공적비 및 일본인 위령탑, 호암지 건설 성공탑 등과 같이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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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에 있는 진상흥의 공덕을 기리는 비. 진상흥은 연하리 대동계장으로 약 10여 년간 봉사하였고, 노인정을 창설하여 15년간 노인회장을 역임하면서 유언으로 연하리 마을회관 부지를 희사함에 따라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89년 9월 24일 진상흥 기공비를 건립하였다. 노은면에서 앙성면으로 가는 구도로 옆의 마을회관 앞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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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에 있는 진용학의 공덕을 기리는 비. 연화마을 앞들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로 만든 진용학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연하리 주민들이 1975년 8월 17일 세운 비이다. 노은면 연하리 연화마을 입구 개인 주택 담장 뒤쪽에 세워져 있다. 비좌개석의 형태로 지붕돌은 73×49×46㎝이며, 비신은 44.5×19×120㎝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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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청풍김씨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비. 1936년 병자 수해 때, 효성이 지극한 청풍김씨가 급류에 휘말려 사망함에 따라 원혼을 풀어주기 위하여 주민들이 세운 비이다.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충주 미륵대원지 주차장 안쪽 자연 암석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는 미륵세계사 입구에 있다가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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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문신 최렴의 신도비. 최렴(崔濂)은 본관이 충주이며 시호는 양정(良貞)이다.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1389년(공양왕 1) 판밀직부사 재직 중에 창왕이 폐위되고 공양왕이 즉위하면서 원지로 유배되었다가 곧 방환되었다. 1392년 조선이 개창하자 검교 의정부 우의정에 제수되었고, 곧 안변에 적거하다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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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이자 정치인. 본관 충주(忠州). 총제공파 강북파(摠制公派 江北派) 23대손으로 아버지는 최동민(崔東敏)이고, 강원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최개국(崔盖國)의 후손이다. 최성환은 1951년 정치에 입문하여 1952년 4월 25일에 자유당 소속으로 초대 동량면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동하였다. 1958년 대미초등학교 기성회 초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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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월촌에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석보군 이복생의 묘. 제2대 왕인 정종의 아홉째 아들인 이복생(李福生)의 호는 검묵당(儉黙堂), 시호는 정혜(靖惠)이다. 모친은 숙의(淑儀) 해평윤씨(海平尹氏)이며, 배위(配位)는 원주김씨로, 판중부사대경공(判中樞府事戴敬公) 김연지의 딸로 학성군(鶴城君)의 부인이다. 1399년(정종 1) 3월 4일 출생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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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고려 승려의 탑비. 억정사(億政寺)에 전해오는 비(碑)로, 대지국사가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4세에 출가하고 1390년(공양왕 2)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하고, 대사의 인품과 학력을 기리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엄정면 괴동리 억정사지의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서서 괴동리 앞들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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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에 있는 고려시대 인물인 우천석과 우팽의 묘소. 고려시대의 무신인 우천석은 1266년(원종 7)에 스승인 민지(閔漬) 등과 같이 명경과 을과 제2인으로 올라 1268년(원종 9) 도병마녹사로서 낭장 박신보와 함께 몽고의 사신 와국창 일행을 흑산도로 인도하여 뱃길을 살폈다. 1273년 서해도안찰사로서 제주 지역을 거점으로 저항하는 삼별초를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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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상급의 신도비. 이상급(李尙伋)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당부(戇夫)이며,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1606년(선조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정조 때 안찰사가 부임하자 풍기군수였던 이상급은 속관(屬官)이 되기를 거부하고 사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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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무신 이수일의 신도비. 충무공(忠武公) 이수일은 조선 중기 북벌론의 대표격인 이완 대장의 아버지이다. 충주 서촌의 시곡(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서 태어나 30세에 무과에 합격한 후 선전관, 현감을 거치다가 임진왜란을 맞이하였다. 이때 이수일은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무찔렀으며, 40세에 밀양부사가 되었고,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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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고려 전기 고승 법경대사의 부도탑비. 법경대사는 879년(헌강왕 5)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법을 배웠고, 20세에 불가에 입문하였다. 906년에는 당나라에 들어가 도건대사에게 가르침을 받다 924년(태조 7)에 귀국하였다. 경애왕이 국사로 대우하며 정토사 주지로 임명하였다. 941년(태조 24) 63세로 입적하자 태조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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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던 고려 전기 홍법국사 탑비. 홍법국사는 통일신라 선덕왕대에 태어나 12세의 나이에 출가하였고, 당나라를 다녀온 뒤 선(禪)을 크게 일으켜 국사 칭호를 받았다.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實相)이라 하였다. 정토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고려 목종이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實相)이라 내려주러 탑비를 건립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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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축성에 대한 사적비.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를 겪은 뒤 전국의 성첩과 군기를 보수하여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조칙이 내려오자 1869년 2월부터 읍성을 개축하기 시작하여 10개월 만인 11월에 준공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화강암 충주 축성사적비를 세웠으며, 앞면에는 축성 연대와 성의 크기, 문루의 크기를 상세히 기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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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에 있는 조선 후기 임경업을 기리는 비. 임경업[1594~1646]은 조선 인조 때의 명장이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이며 본관은 평택이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1633년(인조 11) 명나라의 반란군을 토벌한 공으로 명나라 황제로부터 총병의 관직을 받았다. 병자호란 때에는 백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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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충주최씨 사적을 정리한 비. 충주최씨의 종회 도유사 최주환(崔周煥)과 종회장인 최면승(崔勉承)이 행한 사적을 정리하고 성금을 찬조한 명단을 부기하였다. 1차 추원기적비에는 1980년까지 성금 낸 명단을 음기하였고, 2차 추원기적비에는 1983년 10월까지 성금을 협찬한 명단을 음기하여 2기의 충주최씨 추원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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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이철재의 처 경주김씨의 효부비. 이철재의 부인 경주김씨는 27세에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두 아들을 훌륭하게 성장시킴은 물론 시부모의 병환을 10여 년 동안 뒷바라지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67년 수몰된 개천사 유물을 모아놓은 소공원 들머리에 효부비를 세웠다. 충주 동량면사무소가 위치한 조동리에서 좌회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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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국곡마을에 있는 정려문. 전주이씨 이유양의 처 효녀 숙인 풍산홍씨는 전적(典籍) 홍봉상(洪鳳詳)의 딸로, 시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함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넣어 즉시 완쾌시켜 명정되었다. 효자 통덕랑 이적은 이유양의 장남으로, 효가 극진하여 증집의(贈執義)하고 명정되었다. 효자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 이서는 이적의 아우로 역시 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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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양천(陽川). 할아버지는 양양부사(襄陽府使) 허비(許扉)이며, 아버지는 전부(典簿)를 역임한 허형(許蘅)이다. 허감은 1485년(성종 16) 무과에 급제하여 1489년 선전관을 역임하였다. 1490년 성종이 후원에 침림하여 무신들이 활쏘기를 하였는데 1등을 차지하여 아마(兒馬) 1필을 하사받았다. 1491년 후원에서 활쏘기를 3일 동안 시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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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의보(毅甫), 호는 향오(香塢). 아버지는 한천(寒泉) 허잠(許潛)이고, 어머니 안동김씨(安東金氏)는 관찰사를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김제갑(金悌甲)의 딸이다. 아버지 한천이 성주목사로 재직할 때 정구(鄭逑)·김동강(金東岡)·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15년(광해군 7) 음사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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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대이(大而), 호는 창애(蒼厓). 할아버지는 홍만종(洪萬鍾)이며 아버지는 형조참판 홍중하(洪重夏)이다. 홍경보는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27년(영조 3) 정언이 되어 형률(刑律) 시행의 잘못에 대하여 상소하였다. 1728년 부수찬과 참찬관을 거쳐 대사간이 되어 숙종에게 수덕(修德)과 정요(政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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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당우리에 있는 홍기원의 공덕을 기리는 비. 홍기원이 고향 후세들을 위하여 사립학교 터를 희사함에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이 1994년에 홍기원 송덕비를 세웠다. 주덕읍에서 국도 3호선을 따라 서울 방향으로 가다가 당우리 쪽으로 우회전한 후 원당우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유동 마을회관이 나온다. 그 입구에 비가 세워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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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産). 자는 여수(汝受). 사헌부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남원부사 홍탁(洪雨+濯)이며, 아버지는 예산현감 홍주문(洪柱文)이다. 홍만종은 1657년(효종 8)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6년(현종 7)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67년(현종 8) 춘방겸관(春坊兼官)에 이어 대교가 되고 1669년 지평(持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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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승려. 홍법국사의 생전 활동 모습에 관해서는 어디에서도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비(淨土寺弘法國師實相塔碑)가 전해지고 있어 비문의 내용을 통해 부분적이지만 그 생애의 일부를 어느 정도 확인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비문마저도 마멸이 심하여 전문의 정확한 판독은 불가능한 상태이며 판독이 가능한 부분만을 토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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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주 홍기원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일제강점기 가뭄이 심하게 들자 도촌리 지주인 홍기원이 소작인들의 소작료 일체를 탕감해 주자, 이를 고맙게 여긴 소작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기리고자 비를 건립하였다. 본래 금가면 태광수지 앞에 있었다. 금가면사무소를 새롭게 이전, 건립하게 되면서 홍기원 영세불망비도 주민들의 동의 하에 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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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에 있는 금가면장이었던 홍양희의 공덕을 기리는 비. 1945년부터 1960년까지 금가면 1, 2, 3대 면장을 역임한 홍양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금가면민 일동이 세웠다. 본래 금가면 도촌리 종산 밑에 세웠던 것으로, 금가면사무소가 이전, 건립되자 면민들의 동의하에 면사무소 건물 앞쪽으로 이전하였다. 이곳에는 홍승원 영세불망비도 같이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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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봉세관 홍재익의 송덕비. 홍재익의 관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훈령조회존안(訓令照會存案)』 등의 기록을 통하여 추정해 보면, 1899년(고종 36) 12월 23일 내장원소관충청북도각양둔토사검위원겸독쇄관(內藏院所管忠淸北道各糧屯土査檢委員兼督刷官)으로 임명된 이후 충주군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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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천서(天敍), 호는 두담(杜潭). 할아버지는 예산현감을 역임한 홍주문(洪柱文)이며, 아버지는 참판 홍만종(洪萬鍾)이다. 홍중하는 1679년(숙종 5) 생원시에 합격하고 1686년 춘당대시(春塘臺試)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88년 검열이 되고, 1691년 정언·지평, 1693년 부수찬·부교리·헌납 등을 지냈다. 이듬해 교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