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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강(子强), 호는 약봉(藥峰). 고려시대 태사(太師) 유차달(柳車達)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몽정(柳夢鼎)이고, 아들은 사어(司禦) 유시량(柳時亮)이며, 손자는 유송제(柳松齊)·유계제(柳桂齊)·유회제(柳檜齊)이다. 조선 광해군 때의 효자로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광해군 때 벼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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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겸(子謙)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되었다. 영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있다가 통정대부거창도호부사 겸 진주진영병마첨절제사를 지내고 수안(遂安)·제주부(濟州府)에도 있었다. 어버이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하니 효험이 있었다. 또한 어버이가 한겨울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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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경(子敬)이며 호는 영옥헌(永玉軒). 증조할아버지는 벽상삼한삼중대광영경운전사전성부원군(壁上三韓三重大匡領景雲殿事全城府院君) 이사안(李思安)이고, 할아버지는 철원대부의부사로 추증된 이작(李作)이며, 아버지는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한 이의흡(李宜洽)이며, 어머니는 총제(摠制) 문계종(文繼宗)의 딸 남평문씨(南平文氏)로서 정부인(貞夫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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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 소설가 염재만이 방황하는 청년들의 자아세계를 다룬 단편소설. 「반노」의 작가로 알려져 있는 소설가 염재만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작가이다. 「자기 상실」은 발표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그의 단편소설이다. 대표작인 「반노」는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성(性) 묘사 수위에 대한 검열 논란에 휘말려 한때 화젯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작가는 이에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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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터. 일반적으로 토기나 자기, 기와를 굽거나 숯을 만들고 철을 녹이던 시설을 통칭하여 가마[窯址]라고 한다. 도요지는 그 가운데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에 한정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연질 토기는 노천요(露天窯)라고 하는 원시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노천요는 연료실과 적재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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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남북국시대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우두(牛頭) 혹은 자두(字頭). 석탈해왕(昔脫解王)의 18세손으로 아버지는 육두품 11관등 내마(柰麻) 석체(昔諦)이다. 강수의 조상은 경상남도 고령의 대가야 출신으로 대가야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보인다. 강수는 중원경(현 충주시) 출신으로 어머니가 꿈에 머리에 뿔이 난 사람을 보고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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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자린고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자린고비 이야기」는 인색한 사람을 지칭하는 자린고비를 내세워 그의 행위를 다룬 과장된 전설이다. 조선 인조(仁祖)[1595~1649] 때 태어난 자린고비 조륵(趙肋)의 묘가 신니면 대화리 화치마을에 있다. 충주 지역에는 ‘자린고비’와 관련된 전설이 많다. 자린고비의 출생지는 오늘날 음성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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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와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 또는 동포(東浦). 아버지는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희도(希道)이고, 최영(崔瑩)의 손자사위이다. 1386년(우왕 12)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춘추관검열을 거쳐 전의사승·기거랑·사인·우헌납 등을 역임했으며, 수원판관에 이어 내사사안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되자 예조의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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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감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미(子美). 증조부는 최렬(崔洌), 조부는 최옥(崔沃), 아버지는 최중청(崔仲淸)이다. 처부는 이은(李誾)이다. 태조 1년(1392)에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였다. 태조(太祖) 5년(1396)에는 병자(丙子)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3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 동도총제(同都摠制)·사간원대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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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자선(子先), 호는 취헌(翠軒).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유홍(兪泓)이며,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역임한 유대일(兪大逸)이며,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인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유백증은 1612년(광해군4)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615년에 승문원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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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성(子省), 호는 남악(南岳)·추담(秋潭). 고려 때의 제학(提學) 최원유(崔原儒)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감찰(監察) 최사공(崔士恭)이며, 아버지는 호조참판 최분(崔汾)이다. 최개국은 이약빙(李若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를 거쳐 15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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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이란 말을 들을 때에는 후덕한 인심이 풍기는 뉘앙스가 있다. 단순히 저가의 숙박 제공이 아닌 그 지역의 고유문화와 풍습, 인심을 맛보는 곳이란 선입견도 이젠 옛말일 듯하다. 이상정 씨가 부인 오혜련 씨와 함께 운영하는 송림민박도 처음 건축하였을 때는 새집이어서 많은(?) 손님들이 찾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건물의 노후 뿐 아니라 새로운 서양식 펜션이라는 주택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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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자실(自實). 정숙공 박안신(朴安信)의 후손이다. 박효인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이 나면 대변을 맛보고 그 상태를 알아 간호했고, 병세가 위독해지면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병을 치료했다. 또한 박효인의 처 원씨도 효심이 지극하여 부부가 모두 주위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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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기상 현상과 자연 현상 등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재해. 충주 지방은 자연재해 중 한해·냉해·설해 등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주로 여름철 집중 호우와 태풍에 의한 피해가 대부분이다. 충주는 풍수해가 많은 한강 유역 중부에 위치하여 대홍수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잦은 편이지만, 면밀히 기록된 것은 많지 않다. 현재까지의 기록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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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충주는 우리나라의 중앙부를 차지하며 북동쪽으로는 제천시, 서로 음성군, 남으로 괴산군과 경상북도에 면하고, 북으로 경기도와 강원도에 면한다. 충청북도에서는 북동부에 치우쳐 위치해 있다. 또한 남동쪽으로 소백산맥의 여맥인 계명산·남산·대림산·월악산, 서쪽으로 국망산, 북쪽으로 천등산 등 비교적 높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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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김조근의 글씨를 모은 서첩. 김조근[1793~1844]은 조선 후기의 외척으로,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백술(伯述), 호는 자오이다. 할아버지는 김이소(金履素)이고 아버지는 김지순(金芝淳)이다. 음보(蔭補)로 판관·승지를 지냈으며, 영돈녕부사(領敦寧 府使)에 이어 어영대장·호위대장·주사대장 등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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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유(子游). 시호는 정장(貞莊). 아버지는 광주목사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어득해(漁得海)이다. 어유소(漁有沼)는 1451년(문종 1) 내금위에 선발되고 1456년(세조 2)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복시직장,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1460년 두만강을 건너 조선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하던 여진, 알타이, 골간, 올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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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충인동과 충의동 일원에 있는 재래시장. 충주자유시장은 옛날의 5일장에서 발전해 도시의 형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충주시 충인동과 충의동 지역에 정착된 시장이다. 충주자유시장은 구 중앙파출소를 기점으로 시작되는데, 이곳은 과거 충주읍성의 북문이 있던 곳으로 ‘북문거리’로 불리던 곳이다. 예전의 장이 성문 밖을 중심으로 열렸던 것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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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태종의 아들인 경녕군의 자손들이 들어와 양반의 법도를 지키며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법동리라고 하였다. 일찍이 전주이씨 경영군파 후손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고 세거하였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법동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1898년(대한제국 고종 2)에 편찬된 『충청북도 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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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태종의 아들인 경녕군의 자손들이 들어와 양반의 법도를 지키며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법동리라고 하였다. 일찍이 전주이씨 경영군파 후손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고 세거하였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법동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1898년(대한제국 고종 2)에 편찬된 『충청북도 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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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암행어사로 활약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장(子章), 호는 학당(鶴塘). 증조할아버지는 풍안군(豊安君) 조흡(趙潝)이며, 아버지는 도정(都正)을 지낸 조도보(趙道輔)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를 거쳐, 1712년 29세로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설서(設書)·정언(正言)·지평(持平)을 지냈다. 1717년(숙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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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심원(深源), 호는 자재(字齋)이다. 세조 때 무신 권언(權躽)의 현손이다. 증조부는 어모장군 권팽(權伻)이며 조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어모장군 권사직(權司直),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첨지중추부사 권형, 어머니는 사인(舍人) 보성(輔誠)의 딸 진원윤씨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증(贈) 사복시정(司僕寺正)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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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점(子漸). 아버지는 안숙손(安叔孫)이다. 안홍은 사칠논쟁(四七論爭)의 발단이 된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지은 추만(秋蠻) 정지운(鄭之雲) 문하에서 공부했다. 1535년(중종30)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낸 뒤 사성(司成)이 되었다. 1566년(명종21) 청주목사로 나아가 봄에 흉년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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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삼청리에서 자점방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주덕읍 신양리에서 음성 쪽으로 국도를 따라 약 1㎞ 지점에 좌측으로 삼청리 농말로 들어가는 국도변 입구에 저수지가 있는데, 이것을 자점방죽이라고 한다. 조선조 인조 때 문신인 김자점 때문에 생긴 방죽이라고 한다. 「자점방죽」 전설은 김자점이 이곳에 호화별장을 짓고 왕래했는데 김자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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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1623년(인조 1) 학행(學行)으로 발탁되어 6품직을 받고, 여러 군현의 수령직을 역임하면서 명성과 치적을 쌓았다. 1645년(인조 23) 사헌부장령이 되었을 때, 음관(蔭官)에게 사헌부의 직을 제수하는 것은 학식이 있거나 재행이 있어야 하는데 이유양의 학식과 재행이 모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여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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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 시언(時言), 자는 자중(子中), 호는 하담(荷潭), 시호는 충익(忠翼). 할아버지는 영상공 김석(金錫), 아버지는 비안현감을 지낸 김인갑(金仁甲), 어머니는 남양홍씨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1607년 승정원주서, 1609년(광해군 1) 예조좌랑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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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영일(迎日). 증조부는 증좌찬성 정직(鄭稷), 조부는 청안현감 정경연(鄭慶演), 아버지는 통덕랑 정린(鄭潾), 어머니는 양주최씨이다. 권상하의 문인으로 기품이 단아하고 은덕이 있었으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효우도 돈독하고 청렴결백한 가풍을 이루었다. 유학 경전과 『근사록(近思錄)』을 읽으며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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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자한(子漢), 호는 화은(華隱). 세종 대에 직제학을 지낸 남간(南簡)의 후손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명인 남효온(南孝溫)의 조카이다. 명종 대에 여러 관직을 거친 황삼성(黃三省)이 사위이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오랫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540년(중종 35) 호조참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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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화천리와 괴산군 연풍면을 연결하는 고개. 말 그대로 ‘작은 새재’이다. 새재의 한자 표기인 조령(鳥嶺)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데,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험한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선봉[967m]과 586.5m 고지 사이의 낮은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에 소백산지 본줄기에 해당하는 마역봉[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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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잠병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가차면(加次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잠리(中岑里)·사천리(沙川里)·사랑리(沙浪里)·하담리(荷潭里)·상잠리(上岑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잠병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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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던 조선시대 초가. 18세기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중부 지방의 전형적인 민가 형식의 가옥이다. 3칸 전퇴의 목조 초가집으로 민가의 구로조서는 오래된 구조 기법을 보이고 있다. 충주시 탄금호 조정지댐을 건너 원주 방향으로 가는 국도 38호선을 따라 3.6㎞를 간 뒤 축동마을 고개 못 미쳐 왼쪽 싸리골마을로 들어가면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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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조선시대 민묘로 추정되는 유적. 1998년 충주시 문화 유적 분포 지표 조사 당시 확인된 민묘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이후 더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현지 조사 결과 관리되지 않는 민묘가 능선을 따라 다수 분포하고 있다. 금가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5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새로 조성한 문화 마을이 나타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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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금가면 일대는 완만한 구릉지대가 많고, 남한강을 바라보는 남사면에 해당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 잠병리는 금가면의 북쪽 지역으로 엄정면과 접하고 있는 마을로 장호원·앙성면·산척면·백운면을 잇는 국도 19호선이 지나간다.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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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와 하구암리, 용전리를 연결하는 고개. 충주 장미산성과 이웃하고 있어, ‘성(城)’을 뜻하는 우리말 ‘잣’을 붙여 고개 이름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절골산[341m]과 장미산[337m] 사이에 있는 고개로 남한강 서쪽에 이웃한 을궁산[394m]·장미산[337m]에 이르는 동서 산줄기에 남북 방향의 구조선이 지나가면서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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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콩을 발효시켜 만든 저장 식품. 우리나라는 농업 국가로서 예부터 곡물로 조미료를 많이 만들어 먹었다. 이 곡물 조미료가 곧 장이다. 충주에는 된장·고추장·간장 외에 막장·박치기장이 있는데, 특히 충주의 특산물인 사과를 이용한 사과고추장이 유명하다. 충주사과고추장은 찹쌀을 불려서 엿기름에 삭힌 뒤 사과조청·고춧가루·메주가루·소금을 섞어 만드는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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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장계원의 영세불망비. 장계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시종원 시종, 충청남도 사검위원(忠淸南道査檢委員)을 역임하였고, 1901년 11월 23일 충청북도 봉세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계원은 1901년 흉년으로 인하여 농민들이 파종할 씨앗마저 없게 되자 관찰부를 통해 역둔토의 세조(稅租)를 균등히 나누어주어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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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와 율능리를 연결하는 고개. 미내리 장터(일명 장대, 또는 시장)은 미내리뿐만 아리라 엄정면의 소재지로서 옛날부터 3일과 8일에 개장되는 내창장으로 유명하였다. 율능리는 엄정면 최남단 지역인데 바마루(일명 율리)는 율능리의 으뜸 마을로서 국도 변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에 미내리와 율능리 주민들이 서로 시장을 앗아가려고 쟁탈전을 벌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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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만정리와 두정리 사이에 있는 터널.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경상남도 마산시 내서읍~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간의 길이 203.6㎞의 도로로서 이 노선은 2001년 5월 24일 지정되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앙성면 지당리~이류면 문주리 간은 길이 36,461m, 폭원 22.4m 등으로 이루어진 4차선 도로로서 이 노선은 2004년에 준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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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향토사학자. 장기덕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육계에 투신하였으며, 충주미덕중학교와 충주상업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생물 과목을 가르치면서 식물과 곤충채집을 하러 향리에 다니다가 지역의 전설과 문화 유적 등에 매력을 느끼고 향토사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문화재보호협회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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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장길(長吉), 호는 탄수(灘叟)·용탄자(龍灘子). 증조할아버지는 광성군 이극감(李克堪)이고,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를 지낸 이세좌(李世佐)이다. 아버지는 봉사를 지낸 이수원(李守元), 어머니는 사용(司勇)을 지낸 방의문(房毅文)의 딸 남양방씨이다. 1484년(성종 15) 충주에서 태어난 이연경(李延慶)은 1504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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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요도천 변에 넓은 들판이 있어 방죽안의 서방모랭이에서 보면 모래가 희게 보인다고 하여 흰모루라고 불렀다. 또한 들 가운데에 마을이 길게 이어졌다고 하여 장록개라고도 불렀다 한다. 본래 충주군 덕면(德面) 지역으로 장록개 또는 장록포(長彔浦)라고 하였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이 지역은 덕면(德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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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과 주덕읍, 이류면에 걸쳐 있는 평야. 주덕들이라는 명칭은 1914년 충주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덕면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났다. 그 전까지 이 지역은 통합된 명칭 없이 지역에 따라 버드내들, 장록개들, 계막들, 망청개들, 음버들 등으로 불렸다. 주덕들은 신니면 문락리 수레의산[678m]에서 발원하는 요도천이 주덕읍 지역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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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요도천 변에 넓은 들판이 있어 방죽안의 서방모랭이에서 보면 모래가 희게 보인다고 하여 흰모루라고 불렀다. 또한 들 가운데에 마을이 길게 이어졌다고 하여 장록개라고도 불렀다 한다. 본래 충주군 덕면(德面) 지역으로 장록개 또는 장록포(長彔浦)라고 하였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이 지역은 덕면(德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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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요도천 변에 넓은 들판이 있어 방죽안의 서방모랭이에서 보면 모래가 희게 보인다고 하여 흰모루라고 불렀다. 또한 들 가운데에 마을이 길게 이어졌다고 하여 장록개라고도 불렀다 한다. 본래 충주군 덕면(德面) 지역으로 장록개 또는 장록포(長彔浦)라고 하였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이 지역은 덕면(德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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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조선 말기에 지어진 사찰. 충주 장미산성의 동쪽 입구에 위치한 절로, 원래 봉루암(鳳樓菴)이라 부르다 현재는 봉학사라 불리고 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장미산(薔薇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학사는 1895년에 비구니 임광제가 봉루암을 창건한 이후 근대에 중창된 산사이다. 1921년에 임광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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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와 장천리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장미와 보련 남매가 성 쌓기 내기를 하였는데, 이때 남동생인 장미가 성을 쌓았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실제로 긴 꼬리처럼 남한강 가를 감싸는 산이라 하여 장미산(長尾山)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산 북쪽 기슭에 장미산동이라는 마을도 있다. 300m 약간 넘는 낮은 산이라 산성을 쌓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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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와 장천리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장미와 보련 남매가 성 쌓기 내기를 하였는데, 이때 남동생인 장미가 성을 쌓았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실제로 긴 꼬리처럼 남한강 가를 감싸는 산이라 하여 장미산(長尾山)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산 북쪽 기슭에 장미산동이라는 마을도 있다. 300m 약간 넘는 낮은 산이라 산성을 쌓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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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서 장미산에 있는 산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앙탑면 장천리 잣고개의 뒷산 1㎞ 지점에 ‘장미산’으로 불리는 산이 있으며, 이곳에 ‘장미산성’이 있다. 「장미산성 전설」은 아들 장미와 딸 보련이라는 남매 장수가 생사를 건 성 쌓기 내기를 하는 과정에서 축성한 성이라는 축성유래담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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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와 신만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의 형태가 마치 병풍처럼 웅장하게 생긴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해발고도 408.8m의 저산성 산지로서, 엄정면과 산척면의 경계를 이루는 남~북 방향 산줄기의 일부를 이룬다. 중생대 쥐라기 흑운모화강암이 해체되지 않고 남은 지대로서, 정상부 부근에는 병풍바위, 서쪽에는 붉은바위가 있는 등 고도는 낮지만 산세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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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장재동과 성종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장성리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1898년에 나온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보면 이안면은 9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하나가 성종이다. 1912년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 보면 이안면 19개 리에 성종리, 부연동, 장재리가 나온다. 이들 3개 마을이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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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먼학이골에 있는 고려시대 추정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 장성리에는 먼학이골을 비롯하여 성안들 야철지, 갈거리고개 야철지, 갈가실 야철지, 능골1 야철지, 능골2 야철지, 양장고개 야철지 등 쇠똥이 발견되는 야철 유적 추정지가 많다. 충주에서 주덕 방면으로 가는 국도 3호선을 따라가다가 효신산업을 지나면 왼쪽으로 성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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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장성리 부연마을에는 유학사(遊鶴寺)라 전하는 사찰의 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삼층석탑, 석조여래불상 등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곳이라 도난이 염려되어 1994년 중원민속자료전시관(현 충주박물관)으로 옮겨 야외 전시를 하고 있다. 유학사라는 이름은 절 터가 있는 산이 유학산 자락이었기 때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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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는 오래전부터 유학사지(遊鶴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지에는 한가운데 석탑이 붕괴된 채로 남아 있었는데, 이 석탑이 유학사지 삼층석탑이다. 또한 절 터에서는 불두(佛頭)가 절단된 석불좌상 1구를 비롯하여 다량의 자기편과 기와편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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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여래좌상. 장성리 석불좌상은 원래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마을의 유학사지(遊鶴寺址)에서 석탑 1기와 함께 전해 내려온 것으로, 현재 충주박물관 야외 전시실에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머리 부분만 결실되고 불신의 나머지 부분은 온전하다. 대의는 통견으로 옷주름이 왼쪽 가슴에서 오른쪽으로 평행곡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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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물류창고 부지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일대는 말 그대로 긴 토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지역이고, 인근에 야철 흔적이 확인되고 있어 주목되었던 지역이다. 이곳은 중부내륙고속국도 충주나들목 부근이라 아성기업에서 물류창고를 만들기로 계획하였다. 이에 2005년에 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를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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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장성리 부연마을에는 유학사(遊鶴寺)라 전하는 사찰의 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삼층석탑, 석조여래불상 등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곳이라 도난이 염려되어 1994년 중원민속자료전시관(현 충주박물관)으로 옮겨 야외 전시를 하고 있다. 유학사라는 이름은 절 터가 있는 산이 유학산 자락이었기 때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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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는 오래전부터 유학사지(遊鶴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지에는 한가운데 석탑이 붕괴된 채로 남아 있었는데, 이 석탑이 유학사지 삼층석탑이다. 또한 절 터에서는 불두(佛頭)가 절단된 석불좌상 1구를 비롯하여 다량의 자기편과 기와편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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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2리에 있는 장수황씨 집성촌. 가신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흥동(新興洞), 주동(注洞), 가정리(佳亭里), 안락일리(安樂一里), 문암리(文岩里) 각 일부를 병합하면서 가정리의 ‘가’와 신흥리의 ‘신’을 합쳐 가신리(佳新里)로 명명했다. 법정리인 가신리는 3개의 행정리(가신1리·가신2리·가신3리)로 구성되는데 이중 장수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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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고갯길, 사랑하는 이들이 가볍게 손잡고 하늘로 오르는 호젓한 오솔길, 청량한 바람이 언제든 머물고 있는 길,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문경읍 관음리로 가는 길, 가는 길머리에 서면 ‘오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하늘재’라는 표식을 무겁게 깔고 앉은 표지석이 있다. 그를 보노라면 언덕 위에 새초롬하게 올라 앉아 있는 삼층석탑이 보이고 잡목과 긴 풀이 자란 틈새로 부처님 머리가 뻐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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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충청북도 충주에서 5일마다 열리는 사설 시장. 고려시대에 주현 관아 부근에서 낮에만 열렸던 정기 시장은 조선시대에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생산의 지역적 불균형과 흉년과 같은 자연 재해의 영향으로 15세기 말부터 장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현했으며, 16세기 이래 급속히 확산되어 18세기 중엽에는 1,000개를 넘어섰다. 장문은 양적으로 확산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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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서는 유현(儒賢)을 받드는 한편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의 정신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사당을 건립하여 조상을 제사하였는데, 장암사당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한다. 본래 장암사당은 1695년(숙종 21)에 창건되어 1702년(숙종 28)에 사액받은 서원이었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에 의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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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순(仲淳), 호는 장암(丈巖). 고조부는 좌의정 송강 정철(鄭澈)이고, 증조부는 강릉부사 정종명(鄭宗溟)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정직(鄭溭), 아버지는 청안현감 정경연(鄭慶演), 어머니는 여흥민씨이다. 장암 정호는 병자호란을 피해 충주로 낙향한 정경연의 아들로 1648년(인조 26) 충주의 노은 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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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누암서원은 1695년(숙종 21) 지방 유림의 공의로 송시열, 민정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고, 1702년(숙종 28) 사액서원이 되었다. 1724년(경종 4)에는 소론의 공격으로 사액이 취소되었다가 1725년(영조 1) 회복되었다. 이듬해 권상하를 추향하였다. 1795년(정조 19)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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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서는 유현(儒賢)을 받드는 한편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의 정신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사당을 건립하여 조상을 제사하였는데, 장암사당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한다. 본래 장암사당은 1695년(숙종 21)에 창건되어 1702년(숙종 28)에 사액받은 서원이었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에 의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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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조선 말기에 지어진 사찰. 충주 장미산성의 동쪽 입구에 위치한 절로, 원래 봉루암(鳳樓菴)이라 부르다 현재는 봉학사라 불리고 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장미산(薔薇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학사는 1895년에 비구니 임광제가 봉루암을 창건한 이후 근대에 중창된 산사이다. 1921년에 임광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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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 사찰. 장왕사는 1983년에 창건되었는데, 절이 위치한 주덕읍의 북쪽은 노은면과 중앙탑면, 서쪽은 신니면, 동쪽은 대소원면, 남쪽은 음성군 소이면과 괴산군 불정면에 접한다. 북쪽 노은면과의 경계 지점은 우리재, 소고개, 질마루재 등이 솟아 있는 높은 산지를 이루고, 계곡에는 덕련리의 벌미못, 발자널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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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서 장자늪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중앙탑면 장천리 장미산 동에서 동남쪽 사이로 완만한 ㄱ자를 없어 놓은 것 같은 늪이 있는데 이것이 ‘장자늪’이다. 「장자늪」 이야기는 이곳에 살던 천석꾼의 집이었는데 시주 온 노승을 학대하여 집이 함몰되어 늪이 되었다고 하는 장자못 유형의 전설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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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미리, 형천리, 부도동 일부가 새로운 법정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때 큰 마을인 장미와 형천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장천리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 가흥면에서는 남한강쪽 상류에 있었기 때문에 상동이라 불렀다. 장천리 지역은 옛날부터 여름에 수해가 잦았기 때문에 물길이 남북으로 길게 뻗쳤고 그 때문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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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장천리 고분군은 남한강에 의해 형성된 장자늪 서쪽, 장미산성 북동쪽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다. 장미산성 북동 산록으로부터 옛 가금중학교 자리까지 이어져 있다. 장천리 고분군은 1998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을 뿐 정식으로 발굴 조사되지 않았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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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반공투사 여섯 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6·25전쟁 중 목숨을 바쳐 싸운 이선규(李善圭), 권중대(權重大), 홍선식(洪善植), 김용기(金容琪), 변용출(卞龍出), 박삼수(朴三壽) 등의 넋을 위로하고 이들의 반공 정신과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6월 25일 대한노인회 목계노인회 회장 우태원 등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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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선사시대 토기산포지. 중앙탑면 장천리는 남한강을 경계로 엄정면 목계리와 마주하고 있다. 남한강변에 발달한 늪지와 충적대지를 이용하여 대규모 무 단지를 이루어 단무지용 무를 생산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미산성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가흥쪽으로 2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장천리 형천마을로 가는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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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들 사이의 낮은 능선부. 한반도는 오랜 기간 동안 변성을 받거나 마그마의 관입으로 더욱 단단한 지각으로 구성된 안정 지괴에 속한다. 게다가 남동에서 북서로 미는 태평양판을 비롯하여 남쪽에서 밀려오는 필리핀판, 동쪽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온 동해 지각의 확장 등 다양한 방향의 횡압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왔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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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리 재앙골에 있는 고려시대 토기와 자기 산포지. 충주시 노은면과 주덕읍을 연결하는 지방도 599호선은 신효리 신대마을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주덕의 덕련리·장록리·제내리를 거쳐 주덕읍 소재지인 신양리까지 연결된다. 신대마을에서 한포천을 건너는 신효교를 지나면 바로 중부내륙고속국도가 지난다. 그 아래로 통과해야 주덕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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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에서 재오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 살미면 면소재지인 세성리·재오개리를 지나 충주시 목벌동로 향하는 약 4㎞ 지점에 재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로 인해 재오개리라는 마을이 생겼으며, 재오개는 상재오개와 하재오개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는데, 이는 당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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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재오개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초기 재오개 전설에서 유래한다. 재오개라는 한자말은 다섯 살짜리 왕자라는 뜻이다. 이 곳 재오개마을에 왕기를 타고난 아이가 있어, 다섯 살에 이미 문무에 걸쳐 신기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소문은 당시 조정에 알려졌고, 그 아이가 새로운 왕조를 세울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퍼졌다. 이에 조정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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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 하재오개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1967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구 밖 길옆에 서낭당이 있었다. 키 15m, 둘레 5.5m가량의 느티나무 둘레에 토석 제단을 마련하고 제사를 올렸는데,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어 충주호에 수몰되면서 폐지되었다. 현재는 하재오개 산기슭에 있는 서낭당만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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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 하재오개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1967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구 밖 길옆에 서낭당이 있었다. 키 15m, 둘레 5.5m가량의 느티나무 둘레에 토석 제단을 마련하고 제사를 올렸는데,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어 충주호에 수몰되면서 폐지되었다. 현재는 하재오개 산기슭에 있는 서낭당만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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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재오개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초기 재오개 전설에서 유래한다. 재오개라는 한자말은 다섯 살짜리 왕자라는 뜻이다. 이 곳 재오개마을에 왕기를 타고난 아이가 있어, 다섯 살에 이미 문무에 걸쳐 신기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소문은 당시 조정에 알려졌고, 그 아이가 새로운 왕조를 세울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퍼졌다. 이에 조정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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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인공 저수 시설. 통합 충주시 소재의 저수지는 한국농촌공사 충주·제천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저수지와 충주시청 농업정책국 농정과에서 관리하고 있는 저수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중 한국농촌공사 충주·제천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저수지는 18개이고, 충주시청 농업정책국 농정과에서 관리하고 있는 저수지는 56개로 충주시에는 총 74개의 저수지가 운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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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여(養汝). 모당 홍이상(洪履祥)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첨지중추부사 홍만최(洪萬最), 조부는 홍문관교리 홍중현(洪重鉉), 아버지는 홍인보(洪寅輔)이고, 어머니는 수원최씨이다. 홍차기(洪此奇)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 홍인보는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수원최씨는 홍차기가 열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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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적보산은 일명 직포산, 적포산(積抱山),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활만인지지(活萬人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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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서 수안보면 수회리에서 적보산에 있는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수안보면 수회리의 동남쪽에 높이 698m의 적보산이 있다. 지금 이곳에는 중앙경찰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이 산에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명당이 있다는 전설이 전승되고 있다. 2002년 충주시에서 발행한 『충주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1994년 이노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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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적보산은 일명 직포산, 적포산(積抱山),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활만인지지(活萬人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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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는 오래전부터 유학사지(遊鶴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지에는 한가운데 석탑이 붕괴된 채로 남아 있었는데, 이 석탑이 유학사지 삼층석탑이다. 또한 절 터에서는 불두(佛頭)가 절단된 석불좌상 1구를 비롯하여 다량의 자기편과 기와편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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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작가협회 충주지부에서 해마다 열고 있는 전국 사진 촬영대회. 2000년 10월 제30회 우륵문화제와 제3회 충주세계무술축제를 전국적으로 홍보하기 위하여 충주시의 후원을 받아 한국사진작가협회 충주지부 주최로 제1회 충주전국사진촬영대회가 개최되었다. 충주전국사진촬영대회는 우륵문화제와 충주세계무술축제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벌어지는 행사를 자유롭게 촬영하여 시상하는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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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작가협회 충주지부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전국 사진 공모전.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는 제1회 충주전국사진공모전이 개최되어 1,100여 점의 많은 작품이 응모하였다. 충주전국사진공모전은 매년 2월 말 접수를 시작하여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3월 수상자 발표를 하고 있다. 출품 자격은 전국에 거주하는 사진인이며, 작품 내용은 미풍양속에 저해되지 않는 국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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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 호암예술관에서 매년 9월 열리는 전국 규모 가야금 경연대회.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는 악성 우륵의 얼이 살아 숨 쉬는 탄금대의 고장 충주시에서 전국 제일의 규모로 펼쳐지는 가야금 대회이다. 가야금 연주의 보급과 발전을 위하여 기획되었으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에서 개최하는 우륵문화제와 함께 열리는 충주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로서 전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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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8월 충청북도 충주시에 설립되었던 전국학생총연맹 충북도연맹 충주지부. 1946년 7월 31일 반탁·반공 학생운동을 목적으로 반탁전국학생연맹(일명 반탁학련)·경성대학동지회·독립학생전선·서북학생원호회·유학생동맹 등의 단체가 통합하여 전국학생총연맹이 결성되었다. 이어, 동년 8월 초 청주에서 충북도연맹이 결성됨에 따라 충주 지역에도 충주지구연맹이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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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8월 충청북도 충주시에 설립되었던 전국학생총연맹 충북도연맹 충주지부. 1946년 7월 31일 반탁·반공 학생운동을 목적으로 반탁전국학생연맹(일명 반탁학련)·경성대학동지회·독립학생전선·서북학생원호회·유학생동맹 등의 단체가 통합하여 전국학생총연맹이 결성되었다. 이어, 동년 8월 초 청주에서 충북도연맹이 결성됨에 따라 충주 지역에도 충주지구연맹이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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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에 있는 전국한우협회 산하 충주 지부. 한우 산업의 발전과 회원의 공동 이익 및 권익을 도모하며, 국가의 축산 진흥 시책과 국민 경제 향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창립되었다. 1999년 9월 전국한우협회 창립총회를 갖고 출범하였으며, 2001년 9월 제1회 한우인의 날 행사를 개최한 이래 매년 한우인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전국한우협회는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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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20주년이 지난 1965년에 제내리가 농기업 선도 시범 마을에 선정되어 1차연도 사업으로 전기가설이 책정되었다. 전기는 마을 사람들의 꿈이요 희망이었다. 외부의 가설비는 정부 보조였으며, 내선공사비는 자부담으로 하되 200등 이상이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풍덕 구장 이복영이 일본 농업을 견학 중이었으므로 구장을 대신한 이세영이 풍덕에서는 그 숫자를 채울 수 없었으므로 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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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무신. 본관은 천안(天安). 초명은 전이(全隬). 전신(全信)의 현손이다. 사위는 박팽년(朴彭年)이다. 전념은 태종 때 대호군(大護軍)으로 있다가 지방관으로 나갔다. 세종 때 용기위상장군(龍驥衛上將軍)·곡산부사(谷山府使) 등을 역임했다. 사위인 박팽년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멸족되자 난을 피하여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대곡리로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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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주군수를 역임했던 행정가. 전석영(全錫永)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 중추원 부문에 명기되어 있다.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난 전석영(全錫永)은 1921년 중추원이 개편되어 각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때 중추원참의에 임명되었다. 이후 괴산군수와 영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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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할아버지는 판공주목사(判公州牧使) 이구직(李丘直)이며, 아버지는 중추원사 이정간(李貞幹)이며, 어머니는 순평군(順平君) 문달한(文達漢)의 딸로서 정경부인(貞敬夫人)이다. 이사관은 처음에 중랑장에 보임되었다가 여러 자리를 거쳐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1405년(태종 5) 대사헌의 잘못을 나무란 까닭에 좌천되었으나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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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충주 지역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민속놀이는 옛날부터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여러 가지 놀이로서, 향토색을 지니며 전통적으로 해마다 행하여 오는 놀이를 말한다.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어서 전승놀이라고도 하며, 여기에는 유희(遊戱)·오락·경기·예능 등이 모두 포함된다. 민중의 멋과 흥과 해학과 신명을 담고 있으며, 민족의 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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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겸(子謙)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되었다. 영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있다가 통정대부거창도호부사 겸 진주진영병마첨절제사를 지내고 수안(遂安)·제주부(濟州府)에도 있었다. 어버이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하니 효험이 있었다. 또한 어버이가 한겨울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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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교육자. 전완근은 아버지 전시명과 어머니 김경순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살미국민학교 훈도를 시작으로 교직에 발을 내딛었다. 약 40년간 교단과 교육 관련 업무에 종사하면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학력 신장과 깨끗하고 아름다운 학교 환경 조성에 힘썼다. 부임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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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신효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의이씨의 시조 이도(李棹)의 본래 이름은 이치(李齒)다. 이도는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범람하는 금강을 건너려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왕건으로부터 도(棹)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다. 또한 삼한개국공신에 오르고 전의후에 봉해지면서 전의(현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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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무신. 본관은 천안(天安). 초명은 전이(全隬). 전신(全信)의 현손이다. 사위는 박팽년(朴彭年)이다. 전념은 태종 때 대호군(大護軍)으로 있다가 지방관으로 나갔다. 세종 때 용기위상장군(龍驥衛上將軍)·곡산부사(谷山府使) 등을 역임했다. 사위인 박팽년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멸족되자 난을 피하여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대곡리로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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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습을 시조로 하고 유영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 세거 성씨. 전주유씨는 유습(柳濕)을 시조로 한다. 유습(柳濕)이 고려 말에 완산백에 추봉되면서 후손들이 유습(柳濕)을 시조로 하여 전주(옛 이름은 완산)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전주유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9명, 재상 1명, 공신 2명, 대제학 4명, 청백리 10명을 배출했다. 충주에 입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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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하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전주이씨 사효열각은 전주이씨 문중 인물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명정(命旌)되어 건립된 것으로, 이유양(李有養)의 처 풍산홍씨(豊山洪氏)와 장남 이적(李績), 5남 이서(李緖), 그리고 이적의 처 파평윤씨(坡平尹氏)의 효행을 기리고자 합설하여 세워졌다. 전주이씨인 이적과 이서는 이유양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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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법동리에 있는 전주이씨 경녕군파 집성촌. 법동리(法洞里)는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의 8개 법정리 중 하나로 법동이란 이름은 옛날 사찰 법당이 있어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경녕군 묘가 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응동에 있다. 전주이씨 법동리 집성촌은 경녕군의 7세손 이성(李成)이 임진왜란 전후 위토(성묘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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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하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전주이씨 사효열각은 전주이씨 문중 인물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명정(命旌)되어 건립된 것으로, 이유양(李有養)의 처 풍산홍씨(豊山洪氏)와 장남 이적(李績), 5남 이서(李緖), 그리고 이적의 처 파평윤씨(坡平尹氏)의 효행을 기리고자 합설하여 세워졌다. 전주이씨인 이적과 이서는 이유양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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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하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전주이씨 사효열각은 전주이씨 문중 인물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명정(命旌)되어 건립된 것으로, 이유양(李有養)의 처 풍산홍씨(豊山洪氏)와 장남 이적(李績), 5남 이서(李緖), 그리고 이적의 처 파평윤씨(坡平尹氏)의 효행을 기리고자 합설하여 세워졌다. 전주이씨인 이적과 이서는 이유양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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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수견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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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전주이씨 한남군파 집성촌. 용관동은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으로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용두원과 관산의 첫 글자를 따서 용관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한남군파의 파조인 한남군(漢南君)[?~1459]은 세종의 12남으로 어머니는 혜빈 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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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희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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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에 있는 전주이씨 진안대군파 집성촌. 제내리(堤內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한 법정리이다. 이전에 방죽이 있었으므로 방죽안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제내리다. 제내리는 풍덕·성동·대촌 3개의 행정동(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이씨 제내리 집성촌은 1590년대 중반 조선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의 9세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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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건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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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호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0여 파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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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호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0여 파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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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맹동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초계정씨 정수동 처 전주이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03년(순조 3) 명정(命旌)되어 건립한 건물이다. 전주이씨는 어느 날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의심하여 시아버지를 집 뒤 서당에 은거케 하였는데, 시아버지에게 병이 발병하자 새벽 일찍 약을 달여 남편과 같이 간호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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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맹동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초계정씨 정수동 처 전주이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03년(순조 3) 명정(命旌)되어 건립한 건물이다. 전주이씨는 어느 날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의심하여 시아버지를 집 뒤 서당에 은거케 하였는데, 시아버지에게 병이 발병하자 새벽 일찍 약을 달여 남편과 같이 간호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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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능말마을 입구에 있는 김성배 처 전주이씨의 효열비. 김성배 처 전주이씨는 1897년(고종 34) 괴산에서 전주군수 이삼응(李參應)의 4녀로 태어나 14세 때 김성배와 결혼하여 시부모를 모시고 9년간 딸 셋을 낳고 살았다. 그러다 남편이 병에 걸리자 3년간 정성껏 간호를 하였고, 시아버지 상을 당하자 제사를 정성껏 치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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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전통 가옥.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는 전통 가옥이 별로 남아있지 않으나 대소원면 문주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문주리의 주거 형식은 민가 형식으로 목조를 근간으로 한 가구 구조를 보이고 있다. 평면은 일반적으로 一자, ㄱ자, 튼ㅁ자 형이 주가 되어 다양한 결합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공간 특성으로 보면 건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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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결혼 예식. 전통 혼례는 크게 의혼(議婚), 대례(大禮), 후례(後禮)의 세 가지 절차로 진행된다. 의혼은 양가가 중매인을 통해 서로의 의사를 조절할 때부터 대례를 거행하기 이전까지를 말한다. 대례는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행하는 모든 의례를 말하는데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를 포함한다. 후례는 대례가 끝난 뒤 신부가 신랑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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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내리에는 마을에 다음과 같은 풍덕전거(豊德奠居)가 전해지고 있다. 마을 개척자인 이덕량이 방죽안을 개척하여 성동·대촌·풍덕의 세 마을에 터를 닦아 세 아들에게 각기 나누어 장남은 성동에, 차남은 대촌에, 그리고 막내는 자신이 자리 잡은 풍덕에 살게 하였다. 그런데 이덕량은 막내를 제일 귀여워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터를 잡아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풍수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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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석포마을에 있는 전희철의 공적을 기리는 비. 전희철(全熙喆)은 천안전씨(天安全氏) 곡산공파(谷山公派) 문중의 일에 열과 성을 다하여 족보 발간, 사당 건축, 신도비 건립 등의 공적이 있고 산수국민학교를 세울 당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열의를 보였다. 또한 성품이 온화하고 양순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검소하므로 천안전씨 곡산공파 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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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고유의 명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 한반도의 중심지인 충주 지역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농업이 중심이 되었던 연유로 과거부터 계절마다 세시풍속이 있었다. 이때가 되면 계절에 따른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가족과 이웃 간에 골고루 나누어 먹었다. 이는 지루한 생활의 반복을 활력화하고 적당한 행사와 음식으로 변화를 추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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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 「절우자」는 충주 지방에서 봄철에 농군들이 모판에서 모내기 할 논으로 모를 옮겨가기 위하여 모를 찌면서 부르는 노동요인데, 「모내기 소리」, 「모찌기 노래」라고도 부른다. 이 소리를 「절우자」라고 함은 후렴구에 “절우자 절우자”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절우자라는 말은 모를 찐다는 뜻이다. 고정옥은 절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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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백탄(栢灘). 아버지는 한산군(漢山君) 조인옥(趙仁沃)이다. 아들은 조효생(趙孝生)·조순생(趙順生)·조관생(趙觀生)·조덕생(趙德生)이며 딸은 의장궁주로 세종의 후궁이다. 조뢰는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직위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는 순금사대호군이 되었다. 1418년 수원부사를 거쳐 순성진첨절제사(蓴城鎭僉節制使)로 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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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홍수(洪脩)이고,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홍이상(洪履祥)이다. 아버지는 사헌부장령을 지낸 홍곽(洪㰌),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친아버지는 홍탁이다. 1646년(인조 24) 생원이 되고, 1653년(효종 4) 알성시 문과 을과 1위로 급제하였다. 1655년(효종 6) 사간원정언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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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정경순은 조선 후기 영조 대부터 정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문장과 덕망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기개를 지닌 선비였다고 전한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시회(時晦), 호는 수정옹(修井翁).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유생 정석경(鄭錫慶)이다. 형은 정원순(鄭元淳), 동생은 정지순(鄭持淳)이다. 정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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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여(善餘). 증조할아버지는 송강 정철(鄭澈), 할아버지는 강릉부사를 지낸 정명(鄭溟),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정직(鄭溭), 어머니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박준(朴峻)의 딸 비안박씨이다. 슬하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정주(鄭澍), 통덕랑에 오른 정린(鄭潾), 상의원정을 지낸 정필(鄭泌), 정섭(鄭涉), 영의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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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상보(相寶). 설곡(雪谷) 정보(鄭保)의 후손이다. 조선 정조(正祖) 때에 사마시(司馬)에 합격하고 용인에 있다가 충주(忠州)에 와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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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옥(群玉). 세종의 12남이자 네 번째 서자로, 어머니는 혜빈 양씨이다. 부인은 예빈녹사 권격(權格)의 딸로,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흥안군(興安君) 이중생(李衆生)이며 손자는 호천군(湖川君) 이옥근(李玉根)과 이인도정(利仁都正) 이숙근(李叔根)이다. 성품이 순수하며 효심과 우애심이 깊고 처신이 단정하고 무거운데다 검약하고 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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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사록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 봉화호장을 지낸 정공미(鄭公美)의 4세손으로 검교밀직제학을 지낸 아버지 정운경(鄭云敬)과 어머니 단양우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정도전(鄭道傳)은 1337년(충숙왕 복위6) 단양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남한강의 도담삼봉을 좋아해 정자를 짓고 즐겨 찾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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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효자·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건축물. 정문이란 정려(旌閭)라고도 하며,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여 그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운 건축물을 말한다. 대개 붉은 살을 두른 사방 한 칸 형식이나 문중 정려를 한 곳에 모아 여러 칸으로 만들거나 가옥의 출입구에 현판을 단 경우도 있다.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건립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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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무기(無己),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 김변(金賆)이며, 장인은 허공(許珙)이다. 1290년(충렬왕 16)에 원의 반적(叛賊) 합단(哈丹)이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침범하자 김륜의 가족들도 강화로 피난하였는데, 이때 김륜의 장인 허공(許珙)이 재상의 직무로 인해 함께 가지 못하게 되자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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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신부. 정로베르토는 1928년 10월 19일 메사추세츠주 노스아담스에서 출생하여 1960년 6월 사제서품 후 바로 한국에 왔다. 1961년 청주교구 충주성당 보좌신부를 역임하였으며, 1962년 청주교구 수안보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아 아버지가 물려준 전 재산을 수안보성당 건축에 희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본당, 사제관, 수녀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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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탁 씨, 그는 배움에 대한 미련은 별로 없어 보인다. 6·25 후 수안보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석 달을 다녔지만, 너무 거리가 멀어 다니다 말았다고 한다. 하기야 산길 왕복 60리 길을 다닌다는 것은 사실 어린아이에게 무리였을 것이다. 그 뒤에 미륵사지의 집 한 채에서 가마니 깔고 글 아는 동네 사람이 가르쳐 주었고 다시 수안보초등학교 김창진 선생님이 ‘정식으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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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효자·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건축물. 정문이란 정려(旌閭)라고도 하며,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여 그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운 건축물을 말한다. 대개 붉은 살을 두른 사방 한 칸 형식이나 문중 정려를 한 곳에 모아 여러 칸으로 만들거나 가옥의 출입구에 현판을 단 경우도 있다.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건립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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