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사고는 1390년(공양왕 2)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592년까지 약 200년 동안 고려의 중요 전적과 조선 전기의 역대 실록 그리고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의 하나였다. 그러나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여 충주시가지가 불탈 때 시가지 내에 있던 충주사고와 그에 보관된 서책들도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역사를 기록하여...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성문화연구회가 고문헌에 수록된 충주 관련 기사를 모아 발간한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문헌에 충주 관련 기사가 기록되어 있으나 사료를 쉽게 구할 수 없고 구한다 해도 찾아보기 불편한 점이 있다. 이에 충주시민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충주 관련...
995년(성종 14)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는 전국을 통일된 국가체제로 다잡기 위하여 지방 행정구역에 대한 일대 개편을 단행하지만 중앙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목민관을 파견하지는 못하였다. 이 후 983년(성종 2) 12목이 설치되어 목사가 파견된 데 이어, 995년 7월에 중앙정부에 의한 실질적인 지방통치를 시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고려...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에 있는 고려시대 원당터. 충주 숭선사는 고려 광종(光宗)의 어머니인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聖王太后) 유씨(劉氏)의 원당(願堂)으로, 본래 사지에는 당간지주만 남아 있고 주변은 경작지화 되어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이후 충주 숭선사지에서 많은 양의 기와가 출토되고, 그중 ‘숭선(崇善)’명의 기와가 출토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숭...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란 산의 배치와 물의 흐름, 지형과 방위, 하늘과 땅의 기운 등을 고려하여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되었다. 충주 지역의 풍수지리는 삼국시대부터 언급되고 있으나 자연과 사람을 연결시켜 비교적 자세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