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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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예몽·김기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광산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신문왕의 셋째 아들로 장차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견하고 무진주 서일동(현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무진주가 광산으로 개칭되면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 삼중대광에 오른 김길(金佶)로부터 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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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회백(晦伯). 증조부는 영의정 김철산(金鐵山)이고, 할아버지는 좌참찬 김겸광(金謙光)이다. 아버지는 좌참찬을 지낸 김극복(金克福)이며, 처부는 홍경주(洪景舟)이다. 1519년(중종 14) 현량과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의 부정자를 지냈으며 1524년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였다. 1525년 형조좌랑·예조참의·도승지·경기도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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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시숙(始叔), 호는 천관(川觀). 광산부원군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김성(金聲)은 김장생(金長生)의 아들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명나라가 망하자 존양대의(尊攘大義)를 지켜 벼슬에 뜻을 버리고 충주에 은거하여 학문에 힘썼으며, 일명 황명처사라 불렸다. 저서로 『유고(遺稿)』가 전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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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성지(成之). 증조부는 김화(金華), 할아버지는 김소(金遡)이다. 친아버지는 문경공 김예몽(金禮夢)으로, 후사가 없는 참의공 김의몽(金義夢)의 양자로 들어갔다. 형은 김덕원(金德源)이다. 정계소(鄭繼紹)의 딸 증정부인 서산정씨 사이에서 김철문(金綴文), 김말문(金末文), 김내문(金乃文) 등 8남을 두었다. 아들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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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광산김씨 충주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보(敬甫), 시호는 문경(文敬). 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낸 김소(金遡)이다. 부인 창평조씨 사이에 성균관사예를 지낸 아들 김성원이 있다. 1429년(세종 11)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정자가 되었다. 저작랑, 예문관감찰을 거쳐 1440년(세종 22) 통신사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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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의 면장 김희현의 청백비. 대한제국 시기에 면장을 역임한 김희현은 본관이 광산이며, 지방의 중소 지주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복성면장직을 맡은 김희현은 청렴하게 면장직을 수행함은 물론 곤경에 처한 면민이 있으면 자선을 베풀어 말년에는 재산을 거의 탕진하였다고 전한다. 때문에 김희현의 자손은 나무 장사를 하면서 생활을 해야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