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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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법정동인 교현동은 1985년 행정동인 교현1동과 교현2동으로 분리되었다. 교현1동은 1998년 9월 30일 안림동과 통합된 행정동인 교현안림동에 속하게 되었고, 교현2동은 행정동으로 지속되고 있다. 교동(校洞)과 야현(冶峴)의 지명을 따서 동명을 교현동이라고 하였다. 본래 충주군 북변면에 속했다가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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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 야현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교현동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교동, 야현리, 대가미리, 봉계리, 어림리 등의 여러 마을이 합해져서 교현동이 된 곳이다. 야현(冶峴)은 현 교현동성당이 위치한 주봉(珠峰) 아래에 있던 고개 마을로 옛날 대장간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야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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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읍리(邑吏)를 역임한 인물. 본관은 충주(忠州). 증조할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석광필(石光弼)이며, 아들 석지강(石至剛)은 사마시에 합격했다. 임진왜란 때 석감의 조카 석천수(石天壽)가 피난하여 왔는데, 어느 날 보리를 벤 후 밤에 교동(校洞)에 들어가니 왜적의 방화로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석감은 조카인 석천수와 함께 화염을 무릅쓰고 향교에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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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읍리(邑吏). 본관은 충주(忠州). 도사(都事) 석광필(石光弼)의 고손이다. 작은아버지는 석감(石鑑)이며, 아들은 석응선(石應璿)으로 사마시에 합격했다. 석천수는 예조(禮曹) 및 병조(兵曹)의 수교(受敎)를 수록한 『호성공사실(護聖公事實)』중의「호성사고유문(護聖祠告由文)」에 따르면 임진왜란으로 피난해 있던 어느 날 밤 교동(校洞)에 들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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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안림동은 안심리(安心里)·범의동(凡衣洞)·어림리(御林里)·교동(校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생겨난 마을로 그 이름도 안심리와 어림리의 지명을 따서 안림동이라 했다. 안심리는 안림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로 예부터 피난지로 안전한 곳이라 하여 안심이라 불리었다. 어림리는 백제 문주왕이 가행궁을 짓고 있던 솔밭이란 뜻으로 지은 마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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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 있는 자연마을. 옛날에 참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었는데, 여우가 많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여우골로 불리던 곳이다. 여수월의 여수는 여우의 방언형이며, 월은 지명에서 곡(谷)의 뜻으로 쓰이는 울의 다른 형태이다. 여수월이 속해 있는 마을인 교현동은 본래 충주군 북변면(北邊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야현리(冶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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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9년(중종 34) 원주 사람 유석이 아버지를 죽이려 한 사건 때문에 충주목이 예성부로 강등된 사건. 『중종실록(中宗實錄)』 중종 35년 7월 6일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천하의 죄악 치고 자기 아버지를 죽인 것보다 더 큰 죄악이 없기 때문에 그 처형도 가장 극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전에 밀양의 박군효와 수원의 노범근도 자기 아버지를 죽인 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