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북문 안에 두었던 진휼미 보관 창고. 충주를 독진(獨鎭)으로 삼으려고 그 창고를 충주 양진 동편에 새롭게 만들고 양진창이라고 하였다. 1669년(현종 10) 가흥에 의창(義倉)을 설치하고 충주의 환곡(還糓) 수천 석을 비축해두었다. 이후 1683년(숙종 9) 충주의 치소에서 6~7리 떨어져 있는 양진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1686년(숙종 12)...
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문숙(文叔),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이여연(李汝淵)이다. 이국헌은 1660년(현종 1) 증광시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81년(숙종 7) 금산군수로 재직하며 선치(善治)하여 포상을 받았으며, 1691년(숙종 17) 충주목사로 있으면서 주치(州治)에서 6~7리 떨어져 있는 의창(義倉)인 양진창...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남한강 가에 있던 나루. 한강의 수운은 강원도 영월에서 서울의 용산이나 마포까지이며 그 중심에 충주가 있다. 충주에는 고려시대 때 덕흥창, 조선시대 때 가흥창이 있어 한강의 물길을 이용하여 세금으로 받은 곡식 등의 물품을 수송하였고,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사선(私船)에 의한 경강상인들이 한강을 오르내리며 장사를 하였다. 이때 경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