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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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구조물. 건축 문화는 시대 조건의 반영으로 그 시대에 지역적 특성을 지닌 건축적 총체를 의미한다. 충주의 건축 문화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반도의 중원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을 지닌 건축적인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충주 지역이 중원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중원 지역은 제천·단양·청주·보은·진천·원주·영월·여주·안성·영주에 이르는 넓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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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집을 사당(祠堂)이라고 하는데, 사당이라는 말을 대신하여 사우(祠宇)·사(祠)·사묘(祠廟) 등으로도 사용한다. 드물게 각(閣)이라 하여 새로 지으며 격을 높여보려 한 예도 있고, 신주 대신 영정을 모시고 있는 경우는 특별히 영당(影堂)이라고도 하였다. 민간의 사당을 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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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종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인물의 무덤 남동쪽 큰길가에 세운 석비. 신도비(神道碑)는 왕 또는 고관의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을 말한다. 신도(神道)라는 말은 사자(死者)의 묘로(墓路) 즉 신령(神靈)의 길을 의미한다. 신도비는 중국 한대(漢代)부터 종2품(從二品) 이상의 관직에 있었던 이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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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충주최씨 시조. 본관은 충주(忠州). 초명은 최우(崔偶). 충주최씨의 시조이다. 최승(崔陞)은 당나라 출신이다. 846년 당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도적이 들끓자 병마사에 임명되어 도적을 토벌하였다. 이후 당나라에서 검교태부, 시중청주자사, 평노군절도관찰사, 압신라발해양번등사를 역임했고, 태자소사박능군개국후에 봉해져 식읍 천호(千戶)를 받았다. 889년(진성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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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충주최씨 6세손으로 아버지는 보문각직제학을 지낸 최원유, 어머니는 우왕의 장인 철성부원군 이림(李琳)의 딸이다. 최염(崔濂)은 고려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올랐다. 1389년(공양왕 1) 판밀직부사 재직 중에 창왕이 폐위되고 공양왕이 즉위하면서 이림과의 관계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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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충주 영모사 경내에 있는 최주환의 공적을 기린 기념비. 학사(鶴史) 최주환(崔周煥)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단편적으로 보이는 기록에 의하여 짐작할 수밖에 없다. 1907년 4월 애국계몽단체인 서우학회지에 신입 회원으로 가입을 한 기록이 보인다. 1908년 일본 도쿄에서 조직한 『대한학회 월보』 제3호에는 최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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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당. 사우(祠宇)는 선현(先賢)과 충신(忠臣), 조상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의 하나로, 대개 지방의 유림이나 지방관, 배향자의 후손 및 제자 등에 의해 세워졌으며, 사액을 청하는 소(疏)인 청액소(請額疏)를 올려 사액을 받기도 하였다. 충주 영모사는 일제강점기 때 세워져 사액을 받지는 않았다. 충주최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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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최씨는 최승(崔陞)을 시조로 한다. 그러나 최승 이후 계보를 알 수 없어 고려 충선왕 때 판도판서·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최공의(崔公義)를 중시조 겸 1세조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주최씨는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여 문하시중을 지낸 최옥(崔沃)을 비롯하여 문하시랑을 지낸 최백청(崔伯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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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충주최씨 사적을 정리한 비. 충주최씨의 종회 도유사 최주환(崔周煥)과 종회장인 최면승(崔勉承)이 행한 사적을 정리하고 성금을 찬조한 명단을 부기하였다. 1차 추원기적비에는 1980년까지 성금 낸 명단을 음기하였고, 2차 추원기적비에는 1983년 10월까지 성금을 협찬한 명단을 음기하여 2기의 충주최씨 추원기적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