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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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지형지물의 위로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인공 구조물. 2007년 5월 31일 현재 충주시의 교량은 총 321개소이고, 교량의 총연장은 28,676.5m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상의 교량은 총 60개소이고, 교량의 총연장은 12,451m로 충주시 전체 교량의 43.4%에 해당한다. 국도상의 교량은 국도 3호선에 55개소 연장 5,036.3m, 국도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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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과 용두동을 연결하는 달천 위에 있는 다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송림리·이부동·달신리·단신리의 각 일부가 병합되어 달천리가 되면서 달천교가 되었다. 길이는 상행선은 276.0m·하행선은 276.2m, 폭은 10.5m, 유효 폭은 8m(상)·8.5m(하), 높이는 10m(상)·11.3m(하)이다. 경간 수는 상행선·하행선이 9개이고, 최대 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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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달천동은 시내 지역에 있으면서도 면적이 넓은 편이며, 도시와 농촌 지역이 혼재되어 있다.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을 끼고 있는 지역이어서 달천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남변면 8개 리 중에 달천리가 있는데 현재의 법정동인 달천동 지역이다. 1898년에 나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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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693년(숙종 19) 충주목사겸충주진관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같은 해 전임 충주목사 이국헌(李國憲)이 갑자기 죽음을 당하자,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訴狀)을 올려서 의심스러운 여섯 사람을 가두었다. 그런데 이국헌의 후임으로 온 충주목사 엄찬까지도 꾸짖고 욕보이자, 엄찬이 이국헌의 아들을 곤장으로 때리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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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용관동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용두원과 관산의 첫 글자를 따서 용관동이라 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본 마을이라고 해서 용관동이라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용관동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여지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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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충주는 일찍이 백제의 영역에 속하였다. 그후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짧게는 장수왕 대[475] 이후부터 진흥왕이 북진할 때[550]까지 60~70여 년, 길게는 광개토왕이 신라를 원조할 때(400) 부터 150년간 고구려의 영향 하에 있었다. 6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신라의 영향 하에 놓였다. 충주시에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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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족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문경공 이채 부부 합장묘. 이채(李采)[1745~1820]의 본관은 우봉(牛峰)으로, 자는 계량(季良), 호는 화천(華泉),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744년(영조 20)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휘령전(徽寧殿) 참봉, 사헌부, 호조, 형조의 관직을 거쳐 돈령부주부를 지냈다. 음죽현감(陰竹縣監) 재직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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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전주이씨 한남군파 집성촌. 용관동은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으로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용두원과 관산의 첫 글자를 따서 용관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한남군파의 파조인 한남군(漢南君)[?~1459]은 세종의 12남으로 어머니는 혜빈 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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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탄용리 숯골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충주시 대소원면 탄용리 숯골은 충주에서 달천교를 건너 달천초등학교 전에서 지방도 525호선으로 좌회전해서 산정·벌미·두정리를 지나, 서낭고개와 궁골고개를 넘어 내려가다가 우회전을 하면 나오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매년 정월 14일 오후 2시 경에 서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