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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나철산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461
한자 谷那鐵山
영어의미역 Gongna Iron Work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이창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관련문헌 『일본서기(日本書紀)』

[정의]

백제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철산지.

[개설]

곡나철산은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하는 백제의 철산지이다. 곡나철산이 언급되는 부분의 신빙성이나 성격 등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을 가지고 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지명 고증에 대한 연구들이 이미 진행되었다. 일본 측 사료에 등장하는 만큼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먼저 연구가 진행되었고, 이후 한국 학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위치비정을 시도하였다.

[위치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곡나의 위치에 대한 비정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먼저 연구되기 시작하였는데, 이후의 연구에서도 초기 비정한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먼저 곡나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비정된 견해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전라남도의 곡성(谷城) 지역, 다른 하나는 황해도 곡산(谷山) 지역이다.

전라남도 곡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는 발음의 유사성 강조가 주된 논거이다. 이에 비해 사료에서 나타나는 서쪽의 큰 강과 7일의 거리가 주요 근거가 되어, 큰 강을 임진강이나 예성강으로 보고, 그 상류에서 곡나와 발음이 비슷하면서 주변에 평산·신계 등 철산지가 확인되는 황해도 곡산을 곡나철산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한편 충청북도 충주를 곡나로 비정한 견해도 있었다. 이 견해는 강을 따라 7일 동안 가야 하는 거리를 고려하여 한강 상류인 충주로 본 것이다. 충주는 고려시대에 다인철소(多仁鐵所)가 설치되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토산물의 첫 번째로 철을 들고 있을 만큼 철산지로 주목되는 곳이기도 하다. 반면에 백제의 서쪽 강과는 방향이 다르다는 점에 논거의 약점이 있다.

[관련기록]

곡나철산은 『일본서기』의 신공황후(神功皇后) 섭정 때의 기사에 나타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공황후 섭정 52년(252) 가을 9월 병자(丙子)일, 구저(久氐) 등이 천웅장언(千熊長彦)을 따라와서 칠지도(七枝刀) 1개, 칠자경(七子鏡) 1개, 각종 중요한 보물을 바쳤다.

그리고 (백제왕이) 아뢰기를 ‘신의 나라 서쪽에 강이 있는데, (강의) 근원은 곡나철산(谷那鐵山)으로부터 나옵니다. 멀어서 7일을 가도 미치지 못합니다.’ 하였다.

기사에 등장하는 칠지도는 그 유물이 지금도 일본 나라현의 이소노카미신궁에 남아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달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록 자체는 많은 논란이 있다. 연대도 맞지 않고,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가 발굴 성과나 다른 사료적 정황과 비교하여 당시 국제관계의 역학구도와도 맞지 않는다.

이미 일본학계에서는 『일본서기』의 초기 기록을 2갑자(甲子), 즉 120년을 내려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통설화되어 있고, 이 기사의 내용 중 등장하는 신의 나라[臣國], 성조(聖朝), 조공(朝貢) 등의 용어는 『일본서기』가 편찬되었던 시기의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 기록에서 백제왕이 아뢰었다는 내용은 모두 조작된 것으로 보고 믿지 않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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