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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중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092
한자 洪重夏
영어음역 Hong Jungha
이칭/별칭 천서(天敍),두담(杜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성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58년연표보기
몰년 1716년연표보기
본관 풍산
대표관직 형조참판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천서(天敍), 호는 두담(杜潭). 할아버지는 예산현감을 역임한 홍주문(洪柱文)이며, 아버지는 참판 홍만종(洪萬鍾)이다.

[활동사항]

홍중하는 1679년(숙종 5) 생원시에 합격하고 1686년 춘당대시(春塘臺試)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88년 검열이 되고, 1691년 정언·지평, 1693년 부수찬·부교리·헌납 등을 지냈다. 이듬해 교리로 접위관(接慰官)이 되어 일본 사신이 자기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죽도(竹島)가 우리나라의 울릉도임을 밝혀 일본인의 울릉도 내왕을 엄금할 것을 상소하였다. 1697년 보덕·필선, 1704년 사간·보덕·집의·승지 등을 거쳐 1706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1709년 다시 승지를 지내다가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며 태안방어사(泰安防禦使)를 혁파하고, 안흥진(安興鎭)을 승격시켜 방어사로 하고 항금진(杭金鎭)을 평신(平薪)으로 옮기어 호칭을 평신첨사(平薪僉使)로 고쳤다. 1711년 형조참의가 된 후 정시(庭試)의 고관(考官)이 되었다가 과거시험의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교체되었다. 1715년 다시 승지가 되었으며 1716년(숙종 42)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갔다가 임지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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