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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2236
한자 天主敎
영어의미역 Roman Catholicism
이칭/별칭 가톨릭교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집필자 박동근

[정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그리스도 교파의 하나.

[전래와 순교]

충주 지역에는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전래되었다. 1784~1785년 경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 선조들인 이벽·정약전·정약용·이승훈·권철선 등과 함께 영세는 받지 않았지만 이가환 등이 교리를 토론하였다. 이가환이 공조판서를 거쳐 충주 목사 재직하고 있을 때 천주교 신자 사건이 있었으며, 그 후 이가환은 신유년(1801) 박해 때 순교하였다.

충주목이 관할하고 있는 군은 셋으로 청풍군·단양군·괴산군이며, 현은 넷으로 영춘현·제천현·음성현·연풍현이었다. 충주 주변에서 체포된 천주교 신자는 충주로 이송되었기 때문에 신유년 박해 때부터 충주에서는 순교자가 나타났다. 신유년 박해·기해년 박해를 겪은 후 교리를 가르치던 성직자와 회장들은 모두 순교하였고, 살아남은 신자들은 가까스로 산골에 숨어 있거나 외교인들 속에서 신앙생활을 등한시 하면서 실의에 빠졌다.

이때 한국 제2대 사제 최양업 토마 신부가 진천 배티에 부임하여 경기도·충청도·경상도·강원도·황해도 일대를 다니며 전교하였다. 충주의 천주교 신자들도 최양업 신부를 맞아 활기를 되찾았고, 많은 외교인들이 최양업 신부로부터 복음을 듣고 교리를 배워 영세 입교하였다. 최양업 신부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신자들은 1866년 병인년 박해 때 충주에서 순교하였다.

대원군이 일으킨 병인년 박해는 천주교 신자에 대하여 선참후계(先斬後啓: 먼저 형을 집행하고 보고함)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국에 걸쳐 무명의 순교자를 10,000여 명이나 발생하게 한 참혹한 탄압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충주의 순교자는 52명이나 된다.

[순교지]

충주 지역의 순교지로는 사형 터와 관아공원이 있다. 현재 충주 공용 정류장으로 변한 역전동 일대가 옛날에는 사형장이었다. 또한 동헌과 관아가 남아 있는 관아공원(중원군청 자리)이 순교지이다. 충주 일원의 천주교 신자들은 대부분 배교(背敎) 보다는 신앙을 택했으므로 이곳에는 박해 때마다 계속된 고난으로 점철된 역사가 배여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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