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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2249
한자 音樂
영어의미역 Music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대기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서의 국악·현대음악·대중음악 등의 제반 활동.

[개설]

충주는 음악의 고장이다. 삼국시대 악성 우륵이 활동하던 무대답게 국악의 맥이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현대음악은 1971년부터 중고등학교 음악교사들로 구성한 한국음악협회 충주지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대중음악은 1960년대 충주비료공장 전속악단이 있을 때 발전하였고, 1970년대 음악학원이 생기고 대중음악인들이 활동하면서 성황을 이루고 있다.

[국악]

해방 이후 충주에서는 각종 농악경연대회가 열리고 풍물굿 등이 전수되어 내려왔다.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가 탄생한 2년 후인 1973년부터 한국국악협회 충주지부가 정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초대 지부장 김홍배, 부지부장 천영언·오명환, 사무국장 윤일로를 중심으로 지역 국악의 맥을 이어 왔다.

가야금연수원이 설립되었고, 1984년에 금충회(琴忠會)라는 가야금 동호회를 비롯하여 여러 동호회들이 발족되었다. 1988년 충주시립가야금연주단이 탄생하여 국악관현악단인 충주시립우륵국악단으로 명칭이 바뀌며 상임 단원도 많이 늘었다. 충주시립우륵국악단은 상설 공연장을 갖춘 우륵당이라는 건물에 터를 잡고 지휘자도 정장선·이강덕·하주하·이기설·조광석으로 이어지며 발전하게 되고 상설 공연뿐 아니라 해외 공연까지 하게 되었다.

한국국악협회 충주지부는 윤일로 지부장의 뒤를 이어 최순정·전봉근·임순례 등이 취임하여 이끌고 있으며, 양진명소오룡굿·목계별신제를 재연하는 행사를 매년 격년제로 열고 있다. 이영광을 주축으로 한 젊은 사물놀이패 몰개는 그 명성을 전국적으로 쌓고 있으며 경, 서도 소리의 권재은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충주 출신으로 국립국악원장을 역임한 한명희는 아시아 민족 음악의 교류에 힘쓰고 있으며 전국국악관현악축제·중앙아시아민속예술단 공연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충주 지역에 선보였다.

[현대음악]

음악대학이 전국적으로도 희소한 시절인 1971년 충주와 중원의 중고등학교 음악 교사들이 한국음악협회 충주지부를 결성하였는데, 초대 지부장 김승호, 부지부장 정관수, 사무국장 이상영, 회원 이주영·이영철·이영식·유영자 등이었다. 당시는 대부분 합창단을 만들어 활동하던 시절이었는데, 충주소년소녀합창단·충주YMCA합창단·어머니합창단 등이 매년 정기 연주회를 가졌으며 특히 어머니합창단은 전국 규모 대회에서 입상하여 그 실력을 과시하였다.

1974년과 1975년 8월 16일에는 광복30주년경축예술제 를 가졌고, 1978년 5월에 국립합창단의 충주 연주가 있었다. 제5대 지부장 정가건은 1982년 10월에 충북관악제를 어머니회관에서 개최하여 풍성한 성과를 거두었다. 제6대 지부장 이주영과 제7대 지부장 박영하는 한국음악협회 충주지부를 발전시키는데 헌신하였다. 제8대 지부장 정태준은 1987년 충주시내 음악교사를 주축으로 일반 애호가 등을 모아 칸타빌레합창단을 창단하였는데, 단장은 정태준, 부단장은 차갑종·안기옥, 상임 지휘는 이선우였다.

칸타빌레 합창단은 충북합창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충청북도 대표로 KBS에서 주최한 전국합창제에 참가하여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칸타빌레합창단은 매년 봄·가을에 정기 연주회를 열고 있다. 이외에도 충주고운소리합창단(지휘 차태평)·아가페코랄합창단(지휘 김순영)·충주남성합창단·충주어머니합창단 등 많은 합창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활동하다가 서서히 해체되었는데, 이는 충주 지역의 열악한 음악적 환경을 보인 것이기도 했다.

제11대 김학수 지부장, 12대 정태준 지부장은 충주 현대음악을 활성화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13~14대 지부장 김광옥 때는 초청 음악회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관광부장관기 마칭밴드경연대회에서 충주여자상업고등학교의 밴드부가 3회 연속 대상을 수상하였고, 클로바 트리오의 정기 연주, 코리아 윈드 앙상블 초청공연, 국립합창단의 초청 공연도 열렸다. 15~16대 지부장 배복형은 지역음악인들의 연주회를 다양하게 개최함으로써 충주 시민들로 하여금 문화예술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중음악]

1960년대 충주비료공장 전속악단이 있던 시절에 충주의 대중음악은 잠시 활성화 되었으나 충주비료공장이 없어지면서 암흑기를 거치다가 1970년대 중반에 음악학원이 중앙시장에 생기며 대중음악인들이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활동한 대중음악인은 백봉(작곡)·송문헌(작곡)·권대기(기타)·권영원(아코디언)·김민호(테너색소폰)·신형식(드럼) 등이었다. 이들을 기반으로 하여 1985년 한국연예협회 충주지부가 탄생하였고 초대 지부장은 권대기였다.

이때부터 충주의 70여 명의 연주인들이 남한강가요제를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시군 통합 노래자랑, 군부대 위문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열었다. 연주인 백승태는 가수로 데뷔하여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고, 2000년대에는 전국의 작사가와 작곡가들로 구성된 한국향토음악인협회가 대한민국향토가요제를 서울 MBC를 통해 전국에 방송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홍윤실 등 가수들이 배출되며 충주 지역의 대중음악은 중흥을 이루었다.

1990년대 이후 노래방 문화로 인해 연주인들이 설 무대가 많이 없어지고 다시 쇠퇴기를 맞고 있으나 노래 교실을 통한 가요 보급은 상대적으로 늘고 있다. 충주 출신 양희봉(트럼펫)은 전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재즈 빅밴드를 지휘하며 청주방송(CJB) ‘가요 톱텐’의 지휘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매주 충주시 관광 행사인 토요 이벤트를 여는 김달영 지부장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한국연예협회 충주지부 고문인 권대기는 충주 MBC의 ‘즐거운 오후 3시’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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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제목 내용
2021.02.15 오타 수정 충주시립우륵국악단은 상설 공연장을 갖춘 우륵당이라는 건물에 터를 잡고 지휘자 정상선,이강덕,하주하,이기설,조광덕으로~ -> 충주시립우륵국악단은 상설 공연장을 갖춘 우륵당이라는 건물에 터를 잡고 지휘자 정장선,이강덕,하주하,이기설,조광석으로~
2021.02.15 오탈자 수정 김영광을 주축으로 한 젋은 사물놀이패 몰개 -> 2. 이영광을 주축으로 한 젊은 사물놀이패 몰개 남도 소리의 권대은도 -> 경,서도 소리의 권재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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