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2628
한자 平生儀禮
영어의미역 Life Cycle Ceremony
이칭/별칭 통과의례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집필자 박재열

[정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행해지는 의례.

[개설]

평생의례는 통과의례라고도 하며 사람이 태어나서 생을 마칠 때까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몇 차례의 중요한 의례를 말한다. 사람의 일생은 연속적인 과정이기도 하지만 몇 가지의 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단계를 건널 때마다 출생의례·성년의식·결혼의례·상례와 같은 의례가 따른다. 충주 지역의 통과의례는 전국적인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세부 시행 과정에서는 다른 특성이 보인다.

[출생의례]

출생의례는 아직 생명이 아닌 상태에서 비로소 생명을 가지는 상태로 전환되는 것을 공식적으로 나타내는 의례이다. 여기에는 기자(祈子)·태몽·해산·삼일·이레·백일·돌 등이 포함되는데 충주 지역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부분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1. 기자(祈子): 자식 특히 득남을 못한 부인들은 명산대천·칠성·산신·용왕 등에 치성을 드리며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충주시 엄정면 미내동의 뒷산바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의 기자바위, 노은면 연하리의 아들바위, 산천면 송강리확바위 등은 기자의 유풍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2. 태몽: 부인이 임신을 할 때 태몽을 꾼다고 한다. 태몽에 따라 태어날 아기의 성별이나 운수를 점치기도 하였는데 충주시 엄정면 목계를 중심으로 전해지는 아들에 관한 태몽으로는 “호랑이에게 쫓기다 뒤꿈치를 물렸다.” “산에서 떨어진 밤알을 주워 왔다.” 등이 있고, 딸에 관한 태몽으로는 “파란 호박을 땄다.” “밤을 아람으로 꺾어 땄다.” 등이 있다.

3. 해산: 산기(産氣)가 있으면 삼신할미에게 무사하게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삼신상을 차려 놓고, 출산에 밝은 노인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낳는다. 해산 후 태는 불태운 후에 땅에 묻는 것이 충주 지방의 일반적인 풍속이었다.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는 다음과 같은 풍속이 있었다. 아기가 울기 전에 참기름으로 입을 닦아주고 목욕은 3일 후에 시킨다. 분만을 마치면 왼새끼를 꼬아 문에 금줄을 친다. 아들이면 솔가지·숯·고추를 달고, 딸이면 솔가지와 숯만 다는데, 삼날(3일) 치우지 못하면 삼칠일 날 치운다.

4. 삼일: 해산의례는 아기가 태어난 지 3일째부터 시작된다. 삼일 되는 날은 삼신할머니가 내려온다고 하여 산모는 쑥물로 몸을 씻기고, 아기도 목욕시킨다. 출산한 자리에 미역국·쌀밥·정화수로 차려 놓은 삼신상을 이날 치우는데, 이레 혹은 삼칠일까지 가기도 한다.

5. 이레: 출산 후 세이레(21일)가 되어야 산실이 완전히 개방되고 금줄도 거두고 금기 사항이 풀린다. 삼칠일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순백색의 백설기를 마련하여 가족이나 친족끼리만 나누어 먹고 밖으로는 내보내지 않았는데, 이는 아이와 산모를 속인의 세계와 섞지 않고 산신의 보호 아래 둔다는 신성의 의미를 담고 있다.

6. 백일: 백일은 출생 후 백일이 될 때 하는 의례로 백일상에는 흰밥과 고기 미역국, 푸른색 나물 등을 올리고 떡으로는 백설기·붉은팥고물 찰수수경단·오색송편을 마련하였다. 이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축하 음식을 밖으로 돌려 나누었는데 특히 백일 떡은 백 집에 나눠 주어야 아이가 장수하고 큰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백설기에는 신성의 의미를, 붉은팥고물의 찰수수경단에는 액을 막는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돌은 아이의 첫 생일로 이날에는 아이의 장수복록(長壽福祿)을 축원하며 아이에게 의복을 만들어 입히고 돌상을 차려 연필·돈·실 등을 올려놓고 하나를 잡게 함으로써 그 아이가 어느 부분에 장점이 있는지를 살펴보기도 한다. 충주시 엄정면 목계에서는 돌잡이 할 때 “활을 먼저 잡으면 군대 가서 활을 잘 쏘겠다고 하고, 책이나 붓을 먼저 잡으면 학자가 되겠다고 하며, 떡을 먼저 잡으면 미련하다”는 등 장래의 운수를 예측하며 덕담을 나누었다고 한다.

[성년의례]

관례(冠禮)는 아이에게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성인식이다. 남자 나이 15세에서 20세 사이의 성인이 되는 사람에게 성인의 관과 의복을 입혀 주고, 성인으로서의 의식과 태도를 지닐 것을 가족과 친지 앞에서 맹세하는 의례이다. 계례는 여자가 혼인을 정하거나, 나이 15세가 되면 댕기머리를 버리고 비녀를 꽂는 의식으로 남자의 관례와 같은 성인식으로 보인다. 관례 혹은 계례의식은 오늘날 성인의 날 행사로 그 의미가 계승되고 있다.

[혼례]

혼례는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라고 할 수 있다. 혼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다란 희망으로 맞는 인생의 대사이나, 혼인은 당사자만의 경사가 아니라 가문 전체의 귀중한 의식으로 이해하였다. 조선 후기 일반화된 유교식 혼례 절차에는 의혼(議婚)·사주단자·택일·의양단자(衣樣單子)·납폐·초례·견구고례(見舅姑禮) 등이 있다.

1. 의혼: 남녀가 성장하여 결혼 적령기가 되면 중매쟁이를 통하거나, 친지를 통하여 혼인처를 물색한다. 양가에서 상중(喪中)이 아니어야 하며 동성동본 등의 금기 사항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가문과 학력을 따져보며 혹은 나쁜 유전병 유무 등을 사람을 놓아 알아보았는데, 이를 충주시 엄정면에서는 “관람한다”고 한다. 딸은 자기 집보다 나은 곳으로 시집을 보내고, 며느리는 자기 집보다 못한 곳에서 데리고 와야만 시부모 공양을 잘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5불취가 있어서 반역 집안의 아들, 난가(亂家)의 자, 형벌을 받은 사람, 악질(惡疾), 상부(喪父)의 장자와는 혼인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양쪽 가문이 서로를 알아보고 궁합이 맞으면 양가의 부모가 혼인할 것을 결정한다.

2. 사주단자: 정혼(定婚)이 되면 남자 집에서 생년월일시를 적어 여자 집으로 보내는 것을 사주단자라고 한다. 사주단자는 크고 두꺼운 대간지(大簡紙)에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쓰고 봉투에 넣어 앞면에는 사주(四柱), 후면 상단에는 근봉(謹封)이라 쓴다. 이것을 수수깡이나 싸릿가지를 반으로 쪼갠 사이에 끼워 푸른 실과 붉은 실로 감고 사주보에 싸서 함에 넣는다. 중매쟁이나 다남다복한 노인을 골라 여자 집으로 보내면 대청이나 안방에 상을 차려 놓고 사주단자를 받는다.

3. 택일(擇日): 사주를 받은 여자 집에서는 좋은 날을 채택하여 일곱 번을 접은 대간지에 ‘존안모월모일납폐동일선행(尊雁某月某日納幣同日先行)’이라 써서 봉투에 넣고, 겉면에는 ‘연길(涓吉)’이라 쓴 후 청실홍실로 매서 연길보에 싸서 신랑 집으로 보낸다.

4. 의양단자(衣樣單子): 택일을 받은 남자 집에서는 신랑의 도포 치수를 쓰고 버선과 신발의 모양을 종이에 그린 본(本)을 함께 넣어 겉봉엔 ‘의양(衣樣)’이라고 써서 여자 집에 보낸다. 신부의 집에서의 의양단자는 택일과 함께 남자 집으로 보낸다.

5. 납폐(納幣): 납폐는 남자 집에서 금전지(金箋紙)를 단 혼서(婚書)와 붉고 푸른 종이로 싼 채단(綵緞)을 함에 넣어 여자 집으로 보내는 것인데, 결혼식 전날 함진아비가 등에 지고 간다. 여자 집에서는 대청에 돗자리를 깔고 붉은 색보를 덮은 상 위에 함을 받아 놓고 신부의 어머니가 눈을 감고 함 속에서 혼서와 채단을 꺼낸다. 붉은 채단을 먼저 꺼내면 첫딸, 푸른 채단을 먼저 꺼내면 첫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6. 초례(醮禮): 결혼식 날이 되면 신랑이 초례복에 사모를 쓰고 신부 집으로 가면 신부 집에서는 사람을 보내어 신랑을 맞이한다. 신부 집에서는 붉은 색 보자기를 덮은 탁자를 초례청 중앙에 놓고 양쪽에는 자리를 깔아 혼례 준비를 한다. 탁자 위에는 촛대 한 쌍, 용떡, 대추, 밤 등을 놓고 밑에는 작은 상에 술 주전자와 꼭지숟가락을 놓는다. 그 사이는 병풍으로 가려 놓는다.

혼인 시간이 되면 신랑이 먼저 자리에 서고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쓴 신부가 초례청에 들어선다. 신랑이 먼저 신부를 향해 재배하고 술을 한 잔 따라 신부에게 보내면 잔을 입에 대었다가 퇴주잔에 붓는다. 신부도 역시 신랑을 향해 재배하고 술을 보낸다. 이 의식을 두 번 반복한다. 초례가 끝나면 신랑은 신부의 부모와 존장(尊長)을 뵙는다. 이날 밤에 신랑 신부가 잠자리를 처음으로 갖는데 ‘신방(新房) 지킨다’고 하여 일가친척이 문구멍을 뚫고 신방을 엿보며 신랑 신부를 놀리기도 한다.

7. 견구고례(見舅姑禮): 신부가 시댁으로 가서 처음으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준비해 온 폐백 음식으로 큰 상을 차려 놓고 폐백을 올린다. 장손일 경우는 사당에 고한 후에 시아버지에게 절을 하고 술을 올린다. 다음에는 시어머니에게 절을 하면 시어머니는 밤과 대추를 신랑 신부에게 던져 준다. 이어서 형제와 일가친척에게도 배례한다.

8. 재행(再行): 신부가 시집온 지 3~9일 내에 신랑 집에서 음식과 의복을 준비하여 신랑과 함께 친정을 찾는데, 충주 지방에서는 ‘삼일 또배기’라고 한다. 이날 저녁 신랑에게 언어 사용 능력 등을 시험하거나 막대기로 발바닥을 때리는 등 신랑을 몹시 괴롭히는 것을 ‘신랑 다루기’라고 한다.

[상례]

상례(喪禮)는 사람이 일생을 마치고 죽은 뒤에 지내는 의례다. 유교의 상례는 생시의 효가 사후의 효로 이어지도록 하는 절차이며 의식이다. 상례의 절차는 관례나 혼례에 비해 매우 길고 복잡하나 대체로 초상부터 발인까지의 절차, 발인부터 하관과 성분(成墳)까지의 절차, 성분 이후부터 반곡(反哭)까지의 절차, 초우(初虞)부터 부제(祔祭)까지의 절차, 소상(小喪)부터 담제(禫祭)까지 이르러 탈상하는 절차로 나뉜다.

상례에서 하는 첫 의식은 습(襲)이다. 습이란 사망한 다음날 주검을 목욕시키고 향을 뿌려준 다음 새 옷을 갈아 입히는 것을 말한다. 상례의 다음 의식은 주검을 베나 무명으로 싸고 묶어서 관에 넣는 염(殮)이다. 이것은 시체가 부풀어 올라 관이 터지는 것을 막으며 후에 백골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현재 농촌을 제외한 충주시 도심은 대부분이 전문 장례식장을 이용하고 있고, 염습의 절차나 방법 등은 종교적 성향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저승길 양식이라고 쌀을 죽은 사람의 입안에 넣어주기도 하고, 저승길에 쓰라고 지폐를 관에 넣어주기도 한다.

입관한 다음에는 관 앞에 병풍을 둘러쳐서 관이 보이지 않게 하고 병풍 앞에 상을 차려 놓았으며 신주를 세우거나 영정을 드리우고 향불을 피워 놓았다. 다음 의식은 죽은 사람의 가족과 친척들이 일정한 격식에 따라 상복을 입는 성복제였다. 성복이란 상(喪)에 든 표식으로 상복을 입고 상제 차림을 하는 것인데, 이것도 전통 상복에서부터 현대화된 상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상례에서 하는 중요한 의식은 조문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예였다. 문상은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뜻과 상제들에 대한 위로 및 방조(傍助)의 뜻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문상은 영구 앞에 이르러 애도의 뜻을 표하는 예와 상제들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부조를 하며 상제를 위하여 밤을 밝혀 주는 등의 일을 포함하고 있었다. 문상을 온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술을 붓고 절을 하였다.

장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3일장이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시신을 묘지로 옮기는 절차를 발인이라 한다. 영구를 묘지까지 운반하는 것은 예전에는 상여로 하였으나 현재는 영구차를 이용하고 있다. 장지에 도착하면 구덩이를 파서 하관을 하고 산신제를 지낸다. 관 위에 횡판을 대고 석회를 쳐서 봉분을 만드는데, 이때 「달구 노래」(「회다지 노래」)를 부른다. 봉분을 다 만든 후 진주에 글씨를 써 영좌(靈座)에 모시고, 혼백은 상자에 넣어 그 뒤에 놓고 분향재배하며 곡을 한다. 이후에는 반곡(反哭)·우제(虞祭)·졸곡(卒哭)·부제(祔祭)·상(祥)·담제(禫祭)·길제(吉祭) 등의 절차가 있다.

[제례]

제례(祭禮)는 죽은 부모나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이다. 제례는 죽은 이의 자식이나 손자들이 받드는 것이므로 봉사(奉祀) 혹은 봉제사라고도 하는데 유교에서는 죽은 부모에 대해서도 살아있을 때처럼 봉양하고 공경함으로써 효도를 다하는 것에 제사의 의미를 둔다.

제례는 크게 기제(忌祭)와 묘제(墓祭)로 나눌 수 있다. 기제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 자시(子時)에 지내므로, 그 전날 저녁에 지내는 제사인데 제주로부터 4대인 고조부모까지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며 인연 관계가 크게 작용한다. 묘제는 고조까지의 조상에 대해 지내는 묘사(墓祀), 5대조 이상의 묘에 지내는 시제 또는 시사, 명절 때 조상의 묘를 찾아 지내는 제사인 절사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평생의례는 가족 공동체 의식을 재생산하고 공고하게 하는 의식이다. 평생의례에는 당시 사회의 문화 발전 정도, 특히 도덕적 가치와 가족 성원들 상호간의 관계가 반영되어 있다. 또한 그것은 단지 가족의 범위에 국한되는 효에 그치지 않고, 다른 가족과 타인에게 공경의 정신을 확장함으로써 전체 사회의 화합을 도모하는 의례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평생의례 가운데 오늘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 있지만 오늘의 현실에 맞게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