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A010303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구

미륵리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미륵리도요지’ 보호 건물이다. 오름칸 가마와 계단식 가마가 절충된 가마터로 보존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여 보호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미륵리 주민이라면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저 산에 올라가면 널린 게 가마터여” 라고 한다. 어느 골이든 숯골이고 가마골이란다.

미륵리 마을 초입에서 우측으로 산길을 따라 2㎞ 정도 오르면 산기슭에 가마터가 보인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오솔길에는 여러 기의 가마 흔적이 보이고 있다. 주변에서 많은 백자 파편을 수습할 수 있고 가마터의 흔적은 물론 도지미, 노벽편 등도 눈에 띈다. 조선 후기의 가마터로 추정된다. 이곳뿐만 아니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00호로 지정된 ‘미륵리도요지’ 뒷편 산록에도 가마터가 많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아직까지 지표조사도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하늘재 올라가는 길목에서도 백자 도요지가 발견되고 있다. 입구에서 약 1㎞ 정도 가면 큰 바위가 기 옆에 서있어 이정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지금은 낙엽과 잡목으로 뒤덮여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이 가마터는 1950년대까지 생산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마의 벽과 퇴적층이 잘 남아 있다. 확인된 가마의 길이는 15m 정도이고 가마 폭은 200~220㎝ 정도이다. 가마 오른편으로 작업장 터를 확인 할 수 있는데 건물은 서향으로 정면 3칸, 측면 12칸으로 구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수습된 백자는 주로 대접형으로서 회백색이며 모래를 받치고 포개서 구웠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역시 미륵리 도요지와 같은 시기에 경영된 것으로 보인다.

산재된 도요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상태에서, 아직 발굴 조사는 고사하고 지표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더 파괴되기 전 조속한 시일 내에 조사,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근까지 자기 생산이 이루어진 것까지는 긍정적이지만, 일일이 마른 풀과 새끼줄을 이용하여 걸빵을 만들고 등짐을 지어 날랐을 모습을 생각하니 그 고초가 심했음을 짐작키 어렵지 않다. 생산된 자기의 일부는 한수 방향으로 나가 수운을 이용하였던 것 같고, 일제강점기에는 수안보 방향으로 지고 날랐다고 한다. 미륵리의 역사성과 환경,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여 관광객을 상대로 한 체험공간으로서 도요지 복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갓 구어낸 참숯과 청량한 공기, 삿된 마음이 없는 도공, 이 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백자에서는 산내음이 번질 것 같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