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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A020102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구

미륵리사지’는 충주에서 3번 국도를 따라 수안보 온천을 거쳐 연풍 방향으로 1.5㎞를 가서 옛 안부역이 있던 안보리 큰안보[大安堡]마을로 진입하여 오른쪽으로 갈라진 길을 따라 봇거리[袱溪]를 지난 후, 사문리 한절[大寺]마을을 거쳐 지릅재를 넘어 계곡길을 내려가서 만나는 미륵리 점말을 지나 안쪽인 안말에 위치하고 있다. 풍수학으로 유명한 최창조 교수는 ‘미륵리 절터는 포암산·신선봉·주흘산·월악산, 동서남북 4개의 산의 기운이 모여드는 지점에 있는 명당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천심도혈 명당’이라 했다고 한다.

미륵리사지는 교통편이 전혀 없는 산간오지였으나, 월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87년 7월 18일 사적 제317호로 지정되었다. 이 사지는 문헌 기록이 일체 없는 곳으로 창사(創寺)에 대한 유래, 연혁은 물론 사명(寺名)조차 알 수 없는 폐사지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지명을 따서 ‘미륵리사지’라고 이름하였으나 근래 발행되는 안내책자나 안내판에 ‘미륵사지’라 적혀 있어 마치 옛 사찰 명칭이 ‘미륵사’였던 것처럼 불리고 있다.

미륵리사지세계사 쪽으로 들어가지 말고 왼편으로 돌아서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보기를 권한다. 한눈에 미륵리사지를 넣고 난 다음 천천히 둘러보면 사지(寺址)가 ‘참 아늑한 곳에 오밀조밀하게 자리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미륵리사지는 고려시대 석굴사원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충주 지역을 대표하는 불교 유적이다. 석실 사원은 신라의 인공 석굴사원인 토함산 석굴암을 제외하면 석실 사원의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미륵리사지는 인공 석실 사원을 계승한 고려시대 유일의 석실사원으로 평가되며 사찰 연구에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미륵리사지를 정비, 복원하기 위하여 1977~1991년 사이에 5차례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사역(寺域) 내에 존재하는 유적과 유물, 그 간의 발굴 성과를 종합해볼 때 사찰은 고려 초 10C 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 후기 고종 때 몽고 침입으로 소실된 듯하다. 발굴 조사 시에 ‘명창3년(明昌三年)’, ‘미륵당(彌勒堂)’, ‘대원사(大院寺)’ 등의 명문와(名文瓦)와 군마도, 맹호추장도가 그려진 평기와, 인물도가 새겨진 막새기와 등이 수습되기도 하였다. 5차 발굴 시에는 사역과 경계되는 곳에 역원지 건물터가 발굴됨으로써 이를 ‘미륵대원(彌勒大院)’이라고 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유물들을 입구에서부터 살펴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쓰러진 당간지주 조각이다. 특히 당간지주에는 섬세하고 예쁘게 양각된 연화무늬 있다. 당간지주에 연화문이 양각된 예는 경주 보문리사지에서만 그 예를 찾을 수 있는 귀중한 예이다. 반대쪽에는 시커멓게 세월의 때를 짊어진 채 기어가지도 못한 거북돌이 있다. 거북의 크기로는 국내 최대라고 평가받고 있다. 한 단계 올라서면 5층 석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보물 제95호이다.

탑의 형태로는 약간 불안한 모습이지만, 일반인들이 볼 적에는 그저 커다란 석탑이며 위압적으로 보일 뿐이다. 그 앞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호인 8각 석등이 있다.

각부가 잘 남아 있는 균형잡힌 석등으로 평가된다. 8각 석등의 화창에는 문틀 모양이 있고 그 안에는 여러 개의 못 구멍이 있는데 종이로 막았던 흔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4각 석등이 있다. 시대적으로 약간 뒤쳐지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형태가 독특하여 주목되고 있다.

8각 석등이나 4각 석등을 보면 앙련과 복련이 큼직하면서도 탐스럽게 펼쳐져 있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한 단을 더 높인 곳에 거대한 돌들을 쌓아 올려 높이 약 6m의 요형(凹形) 석벽을 구축하여 네모난 석실을 만들고 그 중앙에 보물 제96호 미륵석불입상을 안치하였다. 석실 윗부분은 목조 건물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지금은 많이 훼손된 상태인데 특히 전면 오른쪽 부분의 석재들 사이가 틈이 많이 벌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미륵석불입상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얼굴 부분이 다른 부위에 비하여 유난히 희다.

그 원인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불가에서는 종교적 관점에서, 반면 학자들은 과학적 분석을 취하고 있어 의견의 차이가 크다. 또 석실 내에는 큰 바위가 떨어져 있는데 홍수 시에 석실 위에서 굴러 떨어진 돌이라 한다. 헌데 이상하게도 석실과 미륵입상 사이에 절묘하게 떨어져 있어 어느 하나 손상됨이 없다. 이러한 현상을 우연으로만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초기에는 실내에 봉안된 석불일텐데 갓을 씌웠다는 점이 의문이다. 미륵리사지는 산지의 단탑가람(單塔伽藍) 배치를 이루고 있는 구조이다. 또한 석실과 불상이 북향을 하고 있는 특이한 배치를 보여 주목되고 있다.

이를 본 다음 사지 앞으로 난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미륵대원 터에 닿을 수 있고 장승이 지키고 있는 하늘재 입구에 다다른다. 입구를 그냥 지나치면 바로 눈앞에 3층 석탑이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 위쪽으로는 잡목 사이로 불두가 보인다. 편평한 풀밭이기에 아이들이 뛰어 놀기 좋은 곳이다. 약 200m 정도 더 오르면 숲 깊숙이 ‘대광사(옛 미륵대원사)가 있다.

미륵리사지에는 문화해설사가 상시 대기 중이다.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찾는 이들이 보다 전문적인 해설을 요구한다고 문화해설사들은 말하고 있다.

오늘도 화창한 봄을 가슴에 안고 부처님 앞에서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는 사람들을 본다. 부처님도 둥글둥글한 흰 얼굴에 눈을 지그시 감고 세상을 껴안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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