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상수도, 농로 설치에 앞장 선 지순태 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A030103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구

‘새마을 사업 시대 때’ 라고 했다. 수안보면 미륵리 주민 지순태 씨는 새마을 사업 하던 시기를 그렇게 불렀다.

“우리 마을은 상수도 문제를 … … 개울에서 물 퍼다 먹다가 힘이 너무 들어서 상수도를 놓기로 하고 …” 의외로 사투리도 별로 없고 음성도 차분하게 띄엄띄엄 말을 띠우면서 당시 상황을 말씀하셨다.

‘새마을 사업 시대’ 때 대원사 밑에 자리 잡고 수도사업을 하느라 필요한 자재도 자급하고 아주머니들은 모래와 자갈을 나르고 보를 만들어서 물을 가두어 놓고 해서 결국 ‘상수도를 해갖고 편리’를 보았다.

농로(農路) 문제는 참 어려웠다고 한다. 지순태 씨의 논도 현재 팔랑소 주자장 부근에 있었는데 ‘소바리’, 즉 사람도 겨우 다니는 오솔길이었다. 농사철에는 아주머니들이 밥을 해서 머리에 이고 먼 거리를 날라야 했고 가을 벼걷이를 하더라도 “다 (지게에)지어서 날르던가 소에다 실어서 날르던지 사람을 사갖고 옮겨서 탈곡도 하고 …” 라고 하면서 그래서 농로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여 농로 개설을 시작하였는데 농토주는 사용 승낙을 안 하고 ‘일하는 분’은 장래 농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가운데 어찌해서 만수 휴게소까지 3m 정도의 농로를 마련하여 ‘웬만치 해결’을 보았다.

그러던 중 미륵리 안말에 살던 주민들의 이주가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새마을 사업 시대’ 때 초가 지붕을 스레트 지붕으로 바꾸라 하였고 5~6년 후에는 안말에 흩어져 있던 집을 미륵대원 터로 이주를 시켰다. 우연한 집 공사 중 미륵대원 터의 유구가 발견됨에 발굴 조사를 이유로 다시 이주를 하였고, 9년 만인 1985년에 700만원을 15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으로 지원을 받아 현재의 한옥마을로 이주하였다.

“상수도도 그런 식으로 또 하고 … 시에서 지원금 받아 가지고 조그마하게 해서 물을 그렇게 쓰고 있는거지” 힘든 일을 아주 쉬운 일로 둔갑시켜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지순태 씨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본인이 가장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분들, ‘일하는 분’들 모두 어려운 고비를 잘 협력해서 넘겼다고 했다. “땅 사용 승낙을 받는 게 어려웠지 일하는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녔어요. 차라리 있는 집들이 더 어려웠는데 막상 농로를 해놓고 나니까 그 사람들이 더 일찍 할 걸 그랬다고 하더라구” 라고 하였다.

[정보제공]

  • •  지순태(남, 미륵리 주민)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