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C010204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호

현재 제내리에는 25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풍덕에는 53가구 149명(남자 83명, 여자 66명)이, 성동에 45가구 109명(남자 46명, 여자 52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간 제내리를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 살아온 이들의 호구 변동을 각 지리지를 통하여 살펴보면 다음 〈표2〉와 같다.

위의 표를 보면 1759년에는 3,583명의 주민 중 여자의 수가 남자의 수 보다 1천여 명이 많아 배에 가까운 성비의 심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30여 년 뒤인 1789년 호구총수의 조사에서는 주민의 수는 1천여 명이 줄어들고, 성비는 오히려 같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어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강한 의문이 남는다.

이후 인구는 계속 감소하다가 190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조사당시 행정구역의 증감과 변화가 그 원인이 되기도 했겠지만, 그 밖의 사회적 요인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라 할 것이다.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뒤,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내리의 인구 변동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 〈표3〉과 같다.

이 표를 보면 해방 이후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제내리 풍덕마을의 인구동향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다. 먼저 1952년을 보면 풍덕마을의 호구(戶口)가 갑자기 늘어나고 있다. 이는 1950년에 시작된 6·25전쟁으로 인하여 일가친척들이 외지에서 피난해 들어옴으로써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며, 비농가가 증가한 것도 이러한 사실이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1960년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것 역시 이해 4·19혁명이 일어나 정정이 불안해지자 친척들이 일시적인 퇴직으로 다시 풍덕마을로 돌아와 머물렀기 때문에 호구수가 갑자기 증가하였던 것이며, 이때에도 비농가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 후 인구동향은 비교적 안정을 보이다가 1973년에는 일시적이지만 다시 비농가의 수가 증가하였다. 이것은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제내리에도 노임지급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고용세대가 마을에 입주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의 호구 동향을 분석해 보면 산업화로 인한 이농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제내리의 호구도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이농현상은 전국적인 현상이어서 제내리도 예외가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이르게 되면 인구가 아주 급격하게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1996년의 경우 총 251명으로 가장 정점을 이루었던 1960년대의 550~560명 상황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농현상뿐만 아니라 농촌 인구의 노령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로 인한 인구의 자연감소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인구의 감소와는 반대로 농가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비농가의 수가 오히려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추세는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연로해져 농사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며, 그 외에도 농업 소득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면서 수입이 예전 같지 않자 농촌을 떠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사무직 등으로 이동하여 취업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