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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협동조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C020305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호

1952년 당시 농림부장관이 주도하여 사단법인 ‘농촌실행협동조합’을 조직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덕이 이팔영, 이세영 등 10여 명의 회원을 모아 쌀 두말씩을 투자하여 충주책임자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나 농업협동조합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금융조합연합회와 농민회, 농림부, 국회가 논의를 거듭하였으나 합의에 실패하였다. 그 이유는 협동조합이 금융조합으로부터 탈피하여 자주적인 협동조합으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일제 금융조합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양론의 현실적 대립이 있었다. 그리하여 중앙조직이 와해됨으로써 투자금의 환불도 받지 못한 채 실행협동조합의 조직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쿠퍼’안에 기초하여 농업은행법과 농업협동조합법이 1957년 2월에 제정되었다. ‘쿠퍼’안은 농업은행과 농업조합을 시군단위로 조직하여 농업조합과 농업은행을 병립토록하고 농업조합이 신용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총독부가 신용사업을 할 수 없는 산업조합을 설립하여 민간의 자발적인 협동조합운동을 압살(壓殺)하고 산업조합의 자멸을 통해 금융조합이 완전히 농촌을 장악하도록 한 것과 비슷한 의도였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농업은행이 농민에게 직접 여신을 하도록 법을 개정하여, 1958년 3월에 공포하고 농업은행과 농업협동조합이 발족하였다.

법제에 의하여 제내리도 1957년 5월에 ‘농업협동조합’의 조직을 면으로부터 권유 받게 되었다. 풍덕의 이세영 구장은 방송을 통해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성동의 이동수 구장을 비롯하여 몇 분을 찾아다니며 동의를 얻었으나, 전에 실패한 경험에서 선뜻 나서지를 않았다. 그러나 성의 있는 설득과 여러 차례의 협의 끝에, 6월 25일 풍덕마을 공회당에서 111명의 전 조합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내리 농업협동조합’이 창립되었다. 그리고 그해 7월 8일 중원군수로부터 등록증을 받았으며, 8월 21일 법원의 등기를 필하고 업무를 시작하였다. 중원군에서 최초의 ‘농업협동조합’이 조직된 것이다.

출범 당시의 초대 임원으로 조합장에 이세영, 상무이사 이동수, 이사 이후영·이우영·이부영·이팔영·이만영·이동식·이인영·이상길·이상강, 감사에는 이상규·이주호가 담당하였다.

이어서 1958년 1월 11일부터는 구매 업무도 시작하였다. 풍덕 공회당에서 구정에 사용할 제수를 개인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공동으로 구입하고 1할의 이익금을 가산하여 공급해주니 주민들이 크게 환영하며 구매업무도 계속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이후 생활필수품 등을 중심으로 공급하며 3개월 만에 결산을 한 결과 많은 이익금을 낼 수 있었다. 이처럼 농업협동조합의 구매 업무도 중원군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한 일로 기록되고 있다.

구매 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되자 이용 사업으로 정미소를 생각하게 되었다. 때마침 신촌 정미소를 매각한다하므로 이를 구입하려고 하였으나 구입자금의 확보가 문제였다. 조합장은 구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농업은행 주덕지소에 자금의 대부를 의뢰하였다. 농업은행 충북분실 윤걸 차장과 주덕지소장이 풍덕마을에서 야간 간담회를 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이 자리에서 구입 자금의 대부를 건의하니 허락을 하였다. 윤 차장의 주선으로 주덕지소에서 100만환을 대부받아 자금을 마련하고 50만환은 외상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 간에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게 되므로 다시 매각하려고 하였다. 이때 풍덕마을이 지역사회 개발 시범부락으로 선정되어 성동마을과 협의하여 정미소를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였으므로 1959년 12월 30일 건물은 매각하고, 기계는 풍덕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명의는 제내리 농협과 풍덕 개발계의 공동으로 시작하였으나, 1961년 7월 제내리 농협은 그 지분을 풍덕개발계에 매각 처리하고 정미소 사업을 청산하였다.

제내리 농협의 운영 실적은 1963년 9월 10일 농협중앙회에서 ‘참가상’을 받았고, 1964년 3월에는 중원 조합에서 ‘A급 1등상’을, 9월에는 충북 지부에서 ‘A급 3등상’을, 11월에는 중앙회에서 ‘참가상’을 각각 받았다. 1965년 7월에는 이복영 조합장이 우수 조합장으로 선발되어 일본 농업시찰을 1개월간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3년에 회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주덕 단위농협으로 합병되었다.

역대조합장은 다음과 같다.

이세영(1957. 6. 22~)·이원배(1959. 8. 2~)·이세영(1960. 4. 2~)·이상경(1961. 1. 22~)·이동일(1961. 7. 18~)·이상덕(1961. 8. 10~ )·이복영(1962. 10. 1~)·이세영(1972. 8. 20~1973. 8. 30) * ( )안의 연월일은 임기의 시작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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