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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들어오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C020503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호

광복 20주년이 지난 1965년에 제내리가 농기업 선도 시범 마을에 선정되어 1차연도 사업으로 전기가설이 책정되었다. 전기는 마을 사람들의 꿈이요 희망이었다. 외부의 가설비는 정부 보조였으며, 내선공사비는 자부담으로 하되 200등 이상이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풍덕 구장 이복영이 일본 농업을 견학 중이었으므로 구장을 대신한 이세영이 풍덕에서는 그 숫자를 채울 수 없었으므로 성동 이동수, 계막 김낙순 구장과 상의하고 풍덕에서 100등을 책임지겠으니 나머지를 성동과 계막에서 각각 50등씩 확보한다면 전기가 들어올 수 있다고 협의하여 추진키로 하였다. 7월에 주덕 면장 황정섭과 서울 전기공사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풍덕에서 100등을 확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기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한 등씩만 신청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을 총회를 열고 100등이라야 동력선이 들어오고 그래야 정미공장도 전기 모터로 바꿀 수 있다고 설득하여 겨우 100등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돌연 외부 공사비가 정부 보조금이 아니라 무이자 5년 상환 조건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에 이세영은 성동·계막의 이장과 협의하여 면장에게 여건이 맞지 않아 전기가설을 못하겠다고 하자, 이튿날 군의 산업과장이 나와 다시 협의하는 자리에서 마을 대표는 한전에서 시행하는 30년 무이자 상환조건을 제시하였다. 서로간의 협의 끝에 15년 무이자 상환으로 하고, 할부금의 액수만큼 부락에 환원 사업을 해달라는 조건으로 하여 보조금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한때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공업자가 공사를 중단하고 소송까지 한다고 하던 공사가 다시 진행되어 12월 3일 점등이 되었다. 전기료에 대한 부담 때문에 대다수의 집에서는 5촉도 밝다고 하며 5촉 전등을 사용하였다. 당시에 한 달 전기료가 1년간 등잔불에 쓰이는 석유 값과 같았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대단히 비싼 요금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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