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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중사에 열과 성을 다하는 이복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C030501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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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복영

진안대군파 방호지파의 종회장을 맡고 있는 이복영 씨의 이력은 남달랐다. 제내리 팔체사라 불리는 이성호의 장남으로 태어나 단국대학교 법과를 졸업한 그는 고향에 돌아와 농사일을 도우며 계몽회원으로 농촌계몽에 앞장섰다. 6·25동란이 일어나자 그는 경찰에 투신하여 참전경찰로 활약하였다. 전란이 끝나고 종로경찰서로 전출되어 장면 부통령 경호원과 광화문 파출소장을 역임하였고, 5.16군사 정변이 일어나자 귀향하였다.

그 후 그는 1962년부터 1972년까지 풍덕이장으로 11년 동안 활동하면서 농협 및 지역사회 개발사업 등에 헌신적으로 노력하여 고향 제내리 발전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전직 경찰로서 공직에 있었던 경력이 마을의 일을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관공서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도와주어 많을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농촌지도자 충북도 연합회장(1971~1977), 제2대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1978~1980)과 대통령 선거인단(1981)에 당선되었고, 주덕농업협동조합장(1979~1985)을 역임하면서 모범조합장으로 선출되어 일본농업시찰을 한 달 동안 하고 오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향의 발전과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는 여러 기관으로부터 받은 각종 상패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단다. 한국농업인 대상(서울신문사, 1965)을 비롯하여 농촌지도유공자 표창(도지사, 1977), 쌀 3,200만석 생산지도 표창(농업진흥청장, 1974), 과학영농 선도 유공표창(농수산부장관, 1976), 4H지도육성 유공표창(국무총리, 1977), 통일정책 홍보 유공표창(대통령, 1985) 등을 수상함으로써 땀을 흘려 일해 온 그의 이력을 대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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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영

오랫동안 고향발전을 위해 일해 온 그는 공적인 일에서 물러난 이후 노년기까지 쉬지 않고 종중사의 발전에 열중하고 있으니 타고난 지도자임을 확인케 한다. 그는 40세부터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종중계를 맡아보며 종중계 문서에 수입과 지출만을 기록하던 것을 회의록까지 갖추는 등 투명하고 정직하며 양심적인 운영이 되도록 하는데 힘써왔으며, 전주이씨 진안대군파 방호지파 종회장을 맡은 이후로는 원근에 살고 있는 자손들이 많은 협조를 해줌으로써 소요경비의 어려움은 없었다고 자랑하신다. 그리하여 큰등 산소 사설묘지 설정과 병풍석을 세워 정화작업을 실시하였으며, 진안대군파 종회 부회장으로 파보를 발간하고 묘비 난간석 설치와 사초작업을 시행하여 후손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후계자를 기르는 후손들의 장학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10여 년 동안 약 42명의 대학 진학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훌륭한 인재들을 양성하였으며, 그들이 사회발전을 위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신다. 그러나 여유 자금이 없어 더 이상 장학사업을 할 수 없게 된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우리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고 국제화·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고향에 살거나 객지에 사는 후손이거나를 막론하고 위선사(爲先事)에 점점 관심이 멀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앞으로 바라는 것은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족관계법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씨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숭조 존중하는 전통을 계승하여 다른 씨족보다도 전주이씨 진안대군파 자손답게 전통을 계승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단다. 종계를 이끌고 있는 집안어른으로서 당연한 바람이리라.

끝으로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을 묻자 “호주제를 폐지했다 해도 근친혼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었으며, 또한 “모든 이들이 질서를 지키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는 말씀이시다. 오랫동안 향촌사회와 종중을 이끌어 오신 노지도자의 훌륭한 가르침으로 우리에게 메아리친다.

[정보제공]

  • •  이복영(남, 진안대군파 방호지파의 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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